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부른 노래가 남았다.

[D-433] 까불지 말자.

by Mooon

D-433. Sentence

까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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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까불다’의 뜻이 궁금해졌다. AI는 여러 가지 정의를 알려주었지만, 그중 가장 마음에 남은 뜻은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게 설치다’였다. 어쩌면 요즘 내가 아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었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자주 건네야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각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은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그 행동을 성실하게 지속한다. 한 번의 반짝임보다 오래 버티는 힘이 결국 사람을 만든다. 남들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갖기 위해서는 재능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고, 자신만만함보다 반복되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걸 말로 설명하는 일은 참 어렵다. 특히 아직 삶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 모르는 아이에게는 더 그렇다.


첫째아들의 중간고사가 어제 끝났다. 시험 기간 내내 가장 답답했던 것은 아들의 지나친 자신만만함이었다. 무지함에서 오는 자신감. 아직 실패의 무게를 충분히 겪어보지 않았고, 기회가 얼마나 쉽게 흘러가버리는지 몸으로 깨닫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다음날 시험을 봐야 하는 교과서도,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언급하신 프린트물도 가져오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고 있는 아들을 보며 답답했다. 게임을 하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보다 더 안타까웠던 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채워보려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온 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지난 기말고사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가 받은 점수보다, 네가 네 시간과 기회를 어떻게 대했는지가 더 아쉽다고 말했다. 아들은 알아듣지 못한 눈빛이었다. 그냥 점수만 잘 나오면 되는 거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작년 기말고사보다 점수가 올랐다는 말 앞에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살아보니 삶은 생각보다 까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대학입시를 치르고, 취업의 문턱을 넘고, 결혼을 하고, 갓난쟁이 아이를 시어머님께 부탁드린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박사학위를 따고, 다시 취업을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은 내가 감히 예측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계획대로 되는 일보다 계획을 비켜가는 일이 많았고, 자신감만으로 넘을 수 없는 문턱도 많았다. 인생 앞에서는 함부로 까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너무 쉽게 자신만만해질 수도, 너무 쉽게 남을 판단할 수도, 너무 쉽게 내일을 장담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저 두 아들이 너무 쓴맛을 보고서야 까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삶이 반드시 고생을 통해서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최대한 덜 다치고, 덜 무너지고, 그래도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조금씩 경험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의 잔소리는 결국 그 마음에서 시작된다. 아이를 조급하게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시간을 너무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해서. 욕심인줄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긴 연휴의 시작이었다. 두 아들과 한강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어린이날을 맞아 조카들 선물을 사기 위해 아울렛에 들렀다가 장을 보고 돌아왔다. 하루 종일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움직이고, 때로는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돌아가며 신청곡을 받아 함께 음악을 듣다가, 어느 순간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험도, 잔소리도, 걱정도 잠시 멀어졌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오늘 밤만큼은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지금을 통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자신만만하고, 조금 어설프고, 조금은 엄마 속을 뒤집어놓으면서. 그래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삶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도, 그럼에도 노래 한 곡쯤은 크게 부르며 지나가도 된다는 것도.



내 안의 한 줄

삶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동안에도, 노래 한 곡쯤은 크게 불러도 된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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