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집착(執着)’의 의미
삶은 의미다 - 21
‘집착(執着)’이란 어떤 대상에 마음이 쏠려 매달리는 것을 뜻한다. 執(잡을 집)은 ‘잡다’, ‘가지다’ 등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로, 수갑을 나타내는 幸(다행 행)과 수갑에 묶여 끌려가는 죄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丮(쥘 극)이 합쳐진 글자다. 나중에 丮이 丸(둥글 환-수갑 모양)으로 바뀌어 지금의 글자가 됐다. 着(붙을 착)은 ‘붙는다’는 뜻으로, 원래 著(나타날 저)와 같은 글자다. 著는 竹(대 죽)과 者(사람 자)가 합한 것인데, 나중에 竹이 艹(풀 초, 초두머리)로 바뀌었다. ‘애착(愛着)’이란 말도 사용하는 데 집착과는 많이 다른 의미다. 애착은 상대의 취미와 성품을 존중하는 것이고, 집착은 상대의 모든 것을 내 소유물처럼 다루고 싶은 것이다. 애착은 사랑의 신뢰가 쌓여 서로의 취미와 성향에 관대해지므로 사랑을 더 굳건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독점하려는 집착은 사랑을 힘들게 한다.
집착이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종교가 불교이고, 부처의 가르침을 빼놓을 수 없다. 부처의 가장 큰 가르침 중에 하나로 모든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다. 우리 마음은 무엇을 경험하든 대개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항상 불만을 낳는다. 마음은 뭔가 불쾌한 것을 겪으면 그것을 제거하려 집착하고, 뭔가 즐거운 것을 경험하면 그 즐거움을 지속하고 배가하려고 집착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늘 불만스럽고 평안에 들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찾기 위해 간절히 꿈꾸어 찾지만, 실제로 찾았을 때 만족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가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었는데 하는 미련과 집착 때문에 늘 불안한 사랑을 한다. 즐거운 일이나 불쾌한 일을 경험했을 때,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고통이 없다. 슬픔을 경험하되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집착을 품지 않는다면, 계속 슬픔은 느끼겠지만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을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하는 일이다. 이렇게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 번뇌가 없는 상태를 열반(열반은 문자 그대로 ‘불 끄기’란 뜻이다)이라 한다. 열반에 이른 사람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 이들은 실재를 극도로 분명하게 경험하며, 환상이나 망상에서 벗어난다. 이들도 분명 불쾌함이나 고통에 맞닥뜨릴 테지만, 그런 경험은 이제 아무런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다. 집착이 없는 사람은 고통받지 않는다. 불교가 찾아낸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집착이야말로 제일 어리석고 비참하고 고통을 불러일으킬 뿐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불변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항상-恒常)고 생각하는 이런 종류의 집착이다. 자신이 가진 삶도, 젊음도, 미모도, 부도 영원해야만 한다고 집착하는 순간 고통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중생들이 집착을 떨쳐내고 해탈에 이르는 것을 돕기 위해 불교를 창시했다. 도를 넘어선 집착은 고통만을 안겨준다는 것은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가르침이지만, 인간의 무한한 욕망 때문에 실천하기 어려울 뿐이다.
집착이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역시 사랑의 관계에서이다. 연인관계든, 부모 자식관계든 가장 가깝고 사랑이 넘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집착의 형태가 나타난다. 연인은 상대를, 부모는 자식을 내 것이라는 소유욕에서 집착이 싹튼다. 상대방이 완전히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 집착이 더 심해지게 된다. 집착이 심해질수록 그 부담감을 상대방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당연히 갈수록 심해져 가는 집착으로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낀 상대방은 좋아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모두 접고 떠날 수밖에 없다. 내가 우긴다고 사랑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무조건 좋은 줄 안다. 그것은 바르게 사랑할 때의 이야기다. 사랑의 감정이 조금만 옆길로 새면 집착이란 수렁으로 빠진다. 사랑과 집착은 비슷하지만, 근본 마음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은 배려심이 포함된 감정이고, 집착은 이기심이 포함된 감정이다. 사랑은 상대의 행복을 위해 늘 희생하고 노력하는 반면, 집착은 상대방이 고통스럽든, 슬프든 간에 자기 자신이 행복하면 그걸로 끝이며 상대방을 소유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면 만족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수단, 상대방이 목적이라면 사랑. 상대방이 수단, 내가 목적이면 집착이고 욕망이다. 대부분 과한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는 경우가 흔하며, 집착이 전혀 없는 사랑은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지기 쉽다는 딜레마가 있다. 바람이 통할 정도의 적당한 사랑의 거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살면서 가장 집착하기 쉬운 곳이 사랑 다음으로 숫자다.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숫자에 놓고 산다. 학생들의 입장으로 보면 숫자는 곧 점수이고, 어른이 되면 숫자는 돈이다. 숫자는 크기를 측정하고 비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숫자는 가족의 건강, 교육의 질, 삶의 즐거움, 아름다움이나 결혼의 가치, 유머나 용기, 지혜와 가르침, 자비나 헌신 등을 측정하지 않는다. 숫자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측정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지능지수는 지혜가 아니고, 친구 숫자는 관계의 깊이가 아니고, 집 평수는 가족의 화목함이 아니고, 연봉은 인격이 아니듯 숫자는 삶이 아니다. 학생은 성적 점수에 목메지 말고, 성인은 돈에 삶의 가치를 두지 말라는 말이다. ‘성적은 행복 순이 아니다.’란 말은, 성인이 되어 학생 시절 점수가 삶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으로 확인하지 않는가. 돈도 어느 정도까지는 행복에 이바지하지만, 정도를 넘어선 돈은 행복에 이바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진실이다. 숫자에 삶의 목적을 두게 되면 늘 비교하고, 비교하는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비교하기 위한 숫자는 불행의 씨앗일 뿐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숫자에 삶의 가치를 두지 말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건강’, ‘정성’, ‘성실’ 같은 평범한 것들에 귀한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한다.
집착은 많은 정신병리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집착은 사물이나 세상을 바라보거나 해석할 때 자신이 꽂힌 방향으로만 고정되어 다양한 관점이나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므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나아가 위험한 생각으로 치닫거나 현실감을 상실하게 되고, 다양한 정신병리 현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대상은 사람, 물건, 돈, 건강(병), 음식 등 다양하지만 많은 집착증, 염려증, 의심증 환자가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나이, 성별, 직업,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에게서 발현된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집착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집착의 증세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소유하거나 보지 못하면 불안증세를 보이고, 상대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화는 낸다. 또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별다른 이유 없이 의심한다. 심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인이나 물건을 빼앗길까 두려워해 상대를 해치기도 한다. 스토커나 납치범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빼앗길 염려 없는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연인과 사귀는 것이 답인가?
집착과 욕망은 이웃집 사촌이고 양날의 칼이라, 잡으면 잡을수록 내 손이 베이고 삶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는 것도 내 삶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끔 하는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세상에 집착하는 욕망의 덧없음은 누구나 잘하는 사실이다. 오늘 하루에 집착하여 삶이 단 하루뿐인 것처럼 사는 것이 답이다.
‘갖지 못한 것’에 집착(執着) 하지 말고, ‘가진 것’을 직시(直視)하여 늘 만족스러운 삶을 꾸려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