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로 살아낸다는 것.

[D-410] 내 발로 직접 인생을 살아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by Mooon

D-410. Sentence

내 발로 직접 인생을 살아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IMG_4337.jpg @willbook.zip

내 발로 직접 인생을 살아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다. 새해 인사를 겸해 오랜만에 은사님과 통화를 했다. 인스타그램으로 나의 근황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신 교수님은 요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물으셨고, 나는 삼척에서 로컬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서울과 삼척을 오가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잠시의 정적 뒤에 돌아온 말씀은 예상 밖이었다. “너를 보면 짠하다”는 말과 함께, 제대로 돈은 받고 일하는지, 차라리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걱정이었다. 순간 당황했고,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고, 의미 있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랜 세월 나를 봐오신 교수님께서는 내가 지방을 다니며 강의를 하고, 논문을 쓰고, 프로젝트를 하며 애쓰는 모습을 알고 계신다. 가끔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는 학교에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나를 늘 안타까워하셨다. 어제 통화를 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교수님이 보시는 나는 열심히는 하지만 아직 제자리에 안착하지 못한 사람,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전화를 끊고 나서 꽤 오랫동안 그 말의 여파가 나를 흔들었다. 내가 그렇게 안 돼 보이는 걸까. 어떻게든 올라가 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으로만 보이는 걸까. 나는 바닥부터 하나하나 쌓아오며 살아왔다. 그것이 선택이었는지, 환경이었는지, 혹은 그 시절의 시간 때문이었는지는 이제 와서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누군가가 깔아준 길 위를 걷기보다, 직접 길을 내며 걸어왔다는 사실이다. 쉽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만들어지지 않는 하루하루다. 그래서 더디고 불안해 보일지라도, 그 과정의 감각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오늘 오랜만에 친한 박사 동기 선생님과 점심을 했다. 어제의 통화 이야기를 전하자 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에 신경 쓰지 말라고, 그 누구의 잣대에 맞추어 사는 인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 말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자리보다는 과정 속에 서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내 발의 감각으로 남는 삶이라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오늘은 유난히 예민했다. 이번 주까지 제출해야 하는 제안서 때문인지, 아침부터 감정을 쏟아내는 중2 아들 때문인지, 오후 내내 짜증이 마음을 채웠다. 꽃길을 걷겠다고 시작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시가 많은 날은 조금 벅차다. 육체적인 피로보다 더 힘든 것은 정리되지 않는 마음이다. 괜히 서운하고, 괜히 억울하고, 괜히 나를 설명하고 싶어지는 마음. 하지만 이 마음을 오래 붙잡지는 않기로 한다. 붙들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설명할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안쓰러운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다. 넘어지더라도 내 발로, 흔들리더라도 내 감각으로 걷는 사람이다. 오늘은 좀 힘들었지만, 이 또한 내가 직접 겪고 지나가는 하루다.



내 안의 한 줄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발의 감각으로 걷는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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