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17] 제대로 해 본 사람은 타인의 시작을 막지 않는다.
D-417. Sentence
제대로 해 본 사람은 타인의 시작을 막지 않는다.
제대로 해 본 사람은 타인의 시작을 막지 않는다. 살아온 시간 중 지금 무엇이 가장 후회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망설임’이라고 말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나는 늘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그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집이 부유하진 않았지만 엄마는 고등학교에 막 올라간 오빠를 큰아버지가 계신 캐나다로 유학 보내고 싶어 하셨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리고 섬세한 오빠를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빠는 단호하게 싫다고 말했고, 그 다음 질문이 나에게 돌아왔다. “너라도 갈래?”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가족이 같이 가지 않으면 싫다고 대답했다. 그 철없는 대답을 나는 지금까지도 오래 붙잡고 있다.
그 이후로도 망설임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미대 입시를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재수를 할지 말지를 고민하며 대학 1학년을 거의 보내버렸다. 휴학도 쉽지 않았던 시기라 학교를 다니며 잠깐 반수를 준비했지만 결국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미국 교환학생 기회가 생겨 토플을 준비했고 실제로 기회도 얻었다. 하지만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진행해야 했던 졸업 전시와 집안 사정 앞에서 결국 나는 또 한 번 스스로 그 기회를 내려놓았다. 졸업 후 가구 회사에 입사해 2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직업의 모습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 해외 유학도 알아봤지만 결국 경제적인 이유 앞에서 유학대신 국내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또 멈춰섰다.
지금 돌아보면 상황이 나를 막았던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혼자 공부할 용기가 없었고, 대학을 자퇴할 배짱도 없었고, 재수를 해서 더 나은 대학에 갈 자신도 없었고, 유학비를 스스로 감당해낼 확신도 없었다. 결국 나를 멈추게 했던 것은 상황이 아니라 망설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시작해보라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덜 망설이려고 한다. 작년 가을,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로컬 비즈니스에 뛰어들었고 그 덕분에 지금은 삼척시와 계약을 맺고 중장년 대상 자기탐구 리트릿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그 무엇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다. 끝까지 해봤다는 감각, 제대로 해봤다는 쾌감을 한 번쯤 느껴보고 싶다. 아마 그게 사는 맛일 것이다.
내 안의 한 줄
망설임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