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는 유령이다
설민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일정. 이 일은 내가 집 밖을 나가면서부터 시작된다. 10분까지 나가지 않으면 계약이 자동 해지된다. 잠시 망설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공기가 차가웠다. 몸을 움츠렸다.
P아파트 210동 7-8라인 앞에 리무진이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기사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내 신분증을 확인한 뒤, 자동차 뒷문을 열어주었다. 의자에 편안하게 앉는 동안 잠시 기다리다 차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가는 기사. 이상하리만큼 낯설지 않았다.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히터의 온기가 몸을 따라 흐르며 나를 보듬는다. 따뜻했다. 시트도 부드러웠다. 달콤하면서 은은한 차 안의 향기가 기분을 들뜨게 했다. 숨을 내쉬자 그제야 차 안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직 어둑한 새벽녘.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가면서 직진으로 도로를 달리는 동안,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지나는 곳을 그려볼 수 있었다. 수년간 다니던 동네이기에 어떤 건물이 인지, 무슨 가게 앞을 지나치는지. 눈을 떴다. 익숙한 풍경이 사라지자 살짝 긴장이 되었다.
한 시간쯤을 달려 차가 멈춰 선 곳은 오성급 호텔 [로라인]이었다. 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차에서 내리자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정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오늘 나를 도와줄 도우미라며 인사를 건넸다. 낯선 곳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친절한 대우였다. 로비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사진을 찍듯 눈을 껌벅거렸다. 이렇게 고급 호텔로 오는 거였으면 차림새를 조금 더 갖출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무런 예고도, 정보도 없이 몇 시에 나오라는 지령만 내려 준 대상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호텔 로비의 소파에 잠시 앉으라는 도우미. 어떤 음료를 준비할까를 묻기에 따뜻한 음료를 부탁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이번 행사의 관계자라며 10분 정도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다섯 장의 서류를 손에 들고서 내용을 짚어가며 설명을 하는 남자. 중저음의 목소리가 듣기 좋고 신뢰감을 주었지만 말의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음 소거 상태로 입 모양만 보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느꼈다. 낯선 환경과 상황이어서 그랬으리라 여겼다. 요점은, 호텔에 온 지금부터 이 일이 끝나기 전까지 모든 상황들에 동의를 하고 무조건 따른다는 것에 사인을 하라는 것이다. 더 이상 나의 선택은 없다. 나의 손을 떠난 것임을 확인하고 한 곳 한 곳 짚어가면서 사인을 하라고 했다. 펜을 쥐어주었다.
“다시 한번 행운의 주인공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가 사인을 마치자 정중하게 묵례를 한 뒤에 남자가 인사말을 건넸다. 나의 핸드폰은 잠시 보관하고 있겠다며 가지고 갔다. 서류에 사인을 하는 것은 나에게로 특별한 책임이 전가된다는 것. 또 하나의 짐이 늘어난다는 기분이었다. 오늘의 모든 과정을 오픈할 수 있다는 것에는 살짝 멈칫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그에 비하면 핸드폰 사용 개인 동의 같은 내용은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 선택한 이상 거부할 수 없는 행운이 정말 행복인 것인지는 끝내 의문스러웠다. 이제 나는 자포자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더 켜졌다.
