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어?

[D-369]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by Mooon

D-369. Sentence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IMG_2674.jpg @교보문고 홈페이지

방학이다. 정확히 말하면, 두 아들은 학기 중이고 나만 방학이다. 이 묘한 구도가 매번 반갑다. 황금같다 말해놓고는 늘 어영부영 흘려보냈던 시간들. 이번에도 별다르지 않게 시작된 방학이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다르게 느껴진다. 봄방학도 없이 거의 두 달을 방학으로 보내게 될 두 아들과의 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어서일까. 그래서인지 더 귀한 지금.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나만 방학인 이 며칠이 괜히 반짝여 보인다.


학기 중엔 매주 수업, 프로젝트, 회의, 마감.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일부러 포기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어지는 일이 사람들과의 약속이다. 이번 방학도 그렇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많은 도움을 주는 대학원 선배와 동생과의 점심. 온라인으로만 가끔 안부를 나누던 오래전 직장 동료와의 점심약속. 올해 정교수로 임용되신 박사 선배의 연구실에 동기와 함께 찾아가기로 한 약속. 첫째 아들 친구 엄마와의 커피 벙개, 둘째아들 친구네와 함께 가기로 한 미술관 약속까지. 아직 다 적지 못한 약속들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새삼 감사해진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 어떤 목적이나 계산이 아니라, 그저 싱거운 궁금증과 애정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말 한마디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 아무 성과도, 결과도 묻지 않고 그저 존재를 확인하는 질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해진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다 보니 자주 만날 수는 없다. 약속을 잡는 것조차 큰 결심이 필요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나만 방학인 시간이 있어, 가볍게 안부를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제법 행복한 사람이다. 각을 세우고, 어색할 시간을 미리 걱정하며 만나는 관계 말고. 만나면 자연스럽게 근황을 흘려보내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시간을 이해해주는 관계들.


매 방학마다 “이번엔 정말 사람들을 좀 만나야지”라고 마음먹지만, 방학은 늘 학기 중보다 더 바쁘게 흘러간다. 방학을 맞은 두 아들의 엄마로, 논문을 써야 하는 연구자로,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선생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번 학기 성적 처리는 여전히 손도 대지 못한 채지만, 그럼에도 공식적으로는 겨울방학의 시작이다.


게다가 오늘, 첫째는 타이밍 좋게 제주도로 중·고등부 수련회를 떠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이 떨어지는 일정인데, 걱정보다 홀가분함이 먼저 드는 나를 보며 웃음이 났다. 앞으로 사흘.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솔직하다. 물론 이 시간도 백일몽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겠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이 느슨함을 조금은 허락해보려 한다. 사람을 만나고, 안부를 묻고, 별일 없는 하루를 나누며. 요즘 다들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내 안의 한 줄

나는 요즘, 사람의 안부로 하루를 채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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