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82]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D-382. Sentence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오늘 아침, 남아 있던 세 개의 영상을 모두 촬영하고 14개의 강의영상과 강의자료, 결과보고서까지 전부 제출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처럼 시원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은 많이 덤덤했다. 끝났다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너무 오래 이 상태로 달려와서, 멈추는 법을 잠시 잊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한 건, 이제야 비로소 올해를 생각해볼 작은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 여유는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 시작됐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해왔던 체중계 위에 올라선 순간. 운동은 멈추고, 밤이고 새벽이고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며 지낸 시간의 결과는 꽤 솔직했다. 공복 상태에서 확인한 체중은 역대급이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애플워치를 빼보는 어이없는 시도까지 해봤지만 숫자는 미동도 없었다. 현실은 늘 정확하다. 일단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아무 때나 먹는 습관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월 말까지 3kg 감량이라는 소박하지만 분명한 목표도 세워본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방학은 고작 두 달인데,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왜 이렇게 많은지. 삼척 시범사업 준비, 언젠가 꼭 써보고 싶었던 책의 주제와 아이디어들, 읽다 만 책들과 아직 펼치지도 못한 읽어야 할 책들. 3월 초쯤 제출해야 할 연구제안서, 2020년에 지원받았던 연구비로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논문까지. 일의 목록만으로도 숨이 찰 만큼 빼곡한데, 마음은 또 다른 장면들을 그린다. 첫째와 아침마다 모닝 루틴을 함께보며 경제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 중학생이 되고 나서 책과 멀어진 첫째와 도서관에 가서 조용히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다짐. 곧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둘째와 서점에 들러 방학 동안 풀 만점왕 문제집을 고르고, 띄어쓰기를 함께 연습하는 모습까지.
욕심만 놓고 보면, 슈퍼우먼을 꿈꾸는 욕심쟁이 아줌마가 따로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계획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니,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진짜 소망 하나가 또렷해진다. 그건 더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더 많은 걸 해내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상황에 따라 감정에 휘둘리는 어설픈 어른이 아니라, 어떤 순간이 와도 다정할 수 있는 사람. 말하기보다 듣기에 익숙하고, 굳어지기보다 부드러움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 바쁘고 조급한 기운 대신, 옆에 있으면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는 그런 진짜 어른 말이다. 올해도 역시, 일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만큼은 여유롭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보자고, 조용히 시작해본다. 나에게는 오늘이 바로 2026년 1월 1일이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올해도, 잘 해보자. 화이팅. 아자.
내 안의 한 줄
다정함은 쉽게 무너지지않는 힘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