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16] 나의 보폭으로. 나의 길을!
D-416. Sentence
나의 보폭으로. 나의 길을!
나의 길을 가는데 남의 보폭으로 얼마나 오래 걸을 수 있을까. 물론 남의 보폭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나의 발걸음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늘 불안하고 조급한 이유는 결국 나의 보폭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금 느린 것 같고, 어딘가 뒤처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멀리 가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발걸음이 아니라 남의 속도를 기준으로 나를 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침이 되면 자동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리스트처럼 떠오른다. 엄마로서 챙겨야 할 일, 선생으로서 준비해야 할 일,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해결해야 할 일들. 늘 해야 할 일보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시작된다. 특히 3월이 되면 아이들의 새 학기와 함께 챙겨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1년 사이 10cm나 자라버린 첫째에게 맞는 체육복을 새로 사야 하고, 아이들 학교 담임선생님 상담 날짜도 확인해야 한다. 바둑을 꾸준히 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영어와 축구를 하고 싶다는 둘째의 방과후 수업도 신청해야 하고, 오후 간식을 준다는 말에 돌봄을 신청하겠다는 둘째를 위해 필요한 서류들도 제출해야 한다. 이런저런 일들을 챙기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버린다.
그러다 결국 웃지 못할 실수도 했다. 첫째아들 학교 상담 기간을 둘째 학교로 착각해 선생님께 상담 신청 기간을 놓쳤다는 메시지를 보내버린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답장을 보내셨다. 상담 신청 기간 같은 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가정통신문조차 나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멍해졌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 와중에 이번 학기는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수업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수정예 4시간 전공 수업, 온갖 전공이 섞여 있는 50명 규모의 교양 수업, 그리고 대부분이 중국 학생들인 대학원 논문 지도 수업까지. 강의를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어 가는데도 이번 학기처럼 모든 수업이 낯설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11명을 데리고 처음 진행한 4시간 전공 수업에서는 생각보다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발견했다. 나 역시도 이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다른 교수님들은 이 긴 시간을 어떻게 운영하시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또 다른 날에는 50명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주제는 하필이면 퍼스널 브랜딩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한 수업인데 50명이라니.
결국 집중해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정신이 없어서였는지 시간 감각마저 흐려졌다. 12시에 끝나는 수업이었는데 혼자서 11시에 끝나는 수업이라고 착각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10시 40분쯤 수업을 마무리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라고 말했을 때 학생들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던 이유를 이해한 것은 학교 현관을 나설 때였다. 아직 수업이 끝날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이어지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속도가 과연 나의 보폭과 맞는 것일까. 너무 빠르게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보폭에 맞추려고 애쓰느라 나의 발걸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남이 바라보는 나의 속도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나의 보폭을 생각해본다. 결국 내 속도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남의 눈에 내 보폭이 어떻게 보일지를 계속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제대로 걷고 있는지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내 안의 한 줄
나는 나의 보폭으로 걷는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