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완벽한 이웃
설 민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영순 씨와 동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그녀의 집으로 갔다. 옷장을 열어 그녀가 평소 즐겨 입던 옷을 꺼내 주었다. 신이 난 그녀가 내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한 치의 부끄럼이나 거리낌이 없는 행동이다. 화장대 거울을 보며 신나게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피는 영순 씨에게 바깥의 날씨가 쌀쌀하니 모자와 마스크까지 하라고 일렀다. 그녀가 나에게 미리 일러둔 터였기에 영순 씨의 통장과 신분증, 그리고 도장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서 한빛은행까지의 거리는 골목 한 블록 정도였지만 다소 다리가 불편한 영순 씨를 위해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늦가을 비 온 뒤라 단풍과 은행나무 잎이 길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빗물로 반들거리는 아스팔트 위에 코팅된 책받침처럼 박혀있는 나뭇잎들이 영순 씨 집에 있는 자개농의 무늬 같았다. 단풍잎은 바닥에 어린아이가 붉은색 손도장을 찍어놓은 것 같다. 축축한 빗길을 굴러가는 바퀴소리는 따귀를 때리는 것처럼 찰싹거린다. 한 번씩 바람이 불어 가지를 흔들 때면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마치 오만 원 권 지폐가 흩날리는 듯이 보인다.
마지막 잎을 다 털어내는 듯 바람이 부는데도 악착같이 남아있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의 모습을 보니 일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지금의 내 모습 같았다.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는 발려진 생선가시처럼 엉성하게 남아서 제 몸을 부르르 떤다. 나무 밑에 깔린 나뭇잎은 갈색 동산을 만들었다. 갈변한 나뭇잎 사이로 푸릇푸릇 보이는 것이 마치 무덤가의 떼 같아서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느티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낮인데도 마치 해 질 녘 같은 회색빛을 띄고 있다. 신호대기로 서 있으면서 나뭇가지를 올려다보았다. 삐죽하게 들쑥날쑥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부족으로 충혈된 내 눈의 실핏줄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당신도 추우면 마스크 하고 모자도 쓸 걸 그랬다.”
그녀가 나를 챙긴다.
“이 비가 그치면 엄청 추워지겠지? 난 추운 게 너무 싫어”
영순 씨가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마른 손을 비빈다.
“올 겨울은 따뜻할 겁니다.”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처럼 말을 내뱉은 나는 공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난 당신만 믿어. 따뜻한 겨울을 나게 해 줘.”
나를 쳐다보는 영순 씨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끝내 외면했다.
검붉은 단풍나무와 누렇게 물든 손바닥만 한 후박나무 잎이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반가움의 인사인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건지 도무지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머리를 따라 흔든다. 영순 씨는 그런 나를 보고 어린애처럼 도리질을 하는 시늉을 한다.
나무들을 둘러보는데 새삼스럽게 공원의 가로등이 트럼펫을 길게 늘여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원 거리를 오랫동안 지나다녔지만 처음 와본 동네인 것처럼 낯설었다. 바로 누군가가 나타나 가로등을 뽑아 들고 연주를 할 것은 착각마저 들었다. 교통경찰의 호각소리를 듣는 것처럼 바짝 긴장이 된다.
연말만 가까워지면 애꿎게 파헤치는 도로공사 때문에 차가 꼼짝도 않는다. 한 블록의 길인데도 족히 십 여분이 걸릴 듯하다. 일 차선 도로에서 공사구간을 막고 선 인부들이 눈치껏 수신호로 차량을 이동시키는 것을 보니 그냥 걸어서 갈 것을 그랬나,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도로 중간 지점에 있었으므로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였다.
도로변으로 나있는 공원, 나란히 짝꿍처럼 앉아있는 벤치. 여름에 그곳에 앉아서 태양을 닮았다는 과자와 맥주를 마시던 날이 생각이 났다. 공원에서 집 없는 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던 내가 영순 씨를 알게 된 즈음이었다. 짝꿍과 벤치에 앉아 시시덕거리고 있으면 좋은 때라고 말참견을 하곤 했다.
술 마시다 취하면 벤치에 눕기도 했다. 더블베드처럼 한쪽에 누웠다가 다른 한쪽으로 옮기다가를 반복하다 땅바닥에 떨어졌던 생각이 났다. 그때만 해도 나란히 있는 벤치처럼 나에게도 짝꿍이 있었는데, 혼자 쇼한다며 ‘미친놈’이라고 욕설을 퍼붓던...... 애인과 허술한 여관마저도 갈 여유가 없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 내 옆에는 도리도리 시늉을 하며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영순 씨가 있다. 여름날 짝꿍이 사주었던 자동차 선반 위에 있는 검지 크기의 돼지 얼굴 모양의 스프링 인형과 비슷하게 흔들고 있다.
