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이해

영화 '블랙스완' 과 소설 '종의기원'

by 김영기



살면서 감사하는 일중 가장 으뜸으로 꼽는 것은 ‘가정환경’이다. 나는 (주관적으로) 좋은 가정에 태어나 무탈 없이 자랐고, 덕분에 지금은 나름 건강하고 건전한 자아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내 자아형성에 ‘행복한 가정’이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종종 접하는 심리학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보면 자아형성에 주변 환경 그중에서도 가정환경의 영향을 꽤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살면서 처음 나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처음 접하는 대인관계가 백지의 아이 자아에 첫번째 색을 입히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한동안은 과연 이것이 정말 중요한가 의구심을 가진적도 있다. 어릴적 접했던 대부분의 위인전과 동화에서 주인공들은 계모의 학대나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개척했으며, 끝내 후세에도 이름을 날리지 않았던가. 자신의 의지가 강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건강한 자아가 형성될 것이라 생각했다.(어쩌면 주입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바꾼 계기는 명확하진 않지만, 그 즈음인 것 같다. ‘내가 보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며, 삶에는 다양한 케이스와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부터. 위인이야 명확한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를 ‘위인’으로 만들게 한 어떤 요소는 분명 있었을 것이고, 불우한 환경에서도 강한 정신력, 의지는 타고났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반대로 악인 혹은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데에도 분명 어떤 인과관계는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이코패스가 천성이니(그들이 가진 뇌구조가 조금은 다르다고 하니), 정신병이니 정의한다고 해도 그걸 발휘하는데, 혹은 정도의 차이를 만드는 데에는 그에 주변에 처한 환경이 꽤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실제로 어떤 조사에 의하면 인류의 4%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갖고 있다고 하니, 4%의 인류가 그들의 특성대로 산다면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는 불행했으리라 생각해본다.

이번에 읽은 ‘종의 기원’의 주인공 ‘유진’도 그럴 것이다. 그가 제아무리 사이코 패스 중 가장 상위 포식자로 위치한 ‘프레데터’라 했을지라도 그가 그렇게 행동하게끔 만드는 원인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제목처럼 악이라는 ‘종’이 어떻게 ‘기원’했는가를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 이모가 그를 어떻게 ‘악인’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소설은 꽤나 자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한 살인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는 동시에, 나는 주인공이 꽤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의 부모였다 해도 분명 달랐을 거라 확신할 수 없지만)




그는 어른이 저지르는 섣부른 ‘판단’이 주는 폭력에 처해있다고 생각했다. 종종 어른(특히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들은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 아이들을 쉽게 판단하는 일종의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이 경우가 그렇다고 봤다. 어머니는 애초에 원치 않은 임신으로, 자식간의 차별은 물론, 아이의 성향을 쉽게 판단하는 우를 범했다. 이모 역시 좀 다른 아이에 대해 획일화된 접근법을 들이밀어 판단하는 폭력을 저질렀다. (물론 그녀는 의사로서의 판단을 했겠지만.) 아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결여된 채.



책을 읽는 내내 여러 요소에서 유진의 성향이 ‘사이코패스’의 천성적인 부분과 연관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그에게 내재된 악이 있었고, 그걸 억제하는 ‘양심’이라던지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사이코 패스도 충분한 교육을 하면 어느 정도 치료될 수 있는데(특히 주인공의 경우 어릴 때 사이코패스 특성을 판단했기에) 그런 부분이 부족한 환경에 처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영화 ‘블랙스완’에서의 주인공 ‘니나’역시 비슷했다. 어머니의 엄격한 규율과 과도한 사랑이 주는 폭력. 그리고 그것이 아이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안쓰러웠다. 시종일관 주변 눈치를 보는 주인공(나탈리 포트만 연기에 박수를...)을 보면서, 그리고 그녀가 서서히 자기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환경이 주는 영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 말미에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에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그러지 못하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고.


악에 대처하는 것은 곧 충분한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는 이번 시간에서 우리는 좀 더 나은 우리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이에게 폭력대신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은 어른이 가져야할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어른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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