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내가 카시트 사줄게.”
동생과 육아용품점에 갔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은 곧 태어날 첫 조카를 엄마인 나만큼이나 설레며 기다렸다. 태어나기 전부터 선물을 정말 많이 해 줄 정도로.
고민 끝에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으로 골랐다.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고 어디든 다니게 될 거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그러나 현실은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이 흘렀다. 딸랑이도 쥐여주고 동요도 틀어주었지만 소용없었다.
악을 쓰고 울었다.
운전하는데 방해될까 봐 결국은 내 무릎에 앉히는 수밖에.
출산, 육아용품을 준비할 때 가장 기대되는 것은 유아차였지만 미리 마련하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장만하려면 끝이 없는 육아용품의 세계. 그 속에서 최대한 꼭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구입하자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옆집 사는 아기 엄마가 혹시 유모차 쓸 건지 물어보라길래 받아는 놨어."시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아이들은 금방 크니 육아용품에 크게 투자하지 말자고 남편과도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
깨끗하고 상태도 좋아서 쓰기로 결정했다.
4개월 무렵 유아차를 처음 접해 본 아이는 카시트에 앉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 후로 유아차에 태워 외출할 땐 아기 띠를 필수로 챙겨야 했다. 언제 또 악을 쓰며 울어서 난감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에.
거부 반응이 매우 심해서 결국 몇 번 사용하지도 못했다.
‘볕 좋은 날 유아차를 끌고 산책을 나가야지. 살랑대는 바람결에 아이가 잠든 틈을 타 공원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 해야지.’ 하는 부푼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
첫째는 다섯 살이 되어 더 이상 카시트에 앉지 않지만 곧 태어날 둘째를 위해 버리지 않았다.
네 살 터울로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카시트에 잘 앉았다. 엄지손가락 빠는 것을 좋아했던 아기라 팔을 뺄 수 없어 답답할 때 가끔 보챘던 것 말고는.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다가 스르르 잠들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외출 준비를 마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자고 있는 아이를 카시트에 태웠는데 그대로 한참을 계속 잤다.
그저 신기했다.
첫째는 아무리 깊이 잠들어도 안으려는 순간 눈을 번쩍 떴으니.
"유아차 이제 버려야겠다."
"아깝게 그걸 왜 버려. 우리 집에 가져다 놔. 장 보러 갈 때 밀고 가서 짐 싣고 올란다."
계획에 없던 둘째가 생겼다. 친정집 베란다에 보관 중이던 유아차는 오랜 시간을 방치해두어서인지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덕에 첫째 때도 사보지 않았던 유아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둘째는 대성공. 정말 잘 앉아있어 주었다. 잠도 자고 구경도 하며 한 시간이 건 두 시간이 건. 따로 아기 띠를 챙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둘째는 아기 띠를 해본 적이 몇 번 안 된다. 유아차를 더 좋아했기에. 6개월 무렵 구입해서 거의 두 돌 무렵까지 두고두고 잘 사용했다. 첫째 때 실현하지 못했던 ‘산책 나가서 유아차 세워두고 커피 마시기’라는 로망도 이룰 수 있었고.
유아차에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악을 쓰며 울던 아이.
그런 아이를 아기 띠로 안은 채 동시에 빈 유아차를 끌고 오던 첫 번째 육아의 길.
한 손은 첫째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둘째가 탄 유아차를 끌며 걷던 두 번째 육아의 길.
멀게만 느껴져 얼른 도착해서 쉬고 싶은 마음에 빨리 걷고 싶던 첫 번째 길.
쏜살같이 지나버리는 아쉬움에 뒤돌아보며 천천히 걷고 싶었던 두 번째 길.
여전히 두 개의 길 위를 걷고 있는 중이다.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과 함께.
걷다가 지친다고 투덜대지도, 너무 빠르다는 볼멘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걸어가야겠다.
언젠가는 ‘그리움’만 남겨질 이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