은행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단기가 막아선다. 멈칫 브레이크를 밟은 후 번호표를 뽑고 주차를 했다. 나는 그녀가 무사히 내릴 수 있도록 손을 붙잡아 주었다. 그녀의 수줍은 눈웃음이 마스크 너머로 그대로 전해졌다. 영순 씨의 어깨를 부둥켜안은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은행 문 앞을 향해 그녀와 함께 걸었다.
식빵 모양처럼 지붕이 봉곳한 은행 건물. 2층에는 세 개의 창문이 나있고 1층에 정문이 있는 것을 보니 눈 세 개 달린 로봇 머리가 연상된다. 2층 창문과 중앙 문 사이에 딸기코를 연상케 하는 은행간판이 로고와 함께 눈에 들어왔다. 정문 옆에는 365 코너가 있고 CCTV녹화 중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 옆에는 [같이 바라고 같이 꿈꾸고 같이 해냈습니다]라는 홍보 문구가 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은행 입구 앞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는데 나뭇잎이 입출금 용지 크기만 하다. 나는 정문을 향해 이인삼각 경기라도 하는 듯 영순 씨와 함께 뒤뚱거리며 들어갔다. 그녀를 옆에 세워둔 채 나는 서류를 작성했다. 은행 업무를 보는 게 서툰 그녀가 나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 한두 번은 아니었기에. 공과금을 낸다던지, 현금을 찾아야 할 때면 예외 없이 전화가 걸려와 부탁을 하곤 했다.
은행 안은 분주하지는 않았지만 번호표를 뽑고 서너 사람을 기다려야 했다. 영순 씨와 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지로용지와 지폐, 잔돈까지 맞춰 온 듯 흐트러짐 없이 쥐고 있는 할아버지. 주말에 손자들이 온다며 신권으로 바꿔달라는 꽃무늬 조끼를 입을 할머니. 은행 안이 안방인 양 큰 소리로 통화하는 젊은 아가씨. 지난밤에 지질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술 마시고 토한 사실이 자랑스러운가 보았다.
내 폰 속 그녀의 닉네임은 ‘완벽한 이웃’이다.
그녀를 만난 건 동네 커피숍 [에코]에서였다. 지정석을 정해 놓은 것처럼 늘 비슷한 시간에 그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그녀.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가끔씩 커피숍을 갈 때면 습관처럼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았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없으니 그녀를 찾게 되는 것이었다. 마치 빈 퍼즐 조각을 찾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관심이 간 다기보다는 왜 매일 비슷한 시각에 혼자 커피숍에 앉아있는가에 대한 호기심, 그뿐이었다. 그런 그녀와 통성명을 하고 전화번호까지 주고받은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그날은 나도 혼자서 커피를 마시면서 선생들 월급을 줘야 할 고민에 빠져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무표정한 사람들. 걱정거리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건 그녀였다.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웬 청승이에요? 우울하면 내가 달콤한 커피 한 잔 사줄까요?”
그녀의 관심에 나는 합석을 하게 되었고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김영순.”
“저는 강호준입니다.”
“호준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이름이 같네?”
그녀는 다소 어눌한 말투였지만 푸근한 미소가 좋았다.
