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자리

장편 소설 - 홍학의 자리

by 설민

그의 자리

장편 소설 - 홍학의 자리


설민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곳은 그와의 기억이 담긴 삼은 호수다. 준후에게 그 장소를 알려준 사람이 다현이다. 다현의 세상은 좁았다. 다현의 관심사는 세상이 있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준후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삶은 버석거리는 모래로 꽉 차 있었다고 했다. 숨이 막히고 벗어날 수 없는. 다현은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세상을 살아내고 있었을까?


다현의 책상 벽면에는 프린터로 조잡하게 인쇄한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강 위에 떠 있는 홍학 사진. 다현의 시신이 발견된 뒤 경찰이 수사하면서 방문한 집 풍경이다. 다현은 준후에게 아루바라는 섬의 홍학 이야기를 했다. 직접 먹이를 줄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다고. 다현은 준후와 그토록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왜 죽었을까?

소설의 첫 부분부터 강렬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고등학교 교실 안에서의 정사 장면이라든가 다현이 죽음을 숨기기 위한 준후의 당혹스러운 행동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의 죽음보다 자신의 체면이나 지위가 더 먼저인 선생이라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준후 또한 아내와 별거 중인 상태다. 살풍경한 살림이 고스란히 드러난 집에서 지내며, 학교 업무에 차여 밤늦게까지 야근을 일삼는 평범한 교사가 누리는 일탈이 다현의 죽음으로 인해 사건으로 변질하는 그 밤, 그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궁금해하며 형사 강치수의 입장이 되어 사건을 되짚어갔다. 한 생명이 걸린 일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도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는 과정은 더 전율이 있다.

학교로 경찰들이 수사를 나오고 그날 밤 야근 중이었던 준후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는 긴장하지 않으려고 책자를 펴서 눈을 박았다. 그러나 집중될 리라 없었다. 그가 읽어내는 글자들이 내용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준후 또한 다현의 죽음이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자신과의 관계, 그것도 동성애가 드러나는 일만은 없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를 이해해 주는 건 선생님뿐이에요.”

김준후와 은밀한 관계를 이어오던 채다현은 처음과는 다른 희망을 품었다. 수사를 진행하던 형사 강치수가 다현의 글에 희망이라고 말한 그것을, 김준후는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채다현은 김준후의 가족이 되길 바랐다. 그와 가족인 권영주를 김준후의 삶 밖으로 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녀를 찾아가 둘의 관계를 알리고 이혼해 주기를 바랐다.

홍학은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그것은 동성애가 굉장히 많이 발견되는 동물이라고 한다. 수컷과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다른 수컷이 암컷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수컷과 수컷 사이에서 큰 새끼는 더욱 강하게 크기 때문에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네덜란드에 함께 가자고 했던 다현의 말이 단지 홍학 때문만은 아님을 준후는 알고 있었다. 그곳은 동성 결혼이 합법이었다. 그러나 준후는 양성애자였다. 남자나 여자나 상관없었다. 다현을 선택했던 것은 그 아이가 외로웠기 때문이다. 의지할 부모나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이 젊고 탄력 있었기 때문이다.

다현의 사인이 익사였다는 말에 준후는 무너지고 만다. 그 당시 죽은 줄 알았던 다현, 그와의 관계가 들통나는 게 겁났기에 다현을 호수에 던져버린 게 자신이었으니까. 이 소설에서는 준후 외에도 조미란 선생의 오해로 경비 황권중도 죽게 된다. 다현을 자신의 아들 정은성이 죽인 것으로 생각했던 거다. 친구였던 그 둘은 다현 엄마의 사기로 인해 재산을 날린 은성 아버지가 자살하면서 멀어지게 된다. 은성의 화풀이 대상이 된 다현은 반항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의 엄마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당한 다현이 믿고 사랑했던 준후. 그러나 그로부터도 끝내 버림받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벌인 일이었지만, 준후가 다현을 조금만 더 살피고 생각했더라면 살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위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 정해연. 그의 장점은 흥미로운 설정과 뛰어난 가독성이다. 곧바로 스토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설정과 가독성은 물론, 매 챕터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한 스토리텔링, 완성도 높은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플롯으로 스릴러 자가로서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해연 작가는 ‘스릴러는 경고’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겪은 어린 시절의 행복이 그 사람을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지보다는, 불행한 어린 시절이 사회를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경고하는 것이 스릴러 작가의 역할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번의 경고는 '인정욕구'였다.

김준후는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시선을 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면에는 반대의 욕구가 있다. 그것을 채다현을 통해 해소해 온 이기적인 사람이다. 채다현이, 그 마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채다현은 끊임없이 확인받으려 한다.

권영주 역시 김준후의 “날 이해해 주는 건 당신뿐이야”라는 말에 안심을 해버린다. 자신을 배신한 김준후에게 변호사를 붙인 것을 보면 그녀는 아직까지 그 말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변질하였을 때 어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지 우리는 많은 일을 통해 배웠다. 부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던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고, 자신을 무시한다며 이웃 주민에게 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인간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 공감된다. 나 또한 내가 쓴 글이 재미있다, 잘 보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인정욕구를 지닌 인간임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뒤로하고 '의도가 잘 드러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나'라는 굴레를 벗어나 더 가볍게 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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