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家이란 무엇인가?

by 이주형

내 어린 시절에는 우리들의 집은 자연의 일부였다.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고 보금자리였다. 초가집 지붕 위엔 박 넝쿨이 꽃을 피우고, 낮은 돌담 위로는 주먹만 한 호박들이 엄마의 손길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며 울안을 빼꼼히 훔쳐보고 있었다. 처마 끝엔 참새들이, 처마 밑엔 제비들이 둥지를 틀어 새끼들을 키우며 함께 살았다. 재산목록 1호인 누렁이 암소도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생활하던 곳이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의 공간도, 재테크나 투기의 수단도 아니었다. 더욱이 빈부를 판단하고, 삶의 서열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은 불편해도 아쉽지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해도 부끄럽지 않은 안식처였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하나인 집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누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집의 본질적 기능과는 너무도 멀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 저금리 시대에 은행의 정기예금이나, 위험부담이 존재하는 주식투자보다는, 그 수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를 기회로 여긴 돈 많은 인간들이 집값을 부추기며 투기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나라에선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을 잡아보겠다고 끊임없이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각종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룻밤이 지나면 몇천만 원씩 뛰어오르는 현상을 목격한다. 지난 몇 년간 서울, 특히 강남에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은, 웬만한 급여 생활자들이 평생을 모아야 벌까 말까 한 어마어마한 액수의 불로소득을 얻고 있다. 그러고도 집값 상승을 방해하는 그 어떤 시설도, 정책도 기를 쓰고 거부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 건설이나,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도 절대 안 된다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악을 써댄다. 교육 환경악화와 조망권 침해라는 허울 좋은 이유를 내세운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진짜 이유를 숨긴 채,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극도로 깊게 심어진 이기주의가 그들만의 패거리를 만든다.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빌며 눈물로 애원하는 장애아 부모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뻔뻔스럽게 비웃으며 외면한다. 더불어 살아가기를 포기한, 아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꼬락서니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다시 한번만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학부모들의 호소에도, 웃음 지으며 떠나가던 지역구 국회의원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지난 세월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잠까지 줄여가며 애를 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잘살아보세'가 '어떻게 하든 잘살아보자'로 변하더니, 이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잘살아보자'가 되어버렸다. 같이 '잘살아보세'가 아닌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물질적인 가치가 인간의 정신까지 지배했다. 완전히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다. 집값이 미친 것이 아니라, 돈에 멱살이 잡혀 질질 끌려다니는 일부 인간들이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결혼 초 보증금도 없는 삼만 원짜리 월세 단칸방으로 시작했다. 같은 부엌, 같은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도움받을 곳 하나 없이 더부살이하는 천덕꾸러기처럼, 눈치만 살피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일 년 만에 많지 않은 봉급을 아끼고 아껴서 작은 전세로 이사를 했다.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유목민처럼 일곱 번의 떠돌이 끝에서야 서른두 평 아파트를 장만했다. 비록 십사 년 동안 일곱 번의 이사 끝에 절반의 은행 대출로 장만한 내 집이었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이제야 위태로운 모래 땅이 아닌 단단하게 다져진 반석 위에 안착한 기분이었다. 그전엔 밤이면 높다란 아파트에서 흘러나오던 불빛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파트에서 빛나던 불빛은 지구 문명의 밝기에 밀려 사라진 별들이 땅으로 내려와 있는 듯 보였다. 그 불빛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씁쓸함과 허전함이 가슴속으로부터 비집고 올라왔었다.


얼마 전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집에 왔을 때, 서울의 집값 이야기를 얼핏 비친 적이 있었다. 아들 내외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없이 씩 웃으며 긴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아차 싶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도 둘 다 일류대학을 나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며 맞벌이하고 있지만, 터무니없는 집값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가 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하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게 한 것이 미안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돈도 실력'이라는데 공연히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황급히 말꼬리를 돌렸다. 속으로 '로또복권이라도 사야 하나'생각하다가 '내 복에 무슨'하고 나도 따라 한숨만 지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셋방살이하는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를 둘러보시며 '이렇게 많은 집 중에 너희들이 살 집은 없구나.'라며 쓸쓸한 한숨을 토해내시며 미안해하시던 표정이 지금도 아련하다. 그런데 그 마음이 대(代)를 이어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다. 탄식 같은 한숨을 토해내시던 어머니의 심정이 이와 같았으리라.


과연 집이란 무엇일까? 가족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날이 저물면 일터에서, 학교에서 일과를 마치고 하루의 고단함을 부려놓고 쉴 수 있는 곳.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하고 따뜻한 곳.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안락함과 늘 기다려주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곳. 지치고 고단한 세상살이에서 다친 상처를 씻고 싸맬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이 바로 집이 주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부의 상징으로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하는 물건(物件)이 아닌, 삶을 영위하고 누릴 수 있는 거주하는 공간으로의 집이었으면 좋겠다.


진정 누구나 집을 장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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