나는 일 년 전, 큰 결단을 내렸다. 매달 이자와 원금을 갚는다는 약속을 하고 부모님의 집을 담보로 보습학원을 차리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나이는 드는데 직장 이력서는 더 이상 낼 수가 없고, 과외 아르바이트로만으로 연명을 할 수 없었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한 명으로 시작하여 이십여 명의 학생을 유치하기까지 노력을 다했지만, 서너 명씩 몰려다니는 여자 아이들이 그만두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었다. 또 과목별로 들어가는 선생의 월급과 관리비를 내는 일은 사십 도가 넘는 사막에서 물도 없이 숨을 헐떡이며 참아내는 일같이 위태로움의 연속이었다. 매일 매시간이 피부가 쪼여오고 입이 마르고 심장이 방망이질 치는 듯했다. 시간은 어김없이 꼬박꼬박 흘러가는데 돈은 손에 쥔 모래알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부모님에게 주기로 한 이자는커녕 다달이 드는 비용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나만의 공간처럼 아늑했던 학원의 원장실이 마치 감방같이 느껴져서 숨이 막혔다. 그것이 내가 낮 시간을 이용해 가끔 커피숍에 갔던 이유인데 거기서 그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밥값대신 커피로 한 끼니를 채우는 일이 많아졌다. 체면 떨어지지 않게 그녀에게 커피를 사주기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민 중이었다. 학원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인가. 사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원장소리 들어보려고 학원 차렸냐고 비아냥거리는 누나의 말에 마치 내 속내를 들킨 듯 당황스러웠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빚 못 갚으면 집이 날아간다는 불안감이 극도에 처해 있었지만 부모님도 나도 차마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 이런 때에 누나는 각성이라도 시키는 듯 나에게 일침을 놓고는 했다. 이런 상황에 최근 들어서 걸려오는 부모들의 전화는 상담전화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학원을 못 다닐 것 같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또 근처에 브랜드를 걸고 들어 오는 대형학원이 생긴 것도 내가 운영하는 학원에는 큰 타격이었다. 경기 악화로 학생들이 눈에 띄게 그만둔 대다가 선생들의 월급을 마련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기에 나는 거의 라면으로 연명했다. 두어 달 사이에 바지 허리띠를 세 칸이나 줄였다. 현기증이 날 때도 있었다. 차량운행을 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귀가할 때도 도움을 주었지만 승용차로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줄여보아도 매달이 적자요 관리비 내기도 벅찬 나날이었다. 간신히 숨 돌리고 고개 들면 다시 어김없이 월급날이 코앞으로 돌아왔다.
고민을 해도 해결할 방법이 없이 막막한 날의 연속일 때, 커피숍에서 만난 그녀는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긴 이야기를 나누거나 따로 만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거의 매일 알람시계의 울림처럼 11시 즈음에 커피숍에 가면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인 나로서는 그녀가 참 편했다. 그녀는 수다스럽지 않았지만 옛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대화를 흥미 있게 이끌어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주면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잡아주기까지 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이내 우는 그녀에게 휴지를 권하고 어깨를 쓰다듬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친해졌다고 여겨지다가도 그녀는 불현듯 나를 처음 보는 사람 취급을 하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커피숍에서 만나 인사를 하며 합석을 하면 누구냐며 화들짝 놀라기도 했고, 만나서 참 좋다는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이름을 몇 번이고 물어보고 반복하는 것도 부지기수여서 나는 그녀가 참 엉뚱하다고 여겼다. 그녀를 늦여름부터 보아왔는데 그때부터 춥다고 하며 모자와 목도리를 꼭 두르고 나왔다.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몹시 화를 내며 불안해하기도 했다. 또 차를 마시다가 말없이 사라져서 전화를 해보면 집에 가스불을 켜고 나와서 들어갔다며 부끄럽게 웃기도 하니 참으로 감을 잡을 수 없는 성격이었다. 한 번은 점심을 사주겠다면서 고급 한정식 집을 가서는 지갑을 놓고 왔다고 하여 난처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에게는 ‘완벽한 이웃’이었다. 나의 신세 한탄과 연애 상담은 그녀의 몫이었고 해결해 줘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날씨가 서늘해지자 벤치에 앉아 함께 술 마시던 애인이 갈 곳이 여기밖에 없냐며, 여름 한 때 철새가 왔다가는 것처럼 이별통보를 하고 떠난 이야기까지 묵묵히 들어주는 편안한 사람이었다.
