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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Dec 27. 2022

53. ‘고독(孤獨)’의 의미

삶은 의미다 - 53

고독(孤獨)’이란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없이 홀로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孤(외로울 고)는 뜻을 나타내는 子(아들 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瓜(오이 과)가 합쳐진 한자로, 원래 ‘고아(孤兒)’란 뜻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홀로’, ‘외롭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獨(홀로 독)은 뜻을 나타내는 犬(개 견)과 소리를 나타내는 蜀(나라이름 촉)이 합쳐진 한자로, 개는 모이면 서로 싸우므로 떼어 놓는다는 뜻에서 확장되어 ‘홀로’, ‘외롭다’, ‘독일’ 등을 뜻한다. 외로움은 고독한 상태로부터 느껴지는 쓸쓸한 감정으로, 고독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시간이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으며 대신해 줄 수도 없는 광막한 시간,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공간에 머무는 시간, 인간으로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간, 자기 내면과 인간의 존재를 대면하게 되는 솔직한 시간이기도 하다. 혼자라고 느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존재가 나에게 자신을 돌봐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항상 바깥만 쫓으면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혼자이고 공허할 뿐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꾸릴 줄 아는 사람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고독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참모습을 바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것을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 하지 않던가. 외로움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는 것이기에 두렵고 슬프지만, 고독은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쓸쓸함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외로움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이지만, 고독은 자신 속에 고요히 머물러 있는 것이다. 외로움은 자신을 한없이 움츠러들게 하지만, 고독은 내면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준다. 외로움도 잘 성숙시켜 향기로운 고독으로 승화시킨다면, 고독은 창조적인 열매를 가져다줄 수 있다. 모든 삶의 체험을 소화해 몸과 마음의 양분으로 삼는 것이다. 내 안의 나와 더불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법을 터득해가는 것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모든 환경에서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래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한편 많은 사람과 어울릴 때는 모르지만 고독해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고독은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고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고내 주변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다. 그래야 진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혼자 하는 등산이나 산책이 오로지 나만을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대표적인 취미다. 건강을 챙기며 나도 챙기는~!

나의 시간, 나의 장소, 나의 평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대부분 사람이 여행을 많이 떠난다. 하지만 단체로 몰려다니는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단체로 몰려다니는 여행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단지 어디에 갔다는 사실과 시끌벅적 먹방에 올인하는 여행에서 진정한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한마디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한 목적의 여행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다. 여행은 낯선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낯선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혼자 떠나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 될 수 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외롭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혼자가 아니다. 나의 시선과 함께 나와 대화하면서 하는 여행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타인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시작한 현대인들이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동안 겪게 되는 고립감을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역설적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통신망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동네에 전화가 있는 집이 몇 안 되던 시절보다, 손마다 폰을 들고 귀에는 온갖 것들을 꽂고 다니는 지금이 훨씬 더 외롭다. 폰은 손에 쥐여 있지만,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외로움, 전화 걸 데가 없는 외로움, 남들이 폰을 들고 열심히 떠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외로움. 이 모든 폰 증후군들도 결국은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이다. 사람이 넘치는 도시에 살면서도 우리는 고독하다. 단순히 군중에 둘러싸여 나를 바라보는 눈들과 함께하는 것은 오히려 불행하다. 소통이라는 명목하에 벌이고 있는 수많은 SNS, 필요하지만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진정한 관계와 고유한 인간관계가 필요한 이유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어른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외로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고독을 즐길 줄 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 여겼던 혼밥과 혼술이 일상을 넘어 유행하고, 이제는 아예 혼자 먹는 식당이나 술집이 생길 정도이니 복잡한 인간관계의 피곤함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얼마나 큰지도 알 수 있다. 혼자 창밖에 지나치는 사람 멍때리며 군중 속에서 벗어난 자신을 보고, 해장국에 소주 한잔 생각나지 않는가? 

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이 인간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과 고독이 아닌가. 관계를 단순화하여 정리해줌으로써 꼭 필요한 관계만 남게 해줬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하여 나를 되돌아보고 문제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자신에게 온전히 투자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관계 정리와 나를 위한 시간, 두 가지 고민의 문제를 해결해 준 코로나 시대의 역설이다.

현대는 과잉의 시대이다. 먹는 것은 지나쳐서 비만이 문제가 되고, 인간관계가 넘쳐나니 자기 시간이 없고, 사회적 관계가 지나쳐서 자기 생각이 없어진다. 실제로 인간관계, 배신과 배척, 혐오에 지쳐서 고독을 즐기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으로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고혼자가 되어도 만족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젊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습관즉 고독의 기술을 익혀둬야 가능한 일이다. 주변 사람들과 잘 사귀면서 혼자일 때, 나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고독의 상태가 아닐까?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이 혼자 사는 능력이다. 오래 살게 된 혜택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고독이다. 혼자의 시간을 외로움으로만 보낸다면 차라리 고독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잘 받아들여 혼자만의 내면을 완성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인생은 60부터 아니겠는가? 100세 시대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끝까지 버티려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외롭고 고독한 존재임을 깨닫는 방법밖에는 없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것이고, 외로워야 자기 성찰도 가능하다. 외로움과 고독에 익숙해져야 남아도는 시간을 잘 버틸 수 있다.

고독은 창의성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위인들은 고독 속에서 위대한 성취를 한 경우가 많았으며,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고독을 통하여 자신과 대면하여 성찰할 수 있고, 이를 통하여 얻은 긍정적인 힘으로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으며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 중에 자신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자신만을 길을 찾아가는 고독의 산을 넘은 이들이 많다. 혼자만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고독을 견디는 것은 당연하다.

혼자라는 외로움은 하늘 높이 던져버리고혼자만의 고독을 땅 위에서 즐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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