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토요일을 처음처럼

[D-431] 무뎌진 것들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발견해내는 감각

by Mooon

D-431. Sentence

너무 익숙해서 무뎌진 것들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발견해내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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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라켄야를 존경한다. 2007년에 나온 『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그의 책은 나에게 신선했고, 감동적이었고,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보물 같은 책이다. 디자인을 대단하고 혁신적이고 화려한 무언가로만 말하지 않고,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다시 보려 하지 않는 일상 속 사물과 감각을 조용히 꺼내어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그의 시선이 좋았다. 오래전 그 책을 읽으며 나는 디자인이란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을 다시 발견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그런 감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책을 펼치지 못한 지 정말 오래되었다. 못 본 것이 아니라, 볼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 같다. 보고 싶어서 주문한 책도 있었고, 좋아하는 책이라며 따뜻한 친구가 선물해준 책도 있었고, 아시는 작가님께서 신간을 내셨다며 귀한 책을 보내주시기도 했지만, 결국 그 어떤 책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다. 책은 책상 한쪽에 쌓여 있었고, 나는 그 책들을 볼 때마다 고마움과 미안함과 부담을 동시에 느꼈다. 읽고 싶어서 곁에 둔 책들이 어느새 해야 할 일처럼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을 감당하느라 몸도 마음도 오래 분주했다. 해야 할 일은 끝없이 이어졌고, 나는 그 일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거의 매일 노트북과 한 몸처럼 지냈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낮이고 밤이고, 심지어 새벽까지도 머릿속에는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일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계속 밀어붙였다. 물론 내가 선택한 일이었고, 내가 해내고 싶은 일이었고,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해서 늘 나를 덜 지치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도 계속 쌓이면 무게가 되고, 책임감으로 붙잡은 일도 어느 순간 내 일상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지 않았다. 그냥 일과 관련된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저 평범한 토요일을 보내고 싶었다. 중간고사를 코앞에 앞둔 중2 첫째는 학원 보강을 보내고, 남편과 둘째아들과 함께 한강으로 향했다. 돗자리를 깔고 잔디밭에 누웠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숨이 조금 트였다.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였다. 남편과 오랜만에 캐치볼을 했고, 자유를 만끽하라며 남편은 둘째를 데리고 모래놀이 장비와 함께 한강 놀이터로 사라졌다. 고마운 찰나였다. 나는 돗자리에 누워 오래전에 읽다 만 『일의 감각』을 펼쳤다. 파란 하늘에는 연이 날고 있었고, 책장 위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챕터 제목이 보였다. 그 제목이 이상하게 오래 눈에 들어왔다. 분주한 몸과 마음에 밀려 끝내지 못하고 숙제처럼 남아 있던 책의 뒷부분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여유는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여유는 일이 모두 끝난 뒤에 남는 시간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정리되고, 마음이 완벽하게 가벼워지고, 누군가 나에게 비어 있는 시간을 선물해줄 때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여유는 내가 의도적으로 멈추기로 결정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시간이었다.


요즘 너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엄마는 또 일하러 가?” 막내아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인데, 그 말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 말에는 서운함도 있고, 기다림도 있고, 익숙해져버린 포기도 조금 섞여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안하면서도, 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왔다. 하지만 한강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너무 익숙해져서 무뎌진 것은 일이 많은 삶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밀려 사라져가는 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태도였는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 가족과 아무 목적 없이 함께 있는 시간, 책 한 장을 천천히 넘기는 시간, 하늘을 보는 시간, 바람을 느끼는 시간. 그런 것들은 너무 평범해서 자꾸 뒤로 밀렸다. 하지만 정작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시간은 그런 평범한 순간들 안에 있었다. 하라켄야가 일상 속에 숨겨진 감각을 다시 꺼내 보여주듯, 나 역시 내 일상 안에 있었지만 너무 오래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다시 발견해야 했다. 어제의 한강은 그래서 나에게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무뎌진 감각을 다시 깨우는 작은 디자인 같았다. 대단하고 혁신적이고 화려한 무언가가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삶의 문제를 자연스럽고 세심하게 다시 바라보는 시간.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것은 더 많은 성과도, 더 빠른 속도도, 더 완벽한 계획도 아니었다. 잠시 멈추어 내 일상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바라보는 감각이었다.


오늘은 중간고사임에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아들과 함께 스타벅스에 나와 있다. 아들은 공부를 하고 있는 듯 아닌 듯 하고, 나는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는 사춘기 아들과 하라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날이 올까. 어쩌면 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대하는 건 내 마음이니까. 오늘의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해본다. 아이가 언젠가 엄마가 좋아했던 책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엄마가 일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 어느 토요일 한강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고 하늘을 보며 다시 삶의 감각을 찾아가려 했던 사람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느껴준다면 좋겠다. 너무 익숙해서 무뎌진 것들을 처음처럼 다시 바라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가장 현실적인 여유이고, 가장 조용한 회복인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한 줄

여유는 내가 다시 나를 바라보기 위해 만드는 시간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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