제일 먼저 간 곳은 호텔 사우나였다. 들어가자마자 도우미가 나의 옷을 벗겼다. 공기는 훈훈했지만 맨살로 있기에는 살짝 한기가 돌았다. 양손으로 팔을 안으며 비볐다. 선뜻해서라기보다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나체로 서있는 자체가 부끄러워 서였다. 그것을 눈치챈 도우미가 커다란 수건으로 나의 몸을 감쌌다. 부드러웠다. 포근했다. 탕 쪽으로 안내한 도우미가 목욕 비누로 거품 낸 다음, 때수건으로 내 몸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했다. 도우미의 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거품이 뭉게뭉게 구름처럼 생겨났다. 팔다리를 닦고 난 후 손길이 겨드랑이와 가슴, 몸통 쪽으로 다가올수록 긴장이 되었다. 흰색으로 보디페인팅을 한 것 마냥 온몸이 하얀색이 되자 샤워기를 틀어 몸에 갖다 댔다. 따뜻한 물이 몸을 따라 흐르는데도 소름이 돋았다. 거품이 물줄기를 만들며 하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쭈르륵 소리를 내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난 뒤에야 나는 열탕에 몸을 담갔다. 긴장이 풀렸다. 몸이 물속에서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몸이 눅신 눅신해진 엿가락이 되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았다. 마사지 침대를 준비한 도우미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머뭇거리며 움찔거리는 나와는 달리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로 뉘이고는 마사지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남편과도 관계가 없었던 터라 타인이 나의 맨몸을 만지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두피부터 얼굴, 뭉친 어깨와 등, 팔과 손, 허벅지와 다리, 발가락과 발바닥까지. 특히 엎드려서 등과 어깨 마사지를 받을 때는 아프면서도 몸이 개운해졌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게 쑥스러워 때밀이도 남에게 부탁해 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오일을 듬뿍 발라가며 몸을 만지는 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금세 익숙해졌다. 매끄러웠다. 평안함이 느껴졌다. 평소 열기 가득한 목욕탕은 별로였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른 새벽, 호텔 사우나에는 두 사람뿐이었기에 쾌적했다. 누워서 편안하게 목욕하기는 처음이었다. 목욕가운을 걸치고 나와 옷을 입으려 하자 도우미가 로션과 오일로 다시 한번 마사지를 하며 마무리했다. 헤어 에센스를 발라주며 드라이기로 머리카락과 거웃까지 말려주는 서비스에 놀랐다.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브라와 팬티세트가 왕골 바구니 안에 들어 있었다. 면 팬티를 주로 사용해 온 내가 입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다른 것은 없는지 물었으나 살짝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도우미. 내가 집을 나온 이상 이 일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기로 한 것처럼 그녀도 말을 하지 않기로 계약을 한 듯했다. 가운을 입혀 미용실로 안내한 도우미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갔다.
따뜻한 헤어 드라이 바람이 귓가에 닿자 몸이 갑자기 더 노곤해졌다. 눈이 감겼다. 잠들기 딱 좋은 온기와 소리. 깜빡 졸음에 고개가 숙여지면서 머리카락이 뜯기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눈꺼풀은 떠지지 않았지만 아, 하는 외마디 소리가 입에서 삐져나왔다. 드라이를 하고 세팅장치를 한 다음에는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얼굴 윤곽을 살려 베이스를 깔고 더욱 투명한 피부표현을 위해 퍼프로 두드린다. 사실 얼굴을 두들겨 맞는 것 같은 모양새인데도 기분은 나쁘지 않다. 스르르 감기는 눈도 메이크업에 도움을 주는 것 인양 커버되었다. 일정한 리듬 덕분에 솔솔 잠이 더 잘 왔다. 문제는 눈을 떠야 하는 아이메이크업. 라이너를 그리고 눈꺼풀에 색조를 얹으며 눈을 위로하세요, 아래로 내리세요, 주문이 많아서 귀찮을 정도였지만 눈썹까지 붙이고 마스카라를 한 것 치고는 꽤나 자연스러운 눈매가 연출되었다. 메이크업은 또 다른 성형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찰나 매혹적인 붉은 립 칼라가 더해지고 나니 만족스러웠다. 헤어를 다시 정리하고 드레스실로 자리를 옮겼다. 드레스를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나 다양한 드레스들 중에서 나의 체형과 취향에 맞게 옷을 선별해 주는 증강현실 서비스 덕분에 입었다 벗었다 하지도 않고 짧은 시간 안에 두 벌을 골랐다. 내 전신사진을 찍은 후 드레스 룸에 있는 수많은 옷들 중에 어울리는 것들을 찾아내는 데는 3분도 안 걸렸다. 넥 홀더 드레스와 어깨가 드러나는 것으로. 그렇게 몇 가지를 선정해 주면 최종 선택은 내가 클릭만 하면 되었다. 너무 편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12월 31일 저녁.
