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은, 결국 기다림이었다.

[D-408] 그냥 주어지는 기회는 없다.

by Mooon

D-408. Sentence

그냥 주어지는 기회는 없다.


IMG_4161.jpg @grit_nayoung

그냥 주어지는 기회는 없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머리로 아는 지식을 몸으로 살아내려니 버거울 뿐이다. 나는 여전히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지름길로’라는 본능을 버리지 못한다. 그 본능은 참 성실하게도 내 온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인생에서 쉽게 얻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늘도 그 사실을 또 확인했다. 이미 계약이 완료된 상태인데도 운영계획서의 제목을 수정해야 했고, 예산을 다시 손봐야 했고, 견적서의 업태를 바꿔야 했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일이 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 ‘아니다, 더 정확해야 한다’는 표정으로 다시 돌아오는 디테일들이 있다. 오늘의 수정은 단순한 번거로움이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형태였다.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로 단정짓기에는 인생이 너무 복잡하다. 그 기준 또한 결국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성공을 바라기보다 “그저 최선을 다해 채워가자”는 마음으로 하루를 붙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오늘의 몫을 오늘 다하는 것뿐이니까.


어제 남편은 얼마 전 인터넷 강의를 그만 둔 첫째에게 실망했다고 했다. 집중이 안 되고, 공부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놀라웠다고. 그런데 나는 남편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아들이 화면 속 선생님의 말을 따라 하며 재미있어할 거라 기대했던 걸까.


나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던 시절이 떠올랐다. 중요하고, 가치 있고, 내가 원하는 일이었음에도 집중이 자꾸 흐트러지고 딴생각이 스며들던 시간. 눈을 크게 뜨려고 애쓰는데도 어느 순간 눈꺼풀이 무거워지던 그 감각. 중요성을 아는 나조차 그랬는데, 더 자고 싶고, 게임에 목말라 있고, 유튜브 영상에 눈이 반짝이는 중학생에게 무엇을 바랐던 걸까.


이걸 단지 기대감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어도 스스로 학원 숙제를 하고, 어떻게든 단어를 외우려 하고, 화면 속 선생님의 말을 따라 하며 공부한다면, 나도 바랄 게 없다. 그런데 그 바람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기대인지 나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래서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는 일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가르치고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회를 놓지 않도록 옆에 있어주는 방식. 그런데 그 ‘기다려주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고통스럽고 노동적인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 분을 참고, 감정을 다스리고, 같은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삼키는 시간의 총합. 어쩌면 기회는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누군가가 끝까지 감당한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너무 혹독하게 사춘기를 보냈다는 한 스타강사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학교도 가지 않고 방에서도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게임만 하던 아들. 그분은 매일 아들 방에 들어가 웃으며 인사했고, 대화를 시도했고, 아무 일 아닌 듯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새벽, 혼자 베란다에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울고 나서도 다음 날은 또 웃으며 들어갔다고 했다. 그 시간이 지나,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 늦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지금이 감사하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단번에 알았다. 그분은 누가 뭐래도 성공한 엄마다. 결과 때문만이 아니라, 그 결과가 오기까지 감당한 시간이 이미 성공이었으니까.


쉬운 적이 있었나. 늘 쉽게 넘어가고 흘러가길 바라지만, 바람은 바람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나는 오늘도 성공을 바라는 마음보다, 그저 최선을 다해 채워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그렇게 채워가는 시간이 결국 나만의 지름길이라고, 이제는 조금 믿어보려고 한다.


그런데도 오늘은 글이 잘 안 써진다. 아마도 내가 쓰고 싶은 건 “잘 견뎠다”가 아니라 “지금 견디는 중이다”라는 말이라서일 것이다. 끝맺음을 하려는 순간마다, 아직 진행 중인 마음이 나를 붙잡는다. 그래서 오늘은 결론을 억지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 대신 오늘의 진실만 남겨두기로 한다.



내 안의 한 줄

기회는 기다려준 사람이 끝내 갖는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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