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76
‘인내(忍耐)’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 忍(참을 인)은 뜻을 나타내는 心(마음 심)과 소리를 나타내는 刃(칼날 인)이 합쳐진 글자로 칼날이 심장을 찌를 듯이 아픈 마음을 견딘다는 의미에서 ‘참다’, ‘잔인(殘忍)하다’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닌자(忍者)’라고 할 때도 쓰이는데, 여기서는 ‘숨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耐(견딜 내)는 뜻을 나타내는 寸(마디 촌)과 소리를 나타내는 而(말이을 이)가 합쳐진 한자인데, 원래 而는 수염을 본떠서 만들었고 수염을 깎는 형벌에서 확장되어 ‘견디다’ ‘버티다’, ‘참다’라는 의미다.
‘忍(참을 인)이 세 번 모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듯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대를 불문하고 무엇을 하든 참고 견디는 인내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이 소양이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경을 비롯해 현자들의 인내에 대한 많은 격언이 있는 것을 보면, 삶에서 매우 중요한 소양임을 틀림없다. 사람을 평가할 때 인성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인성을 측정하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 인내성 측정이란 말도 있다.
참을성을 측정하는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이 있다. 어린아이에게 마시멜로 1개를 주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1개를 더 주기로 하고 아동의 행동을 관찰한 후 실험에 참여했던 아동들의 성취도를 추적했다. 15분 동안 먹고 싶은 유혹에 견디고 마시멜로 1개를 더 받았던 아동이 청소년기에 학업 성적에서 우수했고 좌절과 스트레스에 견디는 힘도 강했다는 것이다. 이후 여러 다른 연구팀에서 비슷한 연구로 확인되어, 한때 참을성을 기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선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참아내는 힘은 삶에 중요한 소양인 것만은 틀림없다.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인내의 부작용이 있다는 말이다. 참는 것 자체가 욕구를 꾹꾹 쌓아놓는 일이라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심하면 정신적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 ‘화병’으로 이어진다. 특히 심리적 질병인 정신병이나 우울증의 경우는 참으면 참을수록 병을 악화시킨다. 심리, 정신적 문제가 있으면 절대 참지 말고 꼭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동양 사상에 젖어있는 우리나라는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라 배웠고, 그렇게 행동하기를 강요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참고 견디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특성에 따라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쌓이면 화병이 생기는 것이다. 스스로 분노나 답답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억지로 꾹꾹 쌓아놨다가 내면적 및 심적 질환으로 발전한 것이 ‘화병’이다, 화병은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출판한 서적에서 한국의 문화에 관련된 특유한 질환으로 ‘hwa-byung(화병)’이라는 한국식 표기로 등재한 적이 있으나, 아직 정식 질병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화병이라는 완전히 별개의 정신질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우울증의 한 양상이라 보는 것이 맞다. 우울증과 비슷한 종류의 질환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 운동, 취미 활동을 가지는 것이 좋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즉각적 반사로 뛰어나오지만, 찬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아주 느린 속도로 데워지는 물에서는 나오지 않다가 결국 죽게 되는 현상이다. 주변의 환경에 몸을 조금씩 적응시키다가 정작 뛰어나올 수 있는 시기를 놓치는 것을 말한다. 나쁜 남자인 줄 알면서도 관계를 끊지 못하고 적응하기 위해 참는 여자, 부당한 현실인 줄 알면서 수용하고 인내하는 사람 등이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자기 몸을 적응시키려는 개구리와 같은 것이다. 참는 것이 미덕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습관처럼 된 우리가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럴 땐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귀하게 여기며 자기 마음을 돌보고 어루만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나부터 챙겨야 상대도 챙겨줄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인내’란 원하는 것, 선택한 것, 하고 싶은 열망이 올바른 기회를 얻고 성취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려준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인내는 모두가 알고 있는 평범한 단어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에 이르는 사람이 적은 이유이다.
자신이 선택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인내를 가져야 하고, 부모는 자녀의 능력을 믿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어야 하고, 기술을 배워 숙달시키고 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내가 필요하다.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의지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미 결정한 것을 계속 끝까지 하려는 마음이다. 그런 의지의 가장 큰 속성이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인내심이다.
인내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면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어린아이는 계속 시도하며 조금씩 고쳐나가서 결국 어느 날인가는 쓰러지지 않고 걷는다. 만일 어른이 중요한 일을 추구하면서 어린아이와 같은 인내와 정신 집중에 도달한다면, 무슨 일인들 성취하지 못하랴! 진정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불확실성을 기꺼이 인내할 수 있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잠시 포용하고 양보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특히 나의 한계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얼마든지 웃으며 넘길 수 있다. 문제는 상대가 한계선을 넘는 경우다. 이 경우, 만약 상대와 진심으로 잘 지내고 싶다면 무조건 참고 끌려다니지 말고 내가 인내할 수 있는 한계선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 만약 상대도 나와 잘 지낼 마음이 있다면 그 한계선을 존중할 것이다. 그래야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성경의 말씀도 있듯이 인내의 꽃이 사랑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는 것이라는 진리는 변함없다. 사랑은 절반은 인내, 절반은 고통이라 하지 않던가. 즉 인내와 노력의 산물이 사랑이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아도 참는 이유는 그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애당초 상처를 줄 수 없는 관계이고, 가깝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물론 사랑에는 희생이 포함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헌신하거나 무조건 희생하는 것은 건강한 사랑이 아니다.
인간은 쾌락은 추구하고 고통은 피하려는 생존 본능이 있고,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한 삶의 조건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쾌락을 추구하기보다 고통을 먼저 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살면서 즐겁고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삶에서 겪는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이나 가치관을 선택하는 것도 새로운 고통을 삶에 들여오는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이렇게 다가오거나 선택한 무수한 고통을 견디는 법을 꼭 배워야 한다. 고통과 시련 앞에서 도망치는 자는 약자이고, 강인하게 견디며 맞서 싸우는 자가 강자이다. 진정한 강한 사람은 스스로 더 나아지고 강해짐으로써 그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다.
어떤 것을 이루는 과정에는 견디고 버텨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버티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일의 의미와 절박성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며 결국은 살아남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므로 버티어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누구도 깎아내릴 수 없는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버티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겠지만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때론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버티는 것 자체가 답일 때가 있다.
인내가 인생의 성공을 위한 필수 소양임에는 부정할 사람이 없다. 세상일에 참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이 있던가.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을 해치면서까지 참을 필요는 없다. 나를 지켜야 성공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싸우기도 하고 지랄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야 안 곪아요. 참는 게 능사가 아니야.’라고.
‘인생(人生)은 인생(忍生)~!’이라고~? 참고 사는 게 미덕인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당신의 삶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큰 행복을 꿈꾸며 현재의 불행을 참고 견디는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