아이들이 어릴 때처럼 음식을 장만하고 케이크를 만들어 놓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심 가족들이 다 함께 저녁식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둘째 아이가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사실 가족들이 평일이건 주말이건 간에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이 없었다.
명절 전날에도 골프를 치러 나가는 남편은 이날도 망년회가 있다고 하고, 큰 아이는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일찌감치 외출한 상태였다. 작은 아이와 나만 집에 남아 있었다. 둘이서 저녁 먹자며 밥을 하고 반찬거리를 준비하는데 작은 아이가 샤워를 하며 느닷없이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어디 가려고?”
“친구들이랑 저녁 먹고 놀다가 시청 앞에서 제야의 종소리 듣고 올 거야.”
“밥 거의 다 됐는데. 집에서 먹고 나가면 안 될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내심 서운해졌다.
“친구 누구? 저녁은 어디서 먹어?”
그나마 문자를 하면 한 글자라도 답해주고 핸드폰의 이모티콘을 선물로 보내는 사람은 이 집에서 작은 아이뿐인데, 어느새 무뚝뚝한 아빠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화가 나서 다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대꾸 좀 하면 안 돼?”
대답이 없었다.
“엄마가 물어보는 게 싫어?”
묵묵부답이었다.
“아니, 엄마가 그렇게도 싫어?”
나의 말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결국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 집 남자들은 내가 사람으로 안 보이나 봐.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모여서 밥 좀 먹자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밥 같이 먹는 게 식구 아냐?”
“아, 쫌. 엄마가 그러는 게 짜증 나. 그냥 무심하라고.”
나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작은 아이가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동시에 취사가 다 되었다는 밥통의 상냥한 안내 소리가 들렸고, 조개를 넣어 끓인 순두부찌개가 후루룩 넘치며 가스불이 꺼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작은 아이가 미안해서 전화를 했나 싶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연락이었다.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식사하자는 제안을 한 것은 나였다. 토요일 점심이라고 정해 보았지만 꼭 한 두 사람이 빠지는 자리가 생겼다. 이날 아침에도 나는 말을 꺼내기는 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니 일찍 들어와서 집에서 밥을 같이 먹자고. 내 목소리가 작은 건지 그들의 귀가 막힌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매번 차리던 밥상을 안 차리면 일찍 들어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그 심보와 장단을 맞출 수가 없어서 우리 집 저녁 시간은 7시부터 8시라고, 시간이 지나면 각자 해결하기로 하자고 해도 그 약속에 무너지는 건 그들이 아니라 언제나 나였다. 일관성을 가지자고 하면서도 가장 뒤죽박죽이던 사람이 나라는 것을 예전에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20년의 시간 동안 내가 제일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조하지 않는 이들과 맞서 싸우지 말고 나만 포기하면 되었다. 그게 서로 속 편한 거였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았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허상을 쫒다가 현실을 알게 된 느낌은 씁쓸했다. 더 이상 나를 보지 않고 내 말을 듣지 않는 현실에서 나는 눈과 귀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아니 그러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제 사람이 아니다. 유령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차라니 더 자유로워졌다. 상대가 어떤 행동과 말을 하던지 나는 홀연히 사라질 수 있었고 나의 말을,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알바를 찾아본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서로 돕고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도덕적인 개념에 얽매이고 연연하지 않고 각자가 다 편안하려면 내가 집을 비우는 일밖에는 없었다. 평일보다 휴일에 일을 자원한 이유도 그러했다. 특히 주말이면 아무런 말도 없이 한 집에 있으면서 각자의 방에서 뒹굴 거리다가 밥때만 되면 식탁에 모여들거나, 밥을 거의 다 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상의 없이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라면을 끓여달라는 예의 없는 태도들을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게 더 싫었다.
