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14] 한 번도 물리의 사랑을 받은 적은 없다.
D-414. Sentence
한 번도 물리의 사랑을 받은 적은 없다.
한 번도 물리의 사랑을 받은 적은 없다. 이렇게 공감 가는 말을 만나다니. 더 놀라운 건 이 말을 우리나라에서 물리학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몇 안 되는 학자 중 한 분인 김상욱 교수님이 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디자인을 사랑한다.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을 다녔을 정도로 미술을 좋아했고, 미대 말고는 다른 대학을 생각해 본 적도 없이 자라왔다. 엄마와 미술학원 원장님이 성적을 올려야 한다며 고2 여름방학까지 목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미대를 보내지 않겠다고 했던 몇 년을 제외하면, 나는 늘 미술학원에 있었다.
결국 원하는 대학에는 가지 못했다. 합격 여부를 미술학원에서 확인하고 집으로 걸어오던 길,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에 입학한 뒤 1학년 내내 재수와 반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동안은 주변의 반대 때문에 포기했다고 생각해왔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니 어쩌면 나 자신을 더 적나라하게 마주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미대를 다니며 아주 빨리 깨달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1학년이었기에 기초 디자인수업을 들었는데, 한 동기의 과제는 늘 눈에 띄게 달랐다. 조용한 친구였지만 제출하는 과제마다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돋보였다.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특별한 디자인 감각을 타고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린 나이였지만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디자인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결국 지금의 나는 디자이너는 아니다. 디자인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기 전, 사람들의 욕구를 관찰하고 컨셉을 도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끔 상상해본다.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공부를 하고 있을까 하고. 쓸데없는 상상이라는 걸 알지만, 돌고 돌아도 결국 답은 같다. 그래도 나는 디자인을 선택했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 짝사랑으로 끝날지라도, 짝사랑도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디자인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만큼 잘 알고 있는지, 그만큼 공부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선뜻 할 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돌고 돌아 결국 디자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나도 보게 되지 않을까.
내 안의 한 줄
디자인은 나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디자인을 사랑한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