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황토방 아궁이에 군불을 지폈다.
이젠 하루가 다르게 일교차가 심해지면서 밤공기는 코가 시릴 정도로 차갑게 느껴진다.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고 나니, 이젠 겨울인가 싶다. 하기야 두 주쯤 전에 입동(立冬)이 지났으니 이미 겨울은 시작된 셈이다. 작은 텃밭에 심었던 곡식들도 거두었고, 엊그제는 텃밭의 배추와 무를 뽑아 김장도 했다. 장작도 어느 정도 비치해 두었으니, 이제 겨우살이 준비는 얼추 마쳤다.
김장을 마친 아내는 어려운 숙제를 해낸 것 같이 홀가분하단다. 아궁이에서 타고 있는 장작은 자기 몸에 흰 연기를 칭칭 감고 방고래를 향해 기세 좋게 타들어 간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은 용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구들장 속을 핥으며 들어간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옛 추억을 불러내는 손짓 같기도 하고, 죽은 나무의 영혼이 비로소 하늘로 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군불을 지피고 아궁이 앞에 앉아 있으니, 마음속까지 따뜻해진다. 그렇게 멍하니 구들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담장 밖에선 지나가는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집에 군불 때나 보네? 뜨끈뜨끈한 구들장 아랫목에서 허리 한번 지졌으면 좋겠구먼", "그러게~"하시며 지나가신다. 아마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시고 온돌방의 추억을 회상하시며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싶다.
그랬다. 예전 시골에선 겨울방학이면 지게를 걸머지고 나무하러 산에 오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솔잎이나 가랑잎, 검불마저도 갈퀴로 긁어모아다가 군불을 땠다. 밥을 할 때나 소죽을 끓일 때도 땔감으로 사용했었다. 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비탈진 산길을 내려올 때면, 나뭇짐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가느다란 내 두 다리는 황소바람에 문풍지 떨듯 파르르 떨었다. 그런데 요즘은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르다 보면 이제는 거의 정글 수준이다. 눈(雪)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꺾인 나뭇가지는 지천으로 널려있고, 태풍으로 뿌리째 뽑힌 아름드리 나뭇등걸들은 언제 쓰러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삭아있다. 이제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로 난방한다. 연탄보일러로 난방하는 가구도 아주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쓰러지고 버려진 나무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촌놈인가 보다. 방안에 들여놓았던 질화로가 그립다. 잉걸불 위에서 보글보글 끓던 청국장 냄새와 고구마를 구워 먹던 시절도 이젠 아련한 옛 추억이 되었다.
황토방 아궁이 앞에 주저앉아 타들어 가는 불꽃을 바라보며 옛 추억 속에 취해 있는데, 아내가 저녁 식사하라고 부른다. 마치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갑자기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장작 서너 개를 아궁이에 더 집어넣고 아쉬운 마음을 털고 일어선다. 화롯불 위에서 보글보글 끓던 어머니표 청국장은 아니지만 아내가 가스레인지에 정성스럽게 끓여낸 된장찌개가 놓여있는 식탁에 마주 앉는다. 어머니보다는 아내가 해준 음식을 더 많이 먹었고, 이젠 아내의 음식솜씨에 길들여질 만도 하건만, 왜 자꾸만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걸까. '예전에 엄마가 끓여주던 청국장 맛이 그립다', 고 말하려다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 같아 입만 달싹이다 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는 사이 설거지를 마친 아내는 "여보 나 황토방으로 가요~"하고는 현관을 나선다. 나는 TV도 좀 보고, 책도 좀 읽다 보니 어느새 밤이 늦었다.
황토방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니 아내는 이내 잠들어 있다. 잠든 모습을 보니 신혼 때가 생각난다.
결혼하고 강릉에 신혼을 보냈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모든 어려움쯤은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보증금도 없는 삼만 원짜리 월세방에서 시작했다.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벽돌로 된 허름한 주택이었다. 화장실도 밖에 있고 부엌도 같이 사용해야 했다. 새댁을 대접하는 신랑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무너져버린 신혼이었다. 경제적인 안정이 사랑을 담보해 줄 수 있을 것인지, 사랑이 경제적인 안정을 담보해 줄 수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았다. 여름에는 속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너무 더워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겨울에는 초대하지도 않은 황소바람이 문풍지 사이로 기웃거리며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왔다. 더구나 단열이 되지 않아 외풍이 심해 빨아놓은 걸레는 비틀려진 채로 꽁꽁 언 동태가 되었다. 아침에 세수하고 방으로 들어가려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들러붙었다. 가끔 야근하고 늦은 시간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먼저 잠든 때가 있었다. 아내가 깰까 조심조심 방으로 들어간다. 바람도 밖이 추운지 문풍지 사이로 몰래 기어들어 아내 곁에 누워있다. 아내의 볼은 찬바람이 얼마나 핥아 댔는지 갓난아기의 볼처럼 발그레하다. 나는 쪼그려 앉은 채로 아내의 잠든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미안한 마음에 속절없이 코끝이 알싸하고 속눈썹이 촉촉해진다.
그해 겨울은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추워 길게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오늘 아내의 잠든 모습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신혼의 그 겨울밤처럼 잠든 아내의 모습을 바라본다. 늙어가는 모습에 또다시 코끝이 알싸하다.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곁에 눕는다.
군불 땐 황토방의 아랫목 이불속은,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 안긴 것 같이 따뜻하고, 숨이 막히도록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장작의 소신공양으로 뜨끈뜨끈해진 온돌방 아랫목이 참 좋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