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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의 노래

기다림은 선물처럼, 이브의 밤은 다시 시작된다

by Mooon

오늘은 수업을 마치자마자 공덕으로 향했다. 이번 주 금요일, 넥스트로컬 성과공유회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어 리허설 장소 근처에 들를 겸 공덕에 왔다. 공덕에 올 때면 늘 들르는 곳이 있다. 프릳츠 도화점. 문을 열자마자 퍼지는 커피 향과 빵 굽는 냄새, 그리고 특유의 빈티지한 결이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오래된 듯하지만 결코 낡지 않은, 따뜻한 레트로 감성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커피를 기다리며 둘러보던 중, 벽면에 붙은 슈톨렌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시즌 한정으로 판매되는 전통빵. 만들기 복잡하고 숙성까지 거쳐야 하는 정성의 빵이다. 머리로는 그 가치가 충분히 이해되지만, 정작 찾지는 않게된다. 그럼에도 이 빵이 진열대에 오르기 시작하면, 연말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아,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오는구나.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늘 ‘이브의 밤’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 교회 식구들과 함께 새벽송을 돌던 기억. 겨울의 찬 공기를 뚫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찬양을 부르던 그 시간은 아직도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덥힌다. 새벽송이 끝난 뒤 교회에 모여 밤새 놀던 어린 날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혼 후에도 그 전통은 이어졌다. 다만 이제는 ‘저녁송’이 되었다. 추운 밤길 대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교회에 모여 따뜻한 오뎅탕을 끓이고, 밥을 함께 나누고, 기타와 탬버린, 목소리를 챙겨 출발한다. 인근 지하철역 앞과 교회 식구들의 집을 돌며 성탄 찬양을 부른다.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면, 무표정하게 지나치던 사람들 중에도 손을 흔들며 웃는 얼굴들이 보인다. 그 짧은 순간의 교감이 참 따뜻하다.


언제부턴가 거리엔 캐럴이 사라지고, 크리스마스가 점점 조용해졌다. 저작권 문제로 공공장소에 캐럴이 금지되면서부터다. 반짝이는 불빛은 여전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소리는 사라진 듯하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더 경직되어 간다. 그래서일까, 교회에서 함께 부르는 저녁송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두 아들에게도 이 저녁송은 이미 익숙한 연례행사다. “올해도 가는 거지?” 묻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나는 안도와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 누군가를 축복하고, 노래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은 아이들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크리스마스의 진짜 의미를 새기게 한다.


해마다 교회 가족들이 우리 집 문 앞에 선다. 성탄의 노래가 현관을 가득 채우면, 나는 문 앞에 서서 그 찬양소리를 그대로 온몸으로 받는다. 한 해 동안 수고했고, 함께한다는 마음이 전해지는듯해 참 따뜻한 시간이다. 그 목소리 속에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위로가 담겨 있다. 쉽지 않은 날들을 지나왔지만, 그래도 살아낼 이유가 있다는 다짐도 함께 스며든다. 올해도 그 노래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이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고 노래하고, 따뜻한 손길을 나누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위로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되는 시간. 기다림은 결국 선물처럼 다가온다. 그 선물이 이번에도 내 마음에 닿기를, 그리고 내가 그 따뜻함을 또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기를.


IMG_2508.heic @프릳츠 도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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