첫 알바는 예상보다 빨리 시작되었다. 예식장의 연회장에서 빈 접시를 치우고 음식을 채우고, 일손이 바쁘면 설거지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해내니 몸이 고단했지만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내가 나가서 무엇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어느 날, 그날도 홀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며 일을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하객이 어느 정도 식사를 하고 빠진 다음에야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전에 없이 남편이 여러 통의 전화를 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서 뭐 하느냐는 신경질적인 남편의 목소리.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남편의 체면을 깎고 다닌다며 당장 그만두고 들어오란다. 왜 용돈도 주는데 그러고 다니느냐고. 내가 남편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체면보다는, 힘들게 왜 그런 일을 하느냐는 게 첫 질문이었을 거다. 자면서 끙끙 앓는 이유가, 어깨와 허리가 아픈 이유가 알바 때문이었는지부터 물었을 거였다. 입장 차이였다. 애들 교육비며 생활비며 심지어 장도 봐주는데, 누가 허드렛일 하라고 했느냐고 타박할 것이 분명했다.
하객 중에 내 얼굴을 알아본 직원이 있었나 보았다. 몰래 사진까지 찍어가며 부인이 맞는지 확인까지 시키는 친절함까지 겸비한 착실한 부하직원. 남편이 장을 봐주고 공과금을 내주는 것은 고맙지만, 나에게 여분으로 허용된 돈은 그의 계산에는 없었다. 과 외로 쓸 곳이 필요했지만 그런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불편했다. 비굴함마저 느껴졌다. 이유를 묻지 않고 단칼에 말을 자르는 그의 말버릇과 태도 때문이었다.
서로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섣불리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건 맨살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다. 알바를 시작한 이후로 집안일을 더 소홀하게 하게 되었다. 지금은 집안일이 허드렛일이 되어버렸다. 주말에 자신은 여행이다, 골프 치느라 외출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고 내가 없는 것은 불편한 상황, 그래도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강한 남편은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못마땅했었을 터였다. 나는 애들도 성인이 되었기에 각자 알아서 차려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도 특별한 취미는 없었던 집안일이기에 본인의 방은 스스로 치우고, 잘하는 사람이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문제는 지금도 이런 푸념과 질문과 대답이 나 혼자만의 일이라는 거였다. 학창 시절 무서운 선생님 앞에서 주눅 들던 그때처럼 남편이 어려운 게 문제였다.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문이 막혔다. 남편의 말은 송곳 같았다. 사실 알고 보면 논리 정연하지 않는데도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남편 앞에서는 더 감정적으로 말이 나왔다. 나의 방어기전은 그렇게 작동했다. 생각과 말하기의 구조부터가 달랐다. 좋다와 싫다 사이에 수없이 놓여있는 감정의 징검다리가 없는 게 남편이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상처받는 건 나였다. 나는 불편한 분위기나 말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상대의 어려움을 인지하지 못하는 비공감과 말하지 못하고 참기만 한 일들이 쌓여 만든 담. 그렇게 쌓인 담이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더 나아가 내 머리를 훌쩍 넘고 있었다.
남편에 대한 쉬운 체념은 결혼 20년 동안에 생긴 나의 성격이 되어 버린 듯했다. 말을 해보라고, 계속 두드리라고 속 모르는 제일 친한 친구는 내가 답답하다며 이야기했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그녀도 깨달았다. 사람은 변하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게 성격이라고. 자신만 너무 챙기는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신혼 초에는 술에 취해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샤워하고 양치하고 자는 모습, 때마다 피부과에 가서 점도 빼고 관리도 받는 모습, 두피 관리를 받고, 브랜드 옷만 사 입는 모습이 자리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좋아 보였다.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벌어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 때부터 남편의 머릿속에는 내가 가족이 아니었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어야 했다. 나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내 것은 내가 챙겼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나를 위하고 알아주는 사람이라면 기대하기도 전에 알아서 잘해주겠지만 받기만 하고 끝인 사람도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일회용 종이컵처럼 스쳐 지나갔어야 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자체가 무리였다.
