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달리고 있는가.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2019)'과 함께. 욕망과 목표

by 김영기

오늘의 요약.

1. 달리기를 하고 있다. 달리기를 왜 하는가.

2. 더 페이버릿은 정말이지 인상적인 영화였다.

3. 내 목표와 욕망은 잘 구분되어 있는가.


1.

2017년 11월.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보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마라톤..이라고 하기엔 10K여서 좀 민망하지만,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나는 운동을 싫어했기에. 운동을 잘 못할뿐더러 땀이 많아 운동 같이 움직이면 온 몸이 흠뻑 젖어 번거로워진다. 움직이는 걸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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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달리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달리기는 참으로 정직한 운동이다. 내 몸과 러닝화만 있으면 달릴 수 있다.

(물론 하다 보니 장비 욕심이 나서 시계도 필요하고, 싱글렛, 헤어밴드, 러닝 양말 등.. 살게 많긴 했다.)

내가 달리는 만큼 기록이 나온다. 연습을 할수록 기록은 조금씩 나아지고 힘도 덜 든다. 치고받고 할거 없으니 내 실력이 곧 기록이고 결과가 된다.

이처럼 정직한 운동이 또 있을까 싶은 정도다. 정직, 솔직. 내가 이 운동에 느끼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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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여러 달리기 모임에 참여했다. 러닝 크루라고 하는 러닝 모임이 요즘엔 참으로 많다.

(러닝 크루에 가입하는 조건은 쉽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인스타 등으로 신청하고 약속 장소에 나와 달리면 된다. 거의 매일매일 어디선가 어느 크루가 달리고 있다.

대부분 무료라서 부담도 없다. 이런 서비스를 무료로 오픈하고 꾸리는 러닝 크루 크루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러닝 크루에 나가면 놀랄 정도로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텐션들도 좋다. 다들 흥이 많고 에너지가 넘친다. 이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달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친분이 없는 불특정 다수들과 함께할 수 있다니, 세상이 참 달라졌다고 생각된다.


달리다 보니 장비 욕심과 함께 기록 욕심도 생겼다. 기록. 러닝 크루에 나온 친구들의 기록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10K만 기록이 있는데, 이 정도가 딱 내 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왜 무릎 아프게 10K 이상 뛰나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샌가 나도 하프, 풀 마라톤 기록을 세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달리기를 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달리기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달리면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발에 물집도 생긴다. 땀도 흠뻑 나서 꼭 샤워를 해야 한다. 달리기를 하고 나서 집에 오는 길은 곤욕이다.

그런데 나는 습관처럼 러닝 크루 모임에 나가고 달리고 달리기 대회를 신청해서 기록을 경신한다.

왜? 왜 나는 고생을 사서 하는가. 단지 건강해지기 위해서?


목표.

'목표'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걸 달리면서 느낀다.

골인 지점 통과라는 이 단순한 목표가 있어서 나는 힘든 걸 참고 달린다.

달리다 보면.. 언젠가. 언젠가는 목표지점에 다다르고, 비록 결과가 좋든 안 좋든 간에 땀 흘린 만큼 성취감을 느낀다. 힘들었지만 오늘도 여기 골인지점을 통과했다는 그 기분이 느껴지는 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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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올해 본 영화 중에 인상적인 작품 중 다섯 손가락에 드는 하나가 바로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다.

영화는 시종일관 팔딱팔딱 튀는 싱싱한 물고기 같다.

신선하고 생기 넘친다.

저 포스터에도 '미친 발버둥'이란 말을 괜히 기록한 게 아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나의 눈을 놓지 않게 했다. 빠른 전개, 18세기 영국 궁정 모습, 촘촘한 심리 묘사, 정치, 치정 등 요소요소가 흥미로웠다.

물론 이를 잘 살린 세 여배우의 연기도 훌륭했다. (세 배우를 한 영화에서 보는 것도 이 영화의 크나큰 장점)


사실 이건 다 부가적인 이유다. 이 영화가 정말 인상적인 이유는 바로.


스토리다.

극의 흐름, 스토리는 어찌 보면 실로 단순하다.

권력이란 욕망에 집착하는 두 여자의 싸움이 주된 내용이다.

(물론 정치권력의 싸움_그것도 18세기 영국 왕실에서_이 전형적인 '남성'의 것에서 벗어난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권력다툼을 다룬 영화나 콘텐츠는 차고 넘치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 매력적인 주제는 끊임없이 여러 형태로 나온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한도 끝도 없음을 여러 콘텐츠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도 그렇다.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또 빼앗으려고 온갖 술수를 써가며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여기서 나오는 두 주인공들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을 이루고자 했던 마음이 커서 욕망이 되어버린 걸까.


3.

한때 나도 큰 꿈을 가진 적이 있다.

큰 꿈이 목표였는지 욕망이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욕망 같기도 하다.

목표랑 욕망이랑 분명 다른 뜻이지만, 나는 혼동해서 써왔고 지금도 헷갈릴 때가 있다.

달리기를 할 때 골인지점에 다다르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목표이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건 목표인가? 목표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목표보단) 욕망 같다.



욕망 (欲望/慾望) [용망][명사]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목표 (目標) [명사]
1.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또는 그 대상.
2. 도달해야 할 곳을 목적으로 삼음. 또는 목적으로 삼아 도달해야 할 곳.
3. < 심리> 행동을 취하여 이루려는 최후의 대상. 


욕망이 꼭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욕망을 탐하다 보면 본디 누군가는 피해를 입기 쉽다.

피해를 입히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운다는 게 쉽지 않다.

늘 목표와 욕망을 잘 구분하고 또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욕망을 부리는 건 아닌지 부지런히 살펴봐야 하고

항상 나를 의심하고 나쁜 마음으로부터 경계해야 한다.

나는 좀 더 좋은 사람, 나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목표가 있다.

나는 목표를 향해 잘 달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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