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설민
어쩌면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나이 들어 살아간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움직이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는 게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죽으면 그 뒤의 모습을 알지 못하니 지금은, 이생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어떨지가 관건인 것이다.
물론 바른 정신으로 곱게 늙어가기를 희망한다. 그 전제 조건은 병이 없다는 것이다. 기억이 흐려지고, 인지가 떨어지고, 몸이 굼뜨기는 해도 병만 없다면 늙은 몸을 잘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데이지는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자 운전을 하다 결국 사고를 낸다. 이에 놀란 아들 불리는 흑인 운전사 호크를 고용한다. 그러나 고집 센 유대인 마나님은 일방적으로 호크를 무시하는 등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유머가 가득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호크는 데이지 여사의 냉대와 무시를 무릅쓰고 오로지 진실하게 보살핀다. 결국, 잘난 체하고 고집불통인 할머니도 그의 참다운 모습에 감동하여 따뜻한 마음으로 호크를 받아들인다.
데이지 여사는 성격상 아주 꼬장꼬장하고 반듯한 사람이기에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가정부를 두고도 본인이 차를 몰아 장을 보러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서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낸다.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아들은 나이 든 엄마가 운전하는 게 걱정이 된다. 이제 그만하라며 운전사를 고용하지만, 데이지는 계속 투명인간 취급한다. 집에 통조림 개수까지 파악하는 그녀가 새벽에 아들을 불러들인다. 개수가 빈다며 분명 그 운전기사가 훔쳐 간 거라고 해고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아침부터 실랑이하는 아들은 엄마가 너무 피곤하다. 그렇다고 모시고 살 수도 없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다고 못 박은 아내는 불리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들이는 게 불만이다. 데이지 또한 사치한다고 여기는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운전기사가 출근하며 인사를 한다. 퇴근하기 전에 배가 고파서 통조림 한 개를 먹었다며, 하나 사 왔다고 말한다. 이를 본 아들과 데이지는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못마땅하지만 조금씩 자신이 운전하는 게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데이지. 장을 보러 버스를 타고 간다고 나서자 운전기사는 그녀를 따라간다. 혼자 할 수 있다고, 기름값과 운전기사 고용비가 아깝다며 거부하지만 못 이기는 척 차를 탄다. 재치 있는 운전기사의 말솜씨에 웃음이 나도 그것을 표도 내지 않지만, 서서히 그가 운전해 주는 차가 편안해지는 데이지.
운전기사와 음식을 다듬으며 텔레비전을 보던 가정부가 갑자기 죽는다. 거의 평생을 함께한 이가 죽자 데이지는 충격을 받는다.
폭설이 내려 추운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운전기사를 기다린다, 혼자 남은 썰렁한 집안에서. 따뜻한 커피도 사다 주고 말벗도 되어주는 기사가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흑인과 백인은 같은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심지어 흑인이 비싼 차를 타고 있으면 불심검문의 대상이 되던 1950년대 미국 조지아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 백인에 유대인, 심지어 전직 교사였던 데이지 또한 날 때부터 기득권을 가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흑인 운전기사는 맘이 들지 않는다. 그 마음속에는 아직 자신이 운전할 수 있다는 자만심도 깔려있다. 그런데도 퉁명스러운 데이지의 말에 능청스럽게 대꾸하며 성실하게 일하는 호크. 덕분에 이 둘은 끝내 인종과 성별, 그리고 나이마저 뛰어넘어 정을 쌓아간다.
집에서조차 혼자 있을 수 없게 된 데이지. 요양원으로 그녀를 만나러 가는 호크. 그 둘의 대화는 오갈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정답게 이야기 나눈다. 숟가락질도 잘못하고, 호크를 알아보지 못하는 데이지에게 파이를 떠주는 호크의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살아낸다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참으로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