혼자서 누구의 도움 없이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살아오는 동안 해보지 못한 뜻밖의 일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어느 누구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던 아이 낳는 일은 말로는 숭고한 일이라지만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할 때, 평일도 모자라 주말에도 운동하러 헬스장을 가는 남편. 애들 좀 봐달라고 하면 더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데려다 놓았다.
아이들이 아파서 응급실을 가야 할 때나, 차가 꼭 필요할 때, 장을 봐야 할 때, 아이들 데리고 종종 여행을 갈 때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마음 씀씀이가 행동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지. 지극히 일방적이고 딱 거기까지 나는 할 일을 다 했다는 태도가 늘 내 눈에는 거슬렸다. 내 돈으로 사는 주제라는 말투는 묵직한 돌을 눌러놓은 동치미 무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초중고생이 될 때까지는 그렇게 무덤덤하게 퉁명스럽게 남의 자식처럼 대하던 남편. 그런 이가 아이들이 성인이 되자 태도가 점점 바뀌었다.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수컷 사자처럼 압도적이었다. 나만 빼놓고 여행을 가거나 저녁을 먹으러 가는 일이 빈번해졌다. 아이들이 원하는 물건을 사주고 용돈을 주는 것은 다 남편의 몫이었다. 애들한테 그런대로 잘해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제일 잘 못하는 건 엄마의 존재에 대한 무시였다. 나는 그런 태도에 더욱 움츠려 들었고 그래서 유령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 집에서 사라지기로.
알바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토요일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십 분이라도 잠시 눈을 붙이려고 누워있는데 초인종이 울려 화들짝 놀랐다. 잠시 잠들어 있는 사이에 남편과 아이들이 들어온 것도 몰랐었다. 잠은 깼지만 너무 피곤하여 눈을 뜨고 일어나 앉을 수가 없었다. 현관문에 달린 종소리가 딸그랑거리며 다시 문이 닫혔다. 띠리릭, 하며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작은 아이가 방 안으로 들고 들어 온 것이 무엇인지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큰 쟁반과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오라는 남편의 말소리가 들렸다. 침대 한쪽에 누워있는 나는 아랑곳없이 세 남자는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안방에만 텔레비전이 있기에 모여든 상황이었다. 선잠을 자면서도 선뜻 일어나기도 어색했다. 키득거리면서 치킨을 먹는 사람들. 슬슬 화장실을 가고 싶은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참다가 일어나 앉은 내가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침대로 올 때까지 누구 하나 말을 걸거나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또 어느 날에는 밤 열한 시가 다 되어 가는데 세 남자가 겉옷을 걸쳐 입고 외출을 했다.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이 밤중에 어디를 가는 거야?라고 물으니 큰 아들이 이야기를 한다. 극장. 셋이서 심야영화를 보러 가면 나는 혼자 텔레비전에서 하는 주말영화를 보곤 했었다. 심야에 싸우고, 부수고, 폭파하고, 지구를 지키는 따위의 영화는 나의 취향은 아니라고, 스스로 하는 위안은 패배자가 된 악당이 되는 심정이었다.
언젠가는 퇴근하자마자 캐리어에 짐을 싸는 남편. 남편의 여행은 언제나 나에게 예고가 없었다. 그것이 하루든, 이틀이든, 보름이든 간에. 어차피 짐으로 싸면 옷이 구겨질 것을, 남편은 정성껏 다림질을 한다. 한 겹 한 겹 켜켜이 쌓고 가지런히 챙기는 옷가지들. 네 귀퉁이를 맞춰 넣는 모습에 숨이 막히는 심정이 들었다. 어디 가는 거냐는 물음에 대꾸도 없이 짐을 꾸리고 캐리어를 잠근다. 얼마나 있다 오냐는 것에 대한 대답은 새벽에 나갈 때 들었다. 유럽에 간다고. 유럽이 20~30분 걸리는 정도의 거리도 아닌데 마치 동네 마트에 다녀오는 것처럼 말하고 나가는 남편. 나에게는 연락한 번 없지만 소셜 네트워크에는 이국적인 도시나 산과 강의 사진을 두서없이 올리더니 몇 번의 여행 끝에 아이디어가 생겼는지 런던, 파리,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칭다오, 오사카, 후쿠오카 등 도시 이름을 먼저 올리고 그다음에 사진을 올리는 친절함까지 보였다. 어디에서 어떤 음식을 먹고, 무슨 건물을 보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누구와 갔는지는 결코 알 수 없는 사진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사 오는 그 지역의 특산물이 놓여있는 장식장은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었다. 그 위에 놓인 인형보다 못한 나는 유령이다.
