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심기를 위해 서툴러도,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리틀 포레스트

by 설민

아주 심기를 위해 서툴러도,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리틀 포레스트


설민


영화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양파를 심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아주 심기’를 말한다.

식물이나 작물을 이전에 자라던 곳에서 수확할 때까지 재배할 곳에 옮겨 심는 것. 아주 심기는 더는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다.

추운 겨울, 불현듯 내려와 고향에서 사계절을 지내다가 떠난 혜원을 기다리며 친구 재하와 은숙은 양파 씨를 뿌리고 볏짚을 덮어두며 이야기를 나눈다. 말없이 떠난 친구를 원망하는 은숙이와는 달리 재하는 혜원이 아주 심기를 위해 잠시 떠난 거라고 말한다. 곧 돌아올 것 같다고.


시험, 연애, 취업……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오랜 친구인 재하와 은숙을 만난다. 대학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서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한편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어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 그들과 함께 직접 키운 농산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여름 그리고 가을, 또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되면서 혜원은 자신도 이곳에서 뿌리내리는 식물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 혜원이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다.


눈길을 걸어 텅 빈집으로 돌아온 혜원. 냉기가 가득한 집안에 불을 지핀다. 오래 비워둔 집안에 남아있는 음식은 쌀 조금뿐. 밭에 나가 눈을 치우고 언 배추를 뽑아 만든 된장국을 끓여 허기를 달랜다.

얼마나 비어있었던 집이었는가. 먹을 것을 사기 위해서는 멀리 나가야 했기에 집에 있는 재료인 밀가루로 수제비 반죽을 하고 배추 전을 부쳐 먹는다. 그제야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을 하는 혜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인스턴트식품에 질려버린 혜원은 어릴 적부터 해주던 엄마의 집밥이 그리웠을 터였다.

혜원이 수능을 본 이후 편지 한 통 써놓고 가출한 엄마는 꿈을 향해서 발걸음을 떼어 나간 것이다. 은연중 엄마를 기다리지만 안 그런 척 무심하게 지내는 혜원이 성장해 가는 모습이 따듯하고 애잔하다.

고향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보고, 농사일을 도우며 땅에서 자란 것들과 자연의 섭리를 배우며 마음이 커간다. 그제야 엄마의 편지 내용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혜원. 자신을 이곳에 뿌리내리기 위한 엄마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마치 자식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그런 것 같다. 안타깝지만 믿고 기다리는 것. 자식만큼은 나보다 힘들게 살지 않게 해 주고픈 마음이지만, 세상일은 오롯이 혼자 겪어내고 깨닫고 헤쳐나가야 하는 자신만의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혜원 엄마의 용기와 베짱이 맘에 든다. 왕따를 시키는 애들이 가장 원하는 게 네가 반응하는 것이니 먼저 그 친구들을 따돌리라는 엄마이니 말이다.


20대의 자녀도 마찬가지지만, 부모들도 ‘아주 심기’를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영화를 보고 아주 심기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면서 얼마 전 만난, 칠십이 넘은 문우의 말이 생각났다. 앞으로 자신은 글 쓰며 책 10권 내기, 여행하기, 손주 돌보기 이것만 신경 쓰고 살겠다고 정리하고 나니 온갖 잡념이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분은 아주 심기를 끝내고 뿌리내리기를 잘하고 계시는구나, 여겨졌다.

그럼 나의 ‘아주 심기’는 무엇인가? 조금 단단해졌나 싶다가도 여전히 흔들리는 뿌리, 갈팡질팡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 어디에 뿌리내리고 삶을 정리하며 단순하게 살 수 있을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남의 속도가 아닌 내 속도, 남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아주 심기를 한 양파는 아주 달고 맛나단다. 나의 아주 심기도 제대로 된 비옥한 땅에 뿌리내리고 맛난 당도가 생기려면 다소 서툴고 더디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물론 때가 있지만, 자리를 잘 찾으려면 조급한 마음 버리고 잠시 쉬어가며 숨을 돌리고 생각해야 한다.

다시 나를 다독인다. 아주 심기를 위해 서툴러도,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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