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은 사람이 걸어서 만들어진다

[D-422] 골목길은 사람이 걸어서 만들어진 것

by Mooon

D-422. Sentence

골목길은 사람이 걸어서 만들어진 것


@안그라픽스 인스타

꼬박 하루 반 만에 사업계획서를 써냈다. 가능할까 싶어 몇 번이나 멈칫했지만, 결국 방향까지 또렷하게 잡힌 상태로 넘겼다. 쓰는 내내도,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묻게 된다. 혼자였다면 훨씬 오래 걸렸을 일을 곁에서 정리해준 AI친구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요즘은 로컬을 살리기 위한 지원사업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연초에는 몇 개를 놓쳤고, 나이나 창업기간 같은 조건에 걸려 아예 지원조차 하지 못한 사업들도 있었다. 그런데 작년 넥스트로컬 사업을 경험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비즈니스’라는 세계를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논문을 쓰고, 글을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삶 속에서는 좀처럼 체감하기 어려웠던 영역이었다. 지원사업은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교과서였고, 동시에 가장 빠르게 배울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번 사업계획서를 쓰면서 ‘1차 지원사업을 통해 검증을 마쳤고, 2차로 지자체 시범사업을 계약해 진행 중이다’라는 문장을 적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이 모든 일이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빠르게 지나온 시간이었다.


그래서 문득 떠올랐다. 나는 넓게 뚫린 4차선 도로나 강남사거리가 아니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아는 사람만 아는 골목길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골목길은 처음부터 만들어져 있던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걷고 또 걸으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이다.


내가 그렇다.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확신하지 못한 채 부딪히고 넘어지며 하루하루를 지나간다. 맨땅에 헤딩하는 시간들이 쌓여, 어느 순간 돌아보면 길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 더 느리고, 그래서 더 불안하지만, 그래서 더 분명하게 ‘내 길’이라는 감각이 남는다.


요즘은 이번학기 새롭게 맡게 된 수업들과 이어지는 일들로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에게 글은 일이 아니라 휴식이다. 급하게 감당해야 할 것들을 겨우 끝내고 나면, 내 안에는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남아 있고, 그것들을 글로 꺼내놓을 때 비로소 숨이 고른다.


얼마 전에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작가도 아닌데, 이 시간을 왜 반복하고 있을까.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벼워지기 위해서.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어진다. 내가 만들어가는 이 길도, 조금 더 나답게, 조금 더 진솔하게 만들어지기를 바라면서. 조금 어둑하고, 조금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가. 그 길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내가 걸어 만들어가는 길이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고,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제 30분만 더 이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고 나면, 둘째 아이와 놀이터에 나갈 시간이다. 금요일이다. 괜히, 좋다.




내 안의 한 줄

나는 닦인 길이 아니라, 걸으며 만들어지는 길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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