핸드폰의 저장 공간도 3년 이상을 쓰니 계속 지우라고 메시지가 뜬다. 20년 동안 나의 저장 공간은 늘릴 대로 늘려서 이제는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가려도 들리고 입을 막아도 막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참으려면 참을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그럴 가치를 못 느낀다는 것이 더 큰 나의 죄책감이지만, 홀가분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표도 안 나게 집안일을 하냐는 남편의 말과는 달리, 어제까지도 나는 아르바이트와 집안일에 엄청 시달리며 개다만 빨래더미 위에서 곯아떨어졌다. 요가매트 위에서 이불도 덮지 않고 깜빡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새벽. 나갈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마지막 정리라도 아니, 인사라도 하고 나올 것을 그랬나 하는 회한이 잠시 들긴 했지만, 잠든 아이들 얼굴만 물끄러미 보고 나왔다. 남편의 존재는 코 고는 소리로만 확인했다. 말하고 얼굴 볼 시간마저도 없었다는 게 핑계일까 사실일까. 내가 남편의 지갑 위에, 큰 아이의 컴퓨터 키보드 옆에, 작은 아이의 책상 위에 올려놓은 새해 인사카드에 그들이 한 마디의 대꾸라도 했었더라면 어쩌면, 전과 같이 똑같은 일상을 묵묵히 살아갈 수도 있었다. 예전처럼. 또 과거를 망각하고 1년, 아니 하루를 버틸 힘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었다. 내 삶의 이유가 그들이라며, 자기 최면을 걸 수도 있었을 거다. 참지 말고 계속 투덜대고 아프다고 하고 가끔 쓰러지는 쇼를 하며 살 걸 그랬다. 자신을 억누르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배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가족일지라도.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이 결국에는 내 잘못인 것 마냥 호구가 되어버린 지금, 꼭 그러고 싶은 의지가 강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무엇엔가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저 이젠 됐다는 심정으로. 새벽에 집밖으로 나왔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이란 어이없게도 순간의 감정에 의해서도 정해진다. 비장한 각오 따위는 없었다.
2019년 1월 1일 11시. 오늘이 나의 결혼식.
나에게 연락이 왔다는 게 놀라웠을 뿐이다. 유튜브 채널을 구경하면서 “랜선 남편”을 보게 되었다. 같이 사는 진짜 남편과는 할 수 없는, 이해와 공감, 그리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크리에이티브. 가족보다 더 친밀하게 나를 잘 알아주는 채널이기에 보게 되었다. 하루의 일과를 랜선 남편과 마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소통도 즐거웠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곳에서 하는 이벤트에 응모해 보았던 게 당첨이 된 것이다. 호기심으로, 내가 되겠냐는 생각으로 신청을 했었다.
생애전환주기처럼 결혼 20주기가 되면 얻어지는 국가 복지 혜택. 구독자 수가 많아지자 국가에서 정책 삼아 그 유튜버와 함께 시작한 일이었다. 뜻밖의 이벤트에 내가 당첨이 될 줄은 몰랐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추첨 선물은 10킬로그램의 쌀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가장 큰 국가 혜택 중의 하나라고 떠들어대지만 문제는 있었다. 당첨됨과 동시에 24시간도 아닌 12시간 내에 결정을 하고, 내가 정한 사람과 장소가 아닌 곳에서 결혼식을 해야 한다는 것. 남편이 될 사람의 얼굴도 모른 채.
