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7학년

by 이주형

며칠 전 우리 집 인근 초등학교를 지나갈 일이 있었다. 활짝 웃는 모습으로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보았다. 학교 주변에는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요즘이 한창 졸업 시즌임을 실감케 한다.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은 그들이 안고 있는 꽃보다도 더 예뻐 보였다. 그 모습에서 오래전 초등학교 가을 동창회 겸 총동문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참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동창회에는 이런저런 사유로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었다. 마침, 원주에서 근무할 때라 친구들의 변한 모습이 궁금해 참석했었다. 참석하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 중에는 고등학교 1년 선배들이 몇 명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임에도 학교에서 만나면 언제나 거수경례로 선배 예우를 해야만 했던 친구들이다. 동창회에 참석한 나를 보더니 "야! 너 우리 동창이었어?"라며 야릇한 표정으로 악수를 청한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친구 녀석이 "얘 1년 꿇었잖아! 너 몰랐어?" 한다. 하기야 눈에 띄게 잘나지도 않았고, 특별하게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던, 그저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으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니 기억 못 하는 친구가 야속할 것도, 서운해할 것도 없다.


시오리 등굣길을 여덟 살 꼬맹이가 코 수건을 가슴에 달고, 누나 손을 잡고 쫄래쫄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6년 동안을 오갔다. 가끔은 악동 친구들의 꼬임에 빠져 땡땡이를 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친구들의 고자질로 땡땡이친 사실이 탄로 나면, 선생님의 회초리는 가느다란 내 종아리 위에서 춤을 추었다. 회초리가 밟고 지나간 종아리엔 빨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 발자국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해 집으로 되돌려지기도 여러 번 겪었었다. 가난을 눈치채고 애늙은이가 된 어린 시절의 나는 말까지도 아껴야만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는 날이 다가왔다. 시험 전날 부모님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한참을 머뭇거리시다가 입을 여셨다. "학교에 사정을 이야기해 놓았으니, 초등학교에 1년만 더 다니라고"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던 부모님의 표정과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자식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부모로서의 무능함에 얼마나 자책하셨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셨을 것이다. 목에 걸린 가시를 토해내듯, 그 말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뒤척이셨을까. 가장으로서의 무능함에 자신을 얼마나 괴롭히셨을까. 그렇게 중학교 입학시험은 응시도 하지 못한 채 초등학교 7학년을 다니게 되었다.


7학년이 되어 처음 등교하던 날, 나는 교실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난해까지는 후배였던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 앉았다. 어색함과 창피함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쟤 중학교 떨어졌나 봐?'라고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아 뒤통수가 따가웠다. 일일이 남들에게 내 사정이나 상황을 모두 설명하고 이해시키며 살 수는 없다. 똑같이 남들의 사정도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런 불편한 하루가 지나고 집에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냥 이대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버지와 큰 형님의 농사를 도울까? 그렇게 한다면 어린 마음에도 끝내는 농사꾼으로 눌러앉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열네 살짜리 꼬맹이지만 집에 있으면 농사일을 거들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담배농사 품앗이를 다녔던 나였다. 부모님께서도 아마 그런 염려 때문에 일 년을 더 학교에 다니게 했는지도 모른다. 부모로서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일 년 동안이 왜 그리 더디 가는지 지루하고 불편했다. 가난으로 잠시 불편하고 초라해져 있는 나는 비굴해하지 않을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내다 보니 일 년이란 세월이 흘려갔다. 졸업식도 참석하지 않았고 졸업장도 없는 초등학교 7학년. 그야말로 철저한 투명 인간으로 일 년을 보냈다.


동창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던 날, 동창생들의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초등학교 졸업 앨범이 없어 동창들의 얼굴을 기억해 내기가 어렵다. 가난으로 비굴해하지 않을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비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날 가난으로 인하여 겪은 아픔과 고뇌가, 나를 더 단단하게 여물게 하고 일찍 철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때 학교에 다니는 것을 중도에 포기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도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7학년!


그 일 년 동안은 내 어린 날, 나름의 고뇌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원주에 근무할 때 초등학교 7학년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었다. 생활기록부를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내 7학년의 흔적은 없었다. 사라져 버린, 잃어버린 일 년의 세월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인간은 각자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아픔과 고통을 한두 가지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모두가 마음의 고통 앞에서는 공평하고 평등한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그렇게 아파하고 신음하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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