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기간이라는 핑계로 부모님의 농사일 돕는 것도 뒤로 미룬 채, 수업이 끝난 후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기말고사 준비를 했다.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우리 집의 호롱불을 탓하며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남아 시험 준비를 했다. 드디어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말 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담임 선생님이 아닌 다른 반 선생님이 시험지를 들고 우리 반 교실로 들어오셨다. 시험지를 나누어주기 전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주시고 내 이름과 또 다른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두 사람은 지난 1/4분기와 2/4분기 수업료를 아직 납부하지 않았다. 학교 방침에 따라 기말고사 응시 자격을 박탈한다. 그러니 두 사람은 책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라!"고 하신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고 창피했다. 애써 부여잡고 있던 내 자존심은 여지없이 교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뒹군다. 쏟아지는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은 화살촉이 되어 가슴에 박히고, 바닥에 떨어진 자존심은 무참히도 짓밟히고 있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건만, 그날따라 얼굴은 화끈거리며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주 넘어지는 사람은 넘어짐에 익숙해서 아프지 않을 것 같지만, 넘어질 때마다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일어나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익숙해지려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훑어보던 요점을 정리한 공책과 필기도구를 주섬주섬 끈 떨어진 낡은 책가방에 집어넣었다.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해진 모자를 눌러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황당한 처사에 나도 모르게 교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에이 더러워서 학교 못 다니겠네!"라고 혼잣말을 내뱉고 미닫이문을 세게 닫았다. 선생님은 그 말을 들었는지 뒤따라 나와 나를 교무실로 끌고 갔다. 몽둥이가 내 엉덩이에 사정없이 내리 꽂힌다. 몇 대를 맞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돋친 목소리로 또 한 번 가슴을 후빈다. "수업료도 안 낸 주제에 겉멋만 들어서 가방은 옆구리에 끼고, 교모는 다 해진 걸 뒤집어쓰고, 그도 모자라 신발까지 꺾어 질질 끌고 다녀? 이 새끼야! 그리고 뭐? 더러워서 학교 못 다니겠어?" 나는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교무실을 빠져나와 긴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와 버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육성회비를 안 냈다고 집으로 되돌려 보내진 경우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학교 옆 작은 동산 숲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몽둥이찜질을 당한 엉덩이는 화롯불을 깔고 앉은 것처럼 화끈거리고, 가슴은 칼에 베인 것처럼 아리다. 책가방을 베개 삼아 사냥꾼 총에 맞은 사슴처럼 나무 그늘 밑에 쭈그리고 옆으로 누웠다. 초여름이라 숲은 녹음이 짙다. 바람은 싱그러운 풀 냄새와 나뭇잎의 향기를 싣고 내 주위를 서성거린다. 불어오는 바람도 초록색이다. 나뭇잎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은 유난히도 파랗고 구름 한 점 없다. 그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 기둥은 하늘로 통하는 통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줄기 바람이 나뭇잎을 열면, 열린 틈새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초록 숲 위로 그물처럼 드리워진다.
속절없이 눈물이 흐른다. 내가 흘리는 눈물로 내가 위로를 받는다.
한 번만이라도 그 이유를, 그 사정을 들어볼 생각을 안 했는지 원망스러웠다. 한 번쯤은, 한 번쯤은 이란 아쉬운 마음이 허공을 맴돈다.
그렇게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스쿨버스의 시동 소리가 들린다. 벌써 시험이 끝났는지 주위가 시끄럽다. 어쩔 수 없이 어두운 생각을 털고 일어났다. 숲의 나무들도 '다 안다'는 듯 술렁거리며 같이 몸을 일으킨다. 걷다 보니 아까보다도 엉덩이는 더 아프고 쓰리다. 나무 기둥을 짚고 멍하니 멈춰 서서 문득 나무의 상처를 읽는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뿌리의 반쯤은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줄기는 휘고 뒤틀려 옹이가 툭툭 불거져 있다. 곧게 뻗은 나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휘어지고 뒤틀린 나무들은 한 줌의 햇빛이라도 더 받아보겠다고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한다. 살아남기 위해 휘어지고 뒤틀리면서도 버텨내고 있다. 뿌리가 깊어야만 몸통과 가지를 튼튼하게 키울 수 있고, 몰아치는 바람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가엾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를 움켜쥐고 버티면서도 꿋꿋하게 살아내는 나무들의 삶을 곁눈질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행사가 많다. 마침 스승의 날을 맞아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모신다는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좋은 스승을 모신다는 것은 인생의 귀한 일이고, 좋은 제자를 갖는다는 것은 인생의 복된 일'이라는데, 나는 좋은 제자가 되지도 못했고, 좋은 스승을 모시지도 못했다.
결국 나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좋은 스승을 모시지 못했는지, 아니면 좋은 제자가 되지 못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지금은 나에게 매질했던 그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