학원의 선생들과 아이들하고는 소통의 사이라기보다는 명령과 지시를 해야 하는 관계다. 그렇지 않으면 학원을 운영하기가 어려웠다. 네 명의 선생들은 성인이지만 아이들과 하는 행동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이 어린 젊은 선생을 두면 학생들과 불화가 일어나거나 여학생과 눈이 맞아서 분란을 일으켰다. 여학생과 학원에서 밤을 보낸 선생도 있었고, 몰래 학원 아이들을 따로 모아서 개인 과외를 하는 사람, 내 눈앞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 학생과 다른 선생들 앞에서는 도덕성을 상실한 사람도 있었다. 한 번은 하도 힘들어서 나이가 있는 선생을 두면 어떨까 해서 모집 광고를 냈다. 번듯한 40대 가장의 이미지였기에 학원 상담과 함께 수업을 부탁했는데 정말이지 고집불통에 막무가내였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일없이 집에 있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진즉에 깨달았어야 했다. 본인이 원장이 되어 상담도 멋대로 하고 선생을 해고하는 일처리를 독단적으로 결정하지를 않나, 더 나아가 내가 보는 앞에서도 컴퓨터 고스톱을 치는 대담성까지 보여주었다. 철저히 본인의 수업과 내용에는 관여하 지를 말라고 하며 스스로 프린터까지 만들어서 열심히 한다는 사람이 알고 보니 수준 이하의 내용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해고 통지를 하고 다시 모집광고를 냈다. 물론 새로운 선생을 구하기 전까지는 출근하는 조건이었는데 다음날부터 나오지를 않았다. 보름여의 시간 공백을 가까스로 채우며 수업을 버텨왔는데 날벼락같은 전화가 왔다. 근무시간에 컴퓨터 게임을 하던 그 선생의 부고전화였다. 전 직장에서도 근무 태만과 정신적인 고질병으로 해고되어 집에 있었지만, 학원에 나가게 되어 좋아했었다는 그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거였다. 굳이 문상을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학원에서의 해고로 충격받은 거 아니냐는 어처구니없는 유가족의 말을 들으니 안 갈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에 가서 일방적인 해고가 아니고 학원을 그만두게 한 경위와 선생 모집광고를 낸 시기를 알려주고서야 오해가 풀렸다.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만든 학원은 오히려 사회성 결여된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돈을 벌기에 급급해지니 아이들을 만나고 함께 공부하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한 학생은 가정의 불화로 가출을 한 상태였는데 집에서는 나를 대리부로 아는 양 학원비만 보내주고는 그 아이를 돌보게 했다. 서너 달을 그 학생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나의 생활은 없었다. 가까스로 그 학생을 어머니한테 보낼 때까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늘려가며 운영을 해왔는데, 옆 건물에 갑작스레 학원이 오픈하면서부터는 더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바로 옆 건물에 동종 업계가 들어오는 것을 귀 뜸 안 해 줬다고 부동산에 가서 따졌지만, 내가 알았을 때는 이미 내부 인테리어며 허가까지 다 받아놓은 상태였다.
수학 선생이 그런 학원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급여를 올려주지 않으면 그만두겠다고 선포를 했다. 시멘트벽 앞에 또 다른 철문이 생긴 것 같은 날,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녀와의 만남은 일 년간 겪은 벅찬 현실을 잊게 만들어 주는데 충분했다. 그러기에 내가 늦잠을 자서 못 일어나는 게 아니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하루의 일정이었다.
문을 열자 [에코]라는 커피숍 간판이 귀엽게 흔들리며 종소리를 냈다. 한눈에 들어오는 커피숍 안. 창가로 나 있는 탁자와 4개의 원형 테이블이 전부인 커피숍 내부 어느 곳에서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았다.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 그 시각에는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찻잔 하나 올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그녀가 있어야 했다. 오늘은 오지 않았는지, 왜 안 왔는지 커피숍 주인에게 물었지만 모른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만 들렸다. 다시 한번 걸었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 호준이에요.”
“누구?”
“커피숍에서 만난......”
“아, 호준 씨?”
왜 커피숍에 오지 않았는지를 묻자 그녀는 몸이 아프단다. 죽을 좀 사가지고 간다고 하니 순순히 집을 알려주는 그녀.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집에 방문했다. 꽤나 큰 평수의 단독주택이었다. 가구는 단출하고 장식도 없는 깔끔한 인테리어가 주를 이루는 거실.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안방에 자개농이 있는 고전적인 집안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족히 8인용은 되어 보이는 엔틱 식탁은 가히 위협적이면서도 생뚱맞았다. 식탁 벽면 위에는 부챗살에 그림을 그린 장식이 걸려있었다. 커다란 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으나 모란꽃인지 무슨 꽃인지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화선지에 번진 붉은 꽃잎은 색이 바래 있었다. 아파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내 앞에 앉은 그녀처럼. 그녀가 만든 작품인지를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식탁이 앉히고 나는 사가지고 온 죽을 열었다.
“혼자 먹기는 죽기보다 싫어”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끼니를 못 챙긴 내 사정을 아는 양 같이 먹자고 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릇에 덜어서 함께 죽을 먹고 나자 그녀가 커피를 대접한단다. 나는 그녀를 만류하며 편의점에서 사 온 캔 커피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식을까 봐 핫팩에 싸가지고 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해 준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고. 천 원 남짓한 따뜻한 캔 커피가 그녀를 울게 할 거라는 상상도 못 한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주었다.
