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방

by 이주형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나를 선택한 아내에게 삼십 년이 넘도록 숱한 고생을 시켰다. 흔한 말로 이제 편히 살만하니까 몸에 탈이 났다.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아내가 암이라는 질병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동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무언가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 TV에서 황토로 집을 짓는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황토는 원적외선을 방출하여 각종 염증을 개선하고 노폐물 배출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혈액순환에도 도움을 주어 암 예방은 물론 치료에도 좋다고 했다. 요즘 들어 건강을 위하여 황토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했다. 암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솔깃했다. 방송을 보고 나서 나도 아내를 위해서 황토집을 지어보리라 결심했다.


다행히 뜰 안 정원 옆, 작은 텃밭으로 쓰고 있는 공간이 있어 그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니 급해졌다. 아내를 위해 짓는 집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풍족하지 않다 보니, 건축비를 아껴보려는 의도도 없지는 않았다. 아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게 즐거웠다. 여러 날 황토집 짓기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휘젓고 다녔다. 휘젓고 다녔다는 말은 거짓이고, 독수리 타법으로 여기저기 겅중거리며 헤매고 다녔다는 말이 옳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아궁이에 불을 때서 소죽을 끓이던 생각이 나면서, 아궁이와 구들의 구조도 더듬어 보기도 하고, 황토집을 짓는 동영상도 찾아보며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아궁이에서 나무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근사한 황토방을 상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장애가 아내를 위해 집을 짓겠다는 나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무식(無識)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겁도 없이 황토 벽돌공장과 제재소, 건축자재 대리점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품들을 물어가면서 주문했다. 장판도 건강을 위해 한지와 황토를 혼합해 만든 황토 타일로 주문했다. 가는 곳마다 경험 없이 혼자 집을 짓는다는 건 어려울 거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알 수 없는 야릇한 웃음도 보인다.


조급한 마음에 집을 짓는데 소요되는 자재를 불과 나흘 만에 모두 준비했다. 황토 벽돌, 황토 몰탈, 구들장, 단열용 스티로폼, 대들보, 서까래, 지붕 자재 등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점점 쌓여만 가는 자재들이 마당에 산더미를 이룬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아내를 위한 일이기에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오만과 객기가 후회로 밀려온다.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진다. 세평 정도의 황토방을 짓는데 저렇게나 많은 자재가 필요하다니, 겁 없이 대들은 내가 한심스러웠다. 마치 조그마한 초등학생이 덩치 큰 씨름선수를 올려다보며 한판 붙어보자는 꼴이 되었다. 그러나 이젠 물러설 곳도 되돌릴 수도 없다. 제대로 된 설계도도 없는 집 짓기를 해야 한다. 주먹구구식 설계도. 그것도 내 머릿속에서만 막연하게 저장된 무모한 설계도. 어린아이가 레고 블록을 가지고 집짓기 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다. 그래도 무모함이 장착된 무식함으로 머릿속에 있는 구상에 따라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마치 수년간의 경험을 쌓은 전문가나 된 듯이 혼자서 터를 닦고 다지고 아궁이를 만들 구들을 놓았다. 아내가 하루속히 완치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1,200장의 흙벽돌을 한 장 한 장 정성을 다해서 쌓아 올렸다. 단열과 견고함을 위해 벽돌을 이중으로 쌓았다. 기술도 없고 혼자서 하다 보니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공교롭게도 벽체 공사를 마치고 지붕 공사를 시작할 무렵, 아내의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었다.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면서 틈틈이 공사를 진행했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드디어 황토방 짓는 일도 마무리되어 간다. 아내가 병원에 치료받으러 갈 때마다 동행은 해주었지만, 황토방을 짓는답시고 그 일에 신경을 더 썼다. 그러다 보니 아내에게 조금은, 아니 많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속은 부글부글 끓었겠지만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때문에 속만 끓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많이도 미안했다. 무식하고 무모한 도전 끝에 황토방은 두 달여 만에 마무리되었다. 황토방이 완성하던 날 작지만, 아담한 새집을 바라본다. 제법 집 모양을 갖추고 있다. 어설프긴 하지만 가지런하게 쌓아 올린 황토벽돌, 슁글로 덮인 그럴듯한 지붕, 크게 벌린 하마의 입을 닮은 아궁이, 승무를 추듯 고깔모자를 쓰고 우뚝 솟은 굴뚝.

방 안으로 들어가면 황톳빛 장판이 깔려있고, 벽은 미장을 한 후 초배 벽지로 마무리했고, 천정은 나무 무늬 한판으로 마감해서 포근함을 더해준다. 내 손으로 지은 집이란 생각에 흐뭇하고 대견스럽다.


그 어렵다는 일을, 불가능하다는 일을, 나 혼자서 해냈다는 자부심에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장작은 제 몸을 태우면서 활활 타오른다. 시뻘건 불꽃이 고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캄캄한 방고래를 헤치고 굴뚝으로 솟아오르는 하얀 연기를 보니 감격스럽다. 저 연기가 아내의 병을 모두 감싸 안고 하늘 높이 올라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공연히 코끝이 시큰해져 온다. 그건 순전히 덜 마른 장작이 타면서 아궁이에서 새어 나오는 연기의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올해로 칠 년째 황토방에서 겨울을 보낸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누울 때면 따뜻해서 좋다고 고마워하는 아내. 그 말을 들으니 그동안 미안했던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도 군불 땐 황토방 아랫목은 따뜻하다.

삶이란 잘 데워진 구들장처럼 뜨끈뜨끈한 온기로 서로의 마음을 감싸주고 덥혀주며 함께 헤쳐 나가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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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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