어제저녁 6시, 저녁준비를 하면서 당첨 연락을 받았다. 작은 아이가 외출한 직후에. 이 시간 이후로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고 결심이 서면 새벽 6시에 집 앞으로 나오라는 지령. 이혼율이 높아지자 국가에서 내놓은 방안이었다. 해마다 세 명의 사람들에게 다른 인물과 살아보라는 공식적인 인정식인 셈이었다. 이 정책이 2년째 접어들고 있기에 간혹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처럼 이 이벤트에서 만난 커플들의 새로운 삶이라든가 행복도는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한 내용이 방송될 때가 있었다. 작년에 결혼한 그들이 잘 살고 있는지 어떤지 후문은 모르지만 세간의 부러움을 사는 일임에는 분명했다.
“랜선 남편”을 방송하는 크리에이티브가 개인 방송으로 보여주기도 한 것을 본 적은 있지만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두 번의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으므로. 더구나 상대를 잘 알기도 전에 한 번 한 결혼으로 내내 힘들어 한 나이므로. 최고급 호텔에서 결혼하는 비용과 룸 사용, 4박 5일의 동남아 신혼여행, 아담한 집과 신접살림까지 마련해 주지만 바로 다음부터의 생활은 각자의 몫이었기에 문득 새로 만나 사는 게 행복할까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결혼은 생활임을 몸으로 터득한 내가 아니었던가. 내가 만나게 될 새 남편은 성격이 어떨지, 어떤 일을 하고 수입은 어느 정도 될까도 걱정이었다. 지금 알바를 하는 나의 수입으로는 새 가정을 꾸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되면 기존의 생활과 모아둔 자금은 완전히 포기하고 둘 다 몸만 빠져나와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이 정책의 맹점이기는 했지만 또 다른 인생을 살아 본다는 그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아직까지는 계속 진행하자는데 지지율이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소문에는 소득과 생활수준, 성격 등을 데이터로 뽑아서 적합한 사람끼리 결혼시킨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빅 데이터보다 더 큰 변수가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그런 일이 나의 일이 되었다는 게 실감은 안 갔다.
그보다 지금은 누가 내 남편이 될까 보다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살 좀 미리 뺄 거라든지, 드레스가 잘 어울릴까 하는 내 눈앞에 닥친 현실이 걱정이었다. 또 방송에는 안 나갈 수도 있지만 국가 정책의 일환이므로 나의 결혼식 장면이 카메라에 찍히며 보관되는 것과 나의 일거수일투족, 표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게 더욱 문제였다. 마흔이 넘은 어느 때인가부터 사진이나 영상에 찍힌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이제는 흐트러진 몸매와 처진 얼굴을 인정하며 세월의 훈장처럼 여기던 시대가 아닌 자기 관리와 성형으로 나이를 거스르는 시대이니 말이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방 벽면이 스크린이고 카메라인 세상이었다. 신기하면서도 두려웠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신부대기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신랑 입장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시작이다. 한 번의 예방접종을 했던 탓인지 떨리지 않고 덤덤했다. 나처럼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아침부터 단장을 하고 나왔을 예비 남편이 주례자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연상하는 여유까지 있었다.