며칠을 감기로 고생한 그녀가 다 나았다면서 다시 집으로 초대를 했다.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거였다. 밖에서 사달라는 것을 만류하고 그녀는 굳이 나에게 된장찌개를 끓여 주겠단다. 혼자 생활하면서 집 밥을 먹어본지가 오래된 총각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편안하게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기에 더 절실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렇게 그녀의 집을 드나들게 된 나는 자연스럽게 살림살이를 돌보아주게 되었다. 침실의 형광등도 갈아주고 현관문이나 시계의 건전지도 갈아주면서 말이다. 시력이 떨어지니 창밖이 뿌옇게 보인다고 하여 유리창 청소까지도 서슴지 않고 도맡아 했다. 그녀가 힘이 부쳐 따지 못하는 캔도 따주면서 말이다. 때로는 변덕을 부리고 느닷없이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된장찌개에 된장을 넣지 않고 재료만 넣어 끓여줄 때도 있었다. 내가 재미 삼아 소중한 된장을 아끼셨다가 누구를 주려고 하냐니까 ‘호준이’에게 준다고 하여 당황스럽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집을 방문하는 사이가 된 어느 날 그녀가 두 남자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공교롭게도 가장 사랑하는 그 남자의 이름과 내 이름이 같았기에 첫눈에 호감이 갔다는 그녀의 말. 그러면서도 그녀는 나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준 적이 별로 없었다. 사랑했던 남자는 그녀가 끓인 된장찌개를 제일 좋아했고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가서 손가락으로 꾹 누른 것 같았다면서 내 볼을 만졌다. 10여 년 전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지냈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나랑 연배가 비슷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 한 남자는 자수성가로 사업에 성공한 남자였는데 그녀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고 했다.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그 남자는 끊이지 않는 여자 문제로 골칫거리였다고 했다. 여자들을 하도 많이 만나서 몇 번이고 헤어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집도 사주고 선물을 사주며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난 당신이 참 좋아. 절대 떠나지 마?”
그녀가 몸을 살포시 내게 기댔다. 감기를 심하게 앓고 나더니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허약해진 게 느껴졌다. 사실 나도 그녀도 처음 만난 다섯 달쯤 전보다는 나아진 게 없었다. 그동안 그녀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면 나는 여기저기 빚 독촉 전화를 받는 횟수가 더 잦아졌다. 한 번은 자주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질려서 반나절 이상을 꺼놓고 있다가 확인을 해보니 일곱 건의 부재중 전화 내역이 있었다. 그중에 그녀의 번호가 찍혀있어서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질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녀의 집으로 갔다. 거실에 쓰러져있는 그녀. 때로는 나보다도 더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를 끊임없이 돌아볼 수밖에 없는 때가 있었다. 건강이 걱정되어 병원에 함께 가기도 했다. 의사는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기를 권유를 했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가까이에서 돌보아 주라고 당부했다. 보호자가 아니었으므로 병명이나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걱정되었다.
춥다면서 부산을 떨며 들어오는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뽑은 번호표를 지나칠 뻔했다. 영순 씨를 의자에 앉혀두고 창구로 간 나는 통장과 신분증, 그리고 돈을 찾을 때 내는 서류를 함께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하도 만지작거려서 종이의 한쪽귀가 돌돌 말리고 찢어지려고 했다. 통장을 없애려는 거냐는 창구 여직원의 말에 돈만 찾는 거라고 하니 신분증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풍성한 점퍼 깃 속으로 고개를 넣었다. 저 쪽에 앉아 있는 분의 심부름이라고 영순 씨를 가리키자 본인 확인을 다시 하자고 한다.
영순 씨를 창구 여직원에게 안내하자, 직원이 통장 전액 인출을 할 거냐며 재차 확인한다. 감기에 걸렸냐며 친절하게 걱정하듯이 말하면서도 마스크를 벗어보라며 얼굴을 확인한다. 창구 여직원이 신분증과 비교한 뒤에 현금을 세는데 집중하자 오만 원짜리 현금으로 찾아달라고 영순 씨가 말을 덧붙였다.
“할머니, 이사 가세요? 웬 목돈을 찾아가세요?”
창구 여직원은 돈을 정리하여 두 번째로 기계에 넣으면서 영순 씨에게 말을 건다.
“아들한테 주려고.”
