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75
‘침(唾液)’은 ‘동물의 입 안 침샘에서 분비되는 액체’로 혀 밑의 침샘에서 분비되어 음식물이 잘 섞이도록 하고 위에서 소화를 도와준다. 침은 수분·점액·단백질·무기염류 및 소화효소인 아밀라아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일 1~2ℓ가 분비된다. 침의 역할은 입 안을 돌면서 음식물 찌꺼기, 세균 세포 및 백혈구를 제거함으로써 치아의 붕괴를 지연시키고 세균의 감염을 억제한다. 또한 입 안을 매끄럽게 하고 축축하게 함으로써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며, 음식물을 액화시키거나 반고체로 변화시킴으로써 맛을 느끼게 하고 음식물을 쉽게 삼킬 수 있게 한다. 수분이 부족하면 침샘이 마르게 되고 갈증을 유발하여 물에 대한 욕구를 자극함으로써 신체의 수분균형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사람이 하는 ‘침 바르기’ 행동은 존재를 확실하게 확인하는 행위이다. 동물이 침을 바르며 털을 고르거나 소변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행동으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렇듯 침 바르기 행위에는 내 것, 내 편이라는 속뜻이 숨어있다. 부동산과 같은 물건을 살 때 ‘먼저 침 바르는 사람이 임자다.’라는 말로 내 것의 시작을 알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심지어 사람(異性)에게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인들은 입술부터 훔치는 것인가. 남의 침은 매우 더럽다고 인식하기에, 내 것을 만들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내가 침을 발라 놓으면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철석같은 믿음이 밑바닥에 깔린 것이다.
침을 바르면 내 것이 되기에 귀한 것, 갖고 싶은 것에 꼭 침을 바르려고 한다. 당연히 자기가 갖고 싶은 것, 남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들에 침을 바르는 행위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일 먼저 먹을 것에 침을 바르는 행위이다. 당연히 침을 발라야 먹겠지만 먹기 전에 침을 뱉고 먹었다. 먹고 살기 힘들고 도시락을 싸 오는 친구가 부러웠던 시절 점심시간, 싸 가져간 점심을 빼앗길까 봐 도시락 뚜껑을 열고 제일 먼저 ‘퉤퉤’ 침을 뱉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특히 맛있는 달걀부침이라도 덮어놓은 도시락일 때는 더. 그리 한 후에야 안심하고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못 먹고 살던 시절의 웃지 못할 아련한 추억이 아닌가.
예외적으로 침을 발라도 나눠 먹는 사이가 있다. 그게 바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이다. 가족, 애인과 같은. 연인이 먹던 반쪽을 기꺼이 건네받아 먹고, 특히 아기가 입에 넣고 먹던 음식을 엄마는 기꺼이 입을 맞대고 받아먹기도 한다. 누가 타인이 입에 넣었던 것을 먹을 수 있을까. 가히 짐작하기 어려운 사랑의 위대함이다.
연장이나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꽉 움켜쥐고 싶을 때 양손에 침을 바르고 잡는다. 잡은 연장을 절대 빼앗기지 않고 상대를 단번에 이기겠다는 단호한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사람이 격렬한 싸움을 시작할 때도 양손에 침을 바르고 하는 것은 같은 의미라 하겠다.
요즘에는 카드 시대이니 돈 셀 일도 없지만, 사람들은 큰돈이 생기면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한 장 한 장 센다. 당연히 내 것이라는 강력한 확인이 내포된 행위이다. 침을 바르며 돈을 세는 그윽하고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보노라면, 보는 사람조차 행복해진다. 손가락에 침 바르며 돈 셀 일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은 세상 모든 사람의 희망 사항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든 그에게 침을 바르려고 마음을 졸인다. 입맞춤으로 침을 바르면 그 사람은 내 것이 되었다는 뜻이 담겨있기에 상대방에게 입맞춤하려 애걸복걸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동물들의 침 바르며 털을 고르고 새끼를 낳았을 때 핥아주는 행위도 극한 사랑의 행위표시이다. 사람이나 동물 모두 지극한 사랑의 표시가 침을 바르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침을 아무렇지 않게 내 입 안으로 넣는 유일한 행위가 키스일 것이다. 사랑의 힘이 극단 혐오의 힘을 단숨에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극히 비위생적일 것이라는 키스 행위는 면역력 증진, 충치 예방과 같은 비위생적으로 대치되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오묘한 사랑의 묘약이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침 바르는 행위를 많이 하고 사시길. 다만 성범죄를 면해줄 수 있는 마음과 몸이 열린 사람을 찾아서.
책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한 장 한 장 넘기며 하는 독서는 엄청난 집중력을 가지고 책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또한 책장을 넘기는 여정은 책 속의 모든 내용을 내 머릿속으로 가져오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담긴 독서의 참된 맛을 보는 과정이다. 그런 숭고한 과정이 있기에 고요하고 그윽한 책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예절에 관한 책에는 책을 읽을 때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종이가 귀한 시절이니 책을 아껴 보라는 의미일 것이고, 이는 책뿐만 아니라 화폐를 셀 때도 통용되는 예절이기도 했다. 여기엔 위생상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흰 머리 드문드문 나이 지긋한 노인이 양지바른 흔들의자에 앉아 햇빛 사냥하며, 침 바른 검지로 책장을 넘기며 읽는 모습을 미래의 나의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표정도 변하지 않고 천연스럽게 거짓말 잘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있다.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야지.’ 사람이 긴장하면 입술이 건조해진다. 거짓말을 할 때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이 건조해지고, 이로 인해 입술에 침을 바르는 행동이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입술에 침을 자주 바르는 행위를 보고 거짓말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내 입술에 바르는 침은 긴장의 표시라는 말이다. 내 입술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에 침 바르기가 훨씬 남는 장사 아닌가.
이렇게 극히 비위생적인 행동인 침을 바르는 행위를 고집하는 것은 왜 그럴까? 침이라는 물질 자체가 내 몸 안에 있을 때와 내 몸을 떠났을 때의 의미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많은 것이다. 내 몸 안에서는 어제든 아무렇지 않게 몸 안으로 삼키다가도, 내 몸을 떠나게 되면 볼 수 없이 더럽게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더러운 것을 보면 늘 ‘퉤퉤’ 침을 뱉는 행위를 한다.
이렇게 침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확실하게 구분해주고 있어, 내 것에, 내가 갖고 싶을 것에, 내 소유의 표시로 침 바르는 행위에 목을 매달고 있다. 다만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 내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내는 지혜를 가져야 하고, 침 바르기는 극히 제한적이어야 할 것이다. 특히 사람에게, 먹을 것에. 여러 장소에.
그래도 침 바르며 살고 싶어요. 연인에, 돈에, 물건에…
침 바르기를 함부로 해서 벌금 내지 않기를~! 성희롱으로 잡혀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