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정착 초기 손님 폭탄 맞은 리얼 스토리
지난 해 여름과 겨울, 일요일 밤 JTBC ‘효리네민박’을 보며 마음이 한껏 들떴었다. 드론으로 찍은 아름다운 제주 풍경과 함께 솔직한 효리씨와 친절한 상순씨의 일상은 가슴을 콩닥콩닥하게 만들었다. 한창 제주에 우리집을 짓고 있을 때이다 보니 방송에 나오는 멋진 집들과 제주 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봤다. 우린 곧 같은 도민이 될 사이라는 근거 없는 동지 의식까지! 당시엔 제주에 내려가서 어떻게 지낼 지 상상하며 월요일 출근 스트레스를 견뎠었다.
제주에 집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놀러 갈게’였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공수표처럼 남발했던 말도 ‘놀러와!’라는 말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우리 조상님들이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다. 그 씨앗은 까치가 쪼아 먹지도 않아 심은 대로 100퍼센트 쏙쏙 올라오는 튼실한 씨앗이었다.
두 달 조금 넘는 제주 정착 기간에 11팀이 우리집을 다녀갔다. 숙박을 하지 않은 팀을 뺀다면 9팀 정도니까 한달에 평균 4팀 정도를 맞이한 셈이다. 짧게는 몇 시간부터 길게는 8일까지 묵고 갔다. 적게는 1명부터 많게는 7명이 방문했다. 제주에 먼저 정착한 지인은 이주 한 뒤 갑자기 10년 전에 한두 번 봤던 지인이 연락이 와서 묵고 갔던 황당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또 다른 지인은 어떻게 하면 지인들이 자기집에 묵지 않을 수 있는지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도 했다.(노하우는 비밀! ㅋ) 제주도에 정착한 사람들이 초기 1년 동안 겪는 통과의례란다.
효리네민박을 보며 ‘에어비앤비를 해 보면 어떨까?’라고 잠시 상상했었다. 다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더랬다. 막상 많은 지인들이 찾아오다 보니 반갑기도 하지만 힘들다. 생활공간과 손님 공간이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다 보니 프라이버시가 존중되기 힘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다니며 큰 소리를 지르면 예민한 나로서는 견디기가 힘들다. 펜션을 위해 대충 지은 집이 아니라 설계부터 시공까지 공을 들여 새로 지은 내 집(공간)이다 보니 혹여나 파손될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정녕 내 가슴은 새가슴이던가?
그 중 가장 힘든 경우는 숙박을 한 후에도 여행을 떠나지 않고 집에 머물면서 삼시 세끼를 함께 먹고 지내야 할 때이다. 그럼 아내는 밥 하느라 나는 설거지 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차라리 민박집이라면 게스트들이 여행 간 시간에 짬을 내어 여유라도 부려볼 텐데, 그렇지 못하니 몸과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한편으로 잘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가도, 불쑥 올라오는 짜증이 표정으로 드러났던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함과 자괴감이 동시에 들었다. 방송이긴 하지만 효리씨와 상순씨가 참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다. 동네 사는 누나들이 저녁에 구역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집을 왔었다. 어릴때부터 신앙생활을 함께했던 무척 친한 동네 누나들이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누나들이 내 방에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버렸다. 너무 졸리고 힘들었는데 내 방에 들어와선 자꾸 말을 시키니 나도 모르게 확 올라왔다. 그러고 나서는 누나들에게 짜증을 냈다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내가 그 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었다. 지금도 그때 누나들이 당황해 하던 얼굴이 또렷히 기억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어쩔 수 없다. 깍쟁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규칙을 좀 정해야 될 듯하다. 그게 나와 우리집을 방문한 지인들을 위해서 좋을 것 같다. 내 성격을 돌아보니 어린 아이들이 많은 건 힘들다.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이 내 영역에서 뛰어다니고 소리지르는 상황이 되면 긴장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머무는 것도 힘들다. 생활공간의 분리가 확실하지 않기에 생기는 스트레스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보면 지인이 방문했을 때 내가 참고 그나마 즐겁게 지낼 수 있는 한계선은 1박 2일이 가장 적당한 듯 하다. 미안하지만 아내에게도 부탁해 그렇게 해달라고 이야기 해야겠다. 요렇게 생겨먹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밖에 없다. 나는 이상순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