“아, 그래서 아드님 하고 오신 거구나!”
여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돈뭉치에 묶인 띠지를 찢어 기계에 넣는다. 지폐 계수기에서 촬촬 거리면서 돈 세는 소리가 들려온다. 백 미터 달리기를 마친 뒤에 나는 심장소리 같다. 삑 소리가 난 후 다시 돈을 기계에 넣는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가방에 현금을 넣었다. 두둑해진 가방을 보는 영순 씨가 미소를 짓는다.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상냥하게 인사하는 여직원에게 묵례로 답을 하고는 영순 씨와 함께 은행 문 앞에 섰다. 자동문이 활짝 열린다. 주차장으로 향해 가는데 영순 씨가 말을 건넨다.
“나 잘했지?”
나는 영순 씨의 말을 외면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고마워요.”
영순 씨가 그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차를 타고 나가며 주차증을 보니 11시 40분이라는 숫자가 찍혀있다. 30분 무료 주차인 주차장인 관계로 주차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차단기가 올라간다. 도로로 진입해 가다 보니 불과 얼마 전보다 더 막혔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의 차로 더 북적이는 듯했다. 은행 갈 때 공원이 보였던 것과는 달리 갈 때는 반대편 [에코] 카페가 보인다. 1층에 위치한 조그만 커피숍. 오히려 양 옆에 있는 큰 규모의 빵집과 안경원이 작은 커피숍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상가로 이루어진 건물에는 수없이 많은 간판들이 즐비한데, 옆 건물의 학원 간판이 압도적으로 크게 눈에 띈다. 새것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광고를 통해 본 로고에 학습된 노출효과가 컸다. 내 학원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볼 정도이다. 학원 안에서는 내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관리비가 벅찼기에 몸집이 크다고 여겨졌는데 밖에서 보니 차를 멈추지 않고서는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정체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비는 그쳤지만 축축한 습기가 올라오는 것 같아 히터를 튼다는 것이 라디오 전원을 눌렀다. 정오가 되었다는 신호음이 들려온다. 우중충한 날씨와 낙엽이야기를 하며 방송 시작 멘트를 하는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도 있었다. 영순 씨는 콧노래를 하며 차창 밖을 보고 있다. 덜렁거리는 돼지머리 스프링 인형이 눈에 거슬려서 떼어냈다. 차 밖으로 버렸다.
[에코] 카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늘 앉아있던 자리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내가 지난주에 사준 목도리를 하고 앉아있다. 한 컷의 사진처럼 정지된 것 같은 풍경이다. 다소 몽롱한 시선으로 창밖을 보는 그녀. 우아한 자태로 앉아있는 르네상스시대의 정물화 같다. 묵직하고 암울함이 묻어나는 그림의 제목은 ‘차 마시는 여인’. 그녀가 먹물 같은 커피를 들이켜면 화선지에 물감이 번지듯이 까맣게 벽속으로 스며들 것 같았다. 그녀 집에 있는 부챗살에 그려진 꽃그림처럼 바래고 번져서 사라질 것 같았다. 그녀가 손이 시린 듯 찻잔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다. 아마도 한 시간 전 시켜놓은 커피는 차갑게 식어있을 텐데 말이다. 사실 그녀가 커피 한 잔을 다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보면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핫팩에 싸간 캔 커피도 손에 쥐고만 있어 따주었는데도 입에 한 모금 대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낸다. 전화기를 꾹 누르는 게 보인다. 내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본인이 좋아하는 행운의 4번에 저장해 달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하나보다. 차 안에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전화 왔어요.”
영순 씨가 계속되는 전화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한다. 정체로 서 있는 도로 위. 돈 봉투를 건네주자 콧노래를 부르던 영순 씨가 순순히 차에서 내렸다.
나는 다시 카페를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한 불청객이 내 시야에 끼어든다. 몸집이 크고 백발이 무성한 사내가 허겁지겁 뛰어오는데 창가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그녀의 집, 거실에 있던 사진에서 보았던 그 사내였다. 그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얼마나 급하게 열어젖혔는지 달랑거리는 종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날카롭게 들린다. 백발의 사내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몸을 흔든다. 뒷전으로 다시 달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창밖으로 휴대전화를 던졌다. 사이드 미러로 부서지는 전화기가 보인다. 주유불이 들어온다. 매번 찔끔찔끔 감질나게 넣었던 휘발유. 이번엔 가득 넣으리라 마음먹고 주유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