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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민 Sep 06. 2024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설민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드라마 초반에 계속 나오는 내레이션이다. 

   제목에 이끌려서 보기 시작했는데 극 앞에서 이런 질문을 툭, 던진다. 연못에 돌을 던지듯.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화두 같은 이 말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질 때 쿵, 소리가 났겠는가? 물론 났을 것이다. 그 쓰러진 나무 근처에 있는 동식물들은 깔려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멀리서 보면 숲 속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평온할지도 모른다. 쓰러진 나무 또한 뿌리를 잃어 죽어갈 수도 있다. 또 그 나무를 둥지 삼아 파먹는 벌레들과 동식물들이 생길 수도 있다. 

  왠지 ‘아무도 없는 숲 속’이라는 단서가 왠지 기괴하고 불안한 느낌이다. 거기다 커다란 나무는 어떠한 사건을 암시할까? 궁금해졌다. 


   한여름 찾아온 수상한 손님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총 8화의 드라마가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각각의 단편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할 정도의 긴장과 스릴이 느껴지고 몰입도가 높았다. 그 이유는 처음에는 헷갈렸지만 시간의 차이가 있는 두 사건을 같이 보여주는 연출 때문이기도 하다. 

   상준과 영하라는 인물 주변에서 일어난 한 순간에 일상을 바꿔버린 사건들이 평행선처럼 이어진다. 20여 년 전 과거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준과 현시점에서 일이 벌어진 영하의 괴기한 일상. 의심과 불안 속에서 현실과 상상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영하.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상준. 그들의 공통점은 한적한 시골에서 펜션과 모텔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낯설고 모르는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며 지내는 곳. 그들은 손님들에게 선의를 베풀지만 그것이 뜻하지 않는 불행으로 돌아오며 삶이 서서히 파괴되는 과정이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인다. 가해자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눈군가가 던진 돌에 맞아 조금씩 무너지는 개구리. 두 개구리들의 이중합창소리가 드라마 전반에 흐른다.

   이렇듯 두 이야기가 오버랩되며 진행된다. 그 연결고리는 보민이다. 보민의 젊은 시절은 상준의 사건 이야기, 현재는 파출소장으로 오게 된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강력계 출신 경찰로 20년 전 근무하던 파출소에 소장으로 부임하여 오면서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 모든 사건을 제삼자의 시선에서 지켜보는 파출소장 보민은 집요하게 사건을 파고들며 사건을 일종의 ‘놀이’로 생각한다. 보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놀이를 하는 술래’라고.


   평온하고 소중했던 일상이 한순간의 공포로 뒤덮인다면 어떨까? 마치 교통사고처럼 부지불식 중에 의도치 않게 일어난 일이라면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완일 감독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숲 속을 걸어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그 공간에 원치 않는 일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야말로 미스터리로 뒤덮인. 그로부터 평화의 공간이 공포로 변주하는데, 그 이중성이 가진 매력을 잘 그려내고 싶었다”라고 했다. 조용한 숲 속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이야기가 대비되면서 더 끔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연쇄살인마 지향철과 유성아,라는 인물은 상식을 벗어나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상준을 몰락시킨 남자는 자기가 지나가는 길에 왜 있었냐며 태연하게 말하기도 하는, 죄책감이라고는 없는 가식적인 모범수다. 유성아 또한 영하의 펜션을 자기 집처럼 가꾸며 뻔뻔하기 그지없이 주인을 내쫓으려고 한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일을 합리화하면서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무엇이 잘못인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상식과 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의 인물들 앞에서 다시 한번 처절하게 무너지는 상준과 영하의 괴로움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복잡한 관계를 쫓아가다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감이 돈다. 돌을 던지는 사람과 돌에 맞는 개구리의 이야기가 균형감 있게 담겨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가해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 드라마는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까지 추락해 가고 어디까지 절망할 수 있는가를 잘 드러낸다. 


   한 여름밤의 꿈. 공포영화와 같은 비밀스럽고 숨 막히는 이야기. 

   어찌 보면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자신들은 다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하는 모습에서 분노가 생기지만,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출이 과격해지는 성아를 보면서 잘못을 바로잡기보다는 돈으로 해결하려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렇게 만든 원인제공을 한 것은 아닌가 한다. 결국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것을 말이다.  


   자신의 앞날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운명에 맞서는 이야기.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가족이 다친다는 것을 인지한 영하의 고군분투, 한순간에 가정이 파괴된 것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상준의 아들 기호의 몸부림이 이 드라마를 끌고 나가는 힘이 아닌가 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을 맞닥뜨린다면 어떨까? 그것을 해결해 가는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불러일으키는 파장, 그 사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살을 하거나, 정신을 놓아버리는 상황에서 또 2차 피해를 보는 것은 남겨진 가족의 몫이다. 작은 구슬에도 끊임없이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어디까지 그 여파가 일지 모른다. 문제가 나로서만 끝난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쓰러진 커다란 나무는 그 크기에 비례해서 많은 동식물들과 함께 죽어갈 것이다. 

문득 내가 살면서 일으키는 파장의 결과가 무서워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죽은 나무에서 또 다른 동식물들이 생겨나듯 어떤 이유에서든 다시 살아남을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인생은 각자의 몫이라는 무게를 실감하면서.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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