모든 색을 다 보려는 욕심은 버려.

[D-267] 색맹은 모든 색을 보느라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by Mooon

D-267. Sentence

색맹은 모든 색을 보느라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페이스북_14년전 포스팅

느낌의 시작

모든 색을 한꺼번에 본다고 해서 반드시 혼란스러운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많은 색 중 무엇을 내 눈에, 내 마음에 담아낼지의 선택이다.



마음의 흐름


페이스북의 기능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닿는 것은 바로 ‘과거의 오늘’이다. 온라인이 아무리 편리해도 오프라인의 감성을 따라잡을 수 없는 절대적 가치 차이가 있기에 페이스북은 사람들의 정서와 감성을 자극하는 기능들을 꾸준히 찾아내려는 것 같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결국 중요한 것은 효능도 기능도 아닌 ‘마음’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14년 전 어제의 기록이었다. 페이스북이 알려준 그 게시물을 보는 순간, 나는 바로 캡처해 두었다. 14년 전이면 결혼은 했지만 아직 첫째를 임신하기도 전의 시기였다. 그때 무언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글을 남긴 걸 보면 말이다. 놀라운 건, 그때 했던 고민을 지금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과오인지, 아니면 원래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선택지가 너무 없어도 탈이고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생각은 늘 내 곁에 있다.


커피 한 잔 마시려고 카페에 가도 메뉴가 너무 많아 다른 시도를 하고 싶다가도 결국은 늘 카페라떼를 마신다. 라면 마니아인 아들이 신상 라면을 아무리 소개해 줘도, 수백 가지 라면 중 무엇이 신상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코스트코에서 드높은 천장까지 물건이 가득 쌓인 풍경을 마주할 때면 숨이 막혀올 때도 있다. 요즘 내 일상도 그렇다. 다가오는 올해 하반기 역시, 마치 모든 색들을 한꺼번에 보느라 분주한 것처럼 순간순간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이다.


엄마라는 정체성 자체가, 특히 워킹맘이라는 삶은 너무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그래서 결국 여러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며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선생으로, 프로젝트 연구자로, 새로운 브랜드 개발자로, 엄마와 아내로 이어질 남은 하반기가 상상조차 잘 되지 않지만, 동시에 설레기도 한다.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업의 형태가 너무 다양해 늘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정의하기조차 어렵다. 그렇다고 혼란에만 시간을 빼앗기고 싶진 않다. 주어진 기회와 시간, 그리고 마음의 크기에 가득가득 담아내다 보면 지금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지금은 잡음으로만 들리던 소리들이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멋진 음악으로 들릴 날이 오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이번 주 금요일 오전에 있을 그림책박물관 미팅을 준비하며 제안서를 붙잡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실체가 보이지 않아 자꾸 조급해진다는 내 말에, 누군가는 “구체적인 실체가 있어도 실제적인 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미 감사한 일이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맞다. 결과가 어떻든 결국은 나에게 이득이다. 새로운 것을 실행했고, 또 그 결과를 보게 될 테니 이득 중에서도 이득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조급할 필요 없이, 오히려 뿌듯함과 설렘으로 즐기면 된다. 춤추며, 노래하며, 그렇게 말이다.



내 안의 한 줄

혼란은 내 선택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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