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34
‘공간(空簡)’이란 ‘아무것도 없이 빈 곳, 물질․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빈자리’를 말한다. 공(空)은 뜻을 나타내는 穴(구멍 혈)과 음을 나타내는 工(장인 공)을 합쳐서 만들어진 한자로 원래는 ‘구멍’이라는 뜻이 있었지만, 이후 ‘비어 있다’라는 공간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간(間)은 閒(한가할 한)에서 나왔다. 閒은 門(문 문)과 月(달 월)이 합쳐진 글자로, ‘문(門)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月)’에서 ‘틈’, ‘사이’라는 뜻이 되었다. 여기서 月(달 월)이 日(날 일)로 대체된 것이 바로 間(사이 간)이다.
건축에서 벽이나 담장으로 구분되는 눈에 보이는 공간과 인터넷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수학적 공간도 있지만, 지금은 다루지 않겠다. 인간은 한정된 건축 공간에 만족하지 않고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했고, 나아가 메타버스로 대변되는 가상공간까지 넓혀가고 있다. 과거에는 피를 흘린 영토전쟁이었다면, 현대는 보이지 않는 공간전쟁이 진행 중이다.
먼저 건축 공간을 떠올리면 벽으로 구분되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방’이다. 라떼 이야기지만, 한집에 여러 식구가 살고 방은 부족했던 시절, ‘내 방’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형제들 사이에 방을 차지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다. 그래도 일단은 남녀가 있다면 여자 먼저, 형제들은 나이순으로 배정되어 동생들은 늘 뒤로 물러나야 하는 설움을 받다가 형이 공부하러 대처라도 나가게 되어 방을 물려받을 때의 기쁨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애틋했던 추억이다.
건축에서 공간의 크기는 권력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차지하고 있는 영역의 크기가 클수록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장(長)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간은 대부분 혼자 사용할 수 있도록 분리되어 있고, 높은 위치에 있으며 넓고 크다. 지금은 개방되었지만, 대통령이 살던 청와대는 테니스를 칠 수 있을 만큼의 넓고 큰 방들이 많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힘이 센 동물일수록 인간의 공간 개념과 같은 영역이 넓다. 그 영역을 지키기 위해 배설물로 경계를 표시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공간이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마법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그 공간을 선점한 많은 기업이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한 가지 사례만 짚어본다면 사이버 공간에서 ‘나만의 공간 만들기’를 통하여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 그리 갖고 싶어 하던 ‘내 방’으로 대변되는 오직 혼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갖게 되었다. 현재는 인터넷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작가님들이 사용하는 브런치 방, 카페 등 같은 생각과 취미를 가진 무수한 단체방들이 쉽게 만들어지고 있다. 과거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큰 노력과 돈이 들었지만, 지금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 개인이나 단체방을 만들어주는 사업은 광고와 결합하여 엄청난 사업을 만들어 내고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가상공간으로 대표되는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현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활동까지 이뤄지는 온라인 공간이다. 메타버스의 정의가 정확하게 확립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는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적·경제적 활동이 통용되는 3차원 가상공간’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현실을 디지털 기반의 가상 세계로 확장해 가상공간에서 모든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으로 대표적 하위 개념으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있다. 가상현실은 현실을 모방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상황이나 기술이다.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사용자의 감각기관을 통해 현실과 유사한 가상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나 이 기술이 구현되는 상태를 말한다. 실제와 유사하지만, 실제가 아닌 인공 환경이다. 가상현실은 사용자를 현실을 그대로 모방 재현한 환경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를 위해 사용자는 고글, 헤드셋, 장갑, 특수복 등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비를 착용하고 컴퓨터가 만들어 낸 환경을 접한다. 증강현실(增强現實)은 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현실 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이다. 현실 세계와 가상 사물을 결합하여 목적에 맞는 부가 정보 제공하는 가상현실의 다른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큰 문제가 청소년들이 머물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청소년의 개인 공간은 집이다.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가족의 공동생활 공간이고,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부모와 대화도 통하지 않고, 말해봐야 반응이 없는 공간이다. ‘공부나 해’라는 한마디로 무시당하는 공간이 집이다. 학교라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위해서 옆에 있는 친구와 경쟁하고 시험이라는 감옥에서 나올 수 없는 공간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청소년들은 게임 속 사이버 공간으로 내몰려 스마트폰 공간으로 숨고, 거기서 실시간 짜릿한 반응을 즐기며 생활하고 있다. 거기에 좀 더 비용을 내면 PC방, 카페, 노래방, 모텔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이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기를 기대해보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공간이라는 개념을 자연으로 넓히면 영역이 된다. 인간이 문명화 과정을 겪는 동안 영역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류가 벌었던 대부분의 전쟁 역시 공간과 영역을 빼앗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의 전쟁은 정치적, 종교적 역할 등 좀 더 복잡해졌지만, 고대에는 전쟁의 원인이 명확했다. 농사가 되는 강 유역의 쓸만한 땅이 부족했고, 평화가 계속될수록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타 부족을 침략함으로써 땅, 노동력, 여성을 빼앗았다. 영역 싸움의 목표가 먹거리와 성공적인 번식이었다. 근대의 전쟁 역시 다른 나라의 영토를 획득함으로써 자원을 얻기 위함이었다. 현대에도 영토를 빼앗기 위한 전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 전쟁은 사이버 공간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인간을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목숨 건 투쟁을 벌여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개별적으로 인간이나 동물 모두 살아가기 위한 공간과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끝없는 노력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집, 땅 등 모든 부동산을 취득하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은 살기 위해 공간과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수십 년의 눈물겨운 사투를 보노라면 공간의 허망함조차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예외가 될 수 없는 살기 위한 공간의 확보, 죽어서 누울 한 평의 땅까지 발 딛고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은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지루한 공간은 죽고, 가슴 설레는 공간은 산다. 공간을 고객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은 사람을 모으고,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공간에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커뮤니티도 형성된다. 이러한 공간이 오감을 자극하고 연결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기도 한다. 몇 발자국 가면 나타나는 전국의 수많은 카페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플, 아마존 등은 이미 그러한 공간 전략을 연구 개발 및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것과 소비자의 오감을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회사의 성패를 좌우하고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하는 시대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공간이란 건축이 만들어 내는 공간뿐 아니라 건축 외부의 공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과 사이버 공간, 심지어 가상공간까지 포함하는 매우 넓은 의미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공간의 영역과 질서를 바꾸어 가고, 그 확장된 공간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과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공간을 인간이 지속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조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연도 넓은 공간이라면 개발보다 보전에 집중하는 공간조성이 필요한 시기다.
우리는 옛 건물의 공간에서 가치를 발견하여 미래의 공간이 나가야 할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보는 수많은 고대 유물들은 공간의 가치가 얼마나 무한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개인이나 권력의 공간보다 만인을 위한 공간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