부케를 손에 쥐어 준 도우미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순간 뜻하지 않게 전율이 흐르며 긴장감이 돌았다. 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이내 가라앉았다. 화려한 예식홀 안에 사람이라고는 나와 드레스를 잡아주는 도우미, 그리고 나의 남편이 될 사람뿐일 터였다. 새신랑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홀로그램으로 서있는 주례자와 사회자를 보는 순간 남편도 홀로그램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갑자기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되듯 주변이 환해졌다. 마치 콘서트장이 연상되는 것처럼 하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주례사 앞에 서있는 새신랑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뿌연 안갯속에 서있는 것처럼 흐릿했다. 미간을 찌푸려 보려고 해도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 얼굴 같지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설마 인공지능과 결혼하는 건가? 어쩌면 가상 세계에서만 하는 결혼생활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혼자서 걸어 들어갈 생각으로 서있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을 하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친구들, 친척들이 다가와 나에게 말까지 걸었다. 축하한다고. 반가워서 손을 내미니 허공이었다. 박물관에서나 보았던 가상현실 체험 같았다. 실제라고 착각할 만큼 디테일이 좋았다. 그림자인데 움직이고 색감이 있고 진짜 사람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나와는 상관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내가 핸드폰에 올린 소셜 네트워크 속의 사진 속 장면이었다. 웃기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최근에 만나는 이들은 물론, 나도 잊고 있었던 아주 오래전에 만났다가 헤어졌던 사람들이 모두 소환된 나의 결혼식 하객들. 주변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는데 신부입장을 독촉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순간 가슴이 쿵쾅 거렸다. 입장하면 인생이 달라지는 거였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 다시 결혼하는 거면 후덕하고 다정한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아이들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사회자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낯익었다. 한 발짝을 떼어 걸어가는데 내 팔에 그림자가 새겨졌다. 옆을 보니 아버지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아빠. 그때 얼굴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나의 첫 번째 결혼식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아빠. 그런 나의 아빠와 웨딩마치에 맞춰 입장이 시작되었다.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지막하게 불러도 대답이 없는 아빠는 무한 반복을 걸어놓은 동영상 마냥 앞만 보고 걸어갔다. 천천히 연단 쪽으로 걸어가는데 사회자가 하객들에게 다시 한번 축하 박수를 유도했다. 잠시 아빠에 대한 감상에서 벗어나자 사회자를 볼 여유가 생겼다. 깜짝 놀랐다. 내가 잠시나마 좋아해서 핸드폰에 사진을 저장해 놓았던 남자배우가 나의 결혼식 사회를 보다니. 차라리 이럴 거면 사회자가 아니라 내 남편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고 엄숙한 순간에도 이리저리 날뛰는 생각은 붙잡아 둘 수가 없었다.
핸드폰 갤러리에 모아놓은 좋아하는 사진이나 풍경들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이렇게 사용하려고 핸드폰을 가지고 갔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속내를 들켜버린 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진은 그 한 장 만으로 그때의 감정과 생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만을 위한 결혼식이라 그런 건지 새신랑 측의 하객들과 부모들은 보이지 않았다. 신랑마저 들러리처럼 느껴졌다. 아빠가 소환되었다면 엄마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두리번거렸다.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곱게 차려 한복. 꿈에라도 보고 싶었는데 자주 나타나지 않던 엄마. 당장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 보고 싶었어. 한 발짝 한 발짝 연단 앞으로 나아가면서 독백처럼 중얼거림만 반복할 뿐이었다.
사실 신랑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 시간이 결혼식이 아니라 나의 독립기념 파티면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과거의 사람들, 못 만났던 시간 속의 사연들이 사진과 함께 태그처럼 벽면에 새겨졌다. 그게 더 재미있고 좋았다.
드디어 열 걸음쯤 앞에 서있는 사람이 보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 사람이 아닌 줄 알았던 이유를 알았다.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르고 키가 제법 큰 체형이었다. 낯익은 모습.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려웠다. 그가 성큼성큼 내 앞으로 걸어왔다. 내 팔짱을 끼었다. 소름이 돋았다. 익숙한 향기가 풍겼다. 같은 향수를 쓰는 가보라고 애써 생각했다. 싸한 느낌이 들었다. 체온이 내려가며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낯선 새신랑보다 더 놀라운 것은 주례였다. 주례자는 현직 대통령. 마치 텔레비전 연설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례사를 했다.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를 몇 분인가 듣고 나자 맞절 차례가 왔다. 신랑신부를 마주 세워놓고는 사회자가 새신랑에게 가면을 벗으라고 했다. 가면을 턱 쪽에서부터 들어 올렸다.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믿기지 않았다. 손끝에 전율이 흘렀다. 너무 놀라 부케를 떨어뜨렸다. 텔레비전 정규방송이 끝날 때처럼, 날파리떼 같은 검은 점들이 와글대는 화면이 보이는 듯했다. 내 눈앞이 흐려졌다. 귀에 거슬리는 백색소음이 들렸다. 귀가 먹먹해지면서 지지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