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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18. 2018

[소다일기05] 쓰레기장의 길냥이들

2018년 12월 18일(화요일) / 맑다가 흐리다가 다시 맑음


 제주도에는 곳곳마다 ‘클린하우스'라는 시설이 있다. 마을 곳곳에 만들어 둔 쓰레기 분리수거장이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요일별로 해당되는 재활용품이나 일반 쓰레기를 배출하는 곳이다. 배출해야 하는 시간이 늦다 보니 주로 밤에 이곳을 찾게 되는데,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는 길을 200미터 정도 걸어가야 해 살짝 무섭다.   


 사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쓰레기통 안에서 갑자기 고양이들이 튀어나올 때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통에서는 몇 마리씩 갑자기 튀어나와 놀란 적이 많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릴 때는 일부러 인기척을 크게 하거나 통을 발로 두드리고 버리곤 했다. 눈치 빠른 녀석들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미리 몸을 피하지만 어디에나 늦은 녀석들은 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서 이 녀석들이 잘 보이지 않고 쓰레기봉투도 뜯어져 있지 않았다. 추워서 다른 곳에 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젯밤 늦게 클린하우스에 가보니 사료를 듬뿍 담아 놓은 플라스틱 용기가 놓여 있었다. 겨울철 길고양이들을 생각해 주는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다. 함께 쓰레기를 버리러 온 초딩 딸이 휴대폰 불빛을 비추었더니 쓰레기통 아래에 노랑이랑 고등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오늘 밤에도 우리는 쓰레기를 버린다는 핑계로 이곳을 다시 방문했다. 어젯밤에 보니 사료는 있었지만 깨끗한 먹을 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마를 고양이들을 위해 물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클린하우스 바닥에 놓아두었다. 오늘도 노랑이랑 고등어가 있었는데, 우리가 떠나자 슬그머니 나와서 물을 마신다. 다행이다.


제주도의 클린하우스, 이곳에 길냥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뜯으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이곳에 길냥이들을 위해 사료를 주고 있다. 다음날 깨끗한 물이 필요할 듯 해 그곳에 놓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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