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재설정 중입니다.

[D-380] 고통의 기준을 올리는 거예요

by Mooon

D-380. Sentence

고통의 기준을 올리는 거예요


IMG_3007.jpg @오현호

오늘은 아침부터 온라인 강의를 녹화하러 학교로 향했다. 14개의 영상을 이번 주 안에 찍어야 한다. 어제의 테스트를 거쳤으니, 오늘은 어떻게든 많은 영상을 건져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편의점에 들러 당이 떨어질 걸 대비해 단백질바까지 챙기고, 제법 호기롭게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어긋났다. 어젯밤, 강의자료 텍스트가 깨질 수 있다는 걸 감안해 수정 작업을 끝내두었는데도, 화면 속 텍스트는 또 깨져 있었다. 이런. 촬영을 시작하기 전, 다시 한 번 모든 텍스트를 손봤다. 그렇게 3주차, 4주차를 지나 6주차까지. 점심도 거른 채 달렸는데도,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느리게 흘렀다.


문제는 7주차였다. 처음엔 PPT로 설명하고, 이어서 피그마 프로그램으로 넘어가 시연을 하는 구성. 그런데 시연을 찍는 도중 녹화가 갑자기 종료됐다. 내가 찍은 30분의 영상은 통째로 날아갔다. 순간 멍해졌다. 무슨 문제인지도 모른 채, 다시 7주차 PPT 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또 피그마 시연. 또다시 녹화 종료. 두 번째 영상도 사라졌다.


더는 반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센터 직원분을 불렀다.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다. 피그마 용량이 너무 커서, 이 컴퓨터가 감당을 못 한다는 것. 7주차부터 14주차까지는 계속 피그마 시연이 필요한데, 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직원분은 PPT를 끄고 피그마 영상만 찍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조언을 주셨다. 다시 한 번 7주차를 찍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PPT 영상만 녹화되고, 중간의 피그마 시연 영상은 기록되지 않았다. 직원분도 난감해하셨다. 3일 안에 CPU를 업그레이드할 수는 없으니, 다른 대안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했다. 피그마 시연 영상을 따로 찍어 PPT 강연 영상에 삽입하는 방식.


피그마도 아직 낯선데, 기계적인 난관과 해결책의 불확실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며칠 전부터 저리던 왼쪽 어깨와 팔이 더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내일과 모레까지 14개의 영상을 모두 찍어야 한다. 오늘 안에 피그마 영상을 촬영해 PPT 영상에 삽입해야 하는 이 상황이, 피하고 싶은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영상 촬영과 편집은 나와 거리가 먼 영역이다. 연초부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고통이라는 단어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무거웠다. 올해는 고통의 기준을 올리라는 신호인가. 내가 지금껏 고통스럽다고 여겼던 수준에서 한 단계 벗어나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다시는 이런 건 안 하겠다는 말이 턱밑까지 차오르지만, 그 말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도 내가 제일 잘 안다. 이것도 지나고 나면 또 남는 게 있겠지. 지금껏 모든 일이 그랬듯이. 조금만 더 참자. 제발 피그마 영상 촬영에 더 이상 문제가 없기를. PPT 삽입이 가능하기를. 그 강연자료로 내일 촬영이 무사히 이어지기를. 기한 안에 모든 영상과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기를. 2026년아. 제발 빨리 와다오. 나에게도.



내 안의 한 줄

고통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다시 조정되는 기준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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