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설민
L호텔에서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신제품과 마케팅 업그레이드를 위한 세미나를 마치고, 만찬 시간에 앞서 오페라 갈라 쇼의 시작을 알렸다. 전국 지점에서 모인 낯선 사람들과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지루한 일보다 무대 위의 배우들을 보는 게 더욱 편안한 지은이였다.
무대는 지은이 어릴 적부터 꿈꿔 온 공간이다. 연기를 하고 싶었다. 공연을 보는 순간 뇌리에 몇몇 장면들이 사진첩을 들추듯 스르륵 스쳐 지나갔다. 무대 위에서 연극 연습을 하고, 옥상에서 발성 연습을 하고, 연출을 도우며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때,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다가 경비아저씨에게 쫓기며 달렸던 때를 떠올리니 숨이 가빠왔다. 무대 위에 둘러앉아 술 마시던 생각, 그 끝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한 장면. 그것은 각인이었다. 머릿속에 박힌 파편처럼 두통과 함께 찾아오는......
옆에 앉은 성수가 가끔씩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공연을 즐기고 있다. 신입사원인 성수와 함께 온 자체가 불편했다. 두어 번의 식사와 차를, 그것도 다른 직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의 일로 지은과 각별한 사이라고 그가 치기를 부렸다. 지난달 야유회에 갈 때도 굳이 지은에게 옆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고 했다. 거절하며 지나가는데 손목을 잡아끄는 바람에 무안했던 적도 있었다.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자려는데 수다스럽게 이것저것을 묻는 바람에 한숨도 못 잤다. 그때는 일에 대한 열정이 많은 탓이라 여겼다. 그 후로도 젊음이 자신감인 건지 유독 지은에게만 치대는 건지, 최근 눈에 거슬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굳이 혼자 가겠다는 것을 우겨서 같이 온 그의 의도가 싫었다.
공연이 끝나자 메인 음식이 서빙되었다. 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형식적으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식탁 위의 음식을 먹었다.
“스테이크가 맛나네요. 마주왕하고 잘 어울려요.”
마.주.왕. 낯설면서도 친근한 이름이었다. 그와 처음 마셨던 와인. 갓 스물인 지은에게 ‘남자는 다리가 왜 세 개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와인을 마시고 나온 날. 그해 첫눈, 그리고...... 임신. 섣부르게 내린 동거 결정......
곧 2부 무대 공연이 시작되었다. 가요와 팝송 위주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원곡처럼 거칠고 애절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미성으로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자 소름이 돋았다. 그의 가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생각과 목소리, 급기야는 밤중에 끌려가다시피 다다른 그의 집. 좁은 골목을 지나 밤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하얀 깃발이 달린 녹슨 철문의 삐거덕거리는 소리.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향냄새......지환이 지은을 탐할 때 옆방에서 웅얼거리던 기도소리.....잠시 꿈꾸듯 정신이 몽롱해졌다.
굿당에는 두 개의 촛불만이 방 안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방석 위에 혼자 무릎을 꿇고 앉은 지은. 두려웠다. 저절로 이빨이 부딪혀 따다닥 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서웠다. 탱화가 그림자 져서 더 험악해 보였다. 부리부리한 두 눈, 얼굴의 반을 덮고 있는 긴 수염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의 뒷모습 같았다.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목덜미를 움켜쥐며 위협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탁자 옆에 놓여있던 검정 고무신이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지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소름이 돋았다. 지은이 엉덩이를 뒤로 빼며 다시금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붓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지은의 왼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바닥에 붉은색으로 글자를 썼다. 한자였다. 쓰자마자 흘러내려 바로 핏물처럼 번졌다.
“알아볼 수가 없어요.”
두려움에 떨며 지은이가 말을 꺼냈다. 그러자 단상에 놓여있던 누런 종이봉투가 공중에 떠서 순식간에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허공에 종이가 펼쳐졌다. 이렇게 쓰여 있다.
“너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마. 경계해.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나에게 먹을 것도 좀 바치고.”
지환과 알게 된 이후부터 선잠 잘 때면 종종 앞뒤를 알 수 없는 이런 꿈을 꾸던 지은이었다.
행사장인 L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 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놀이동산의 대관람차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제발 내 소원이야.”
한참 뜸을 들이던 지환이 말을 꺼냈다.
“야간 개장하는 놀이동산에 가자.”
이명처럼, 오래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생각하려고 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던 게 대관람차를 보니 저절로 떠올랐다. 몸으로 기억한다는 말이 실감될 정도였다.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는 무대. 중앙도 아닌, 조명도 없는 구석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를, 기타에 매달리듯 부둥켜안고 읊조리며 노래를 부르던 그를, 서른이 넘은 나이에 놀이동산 가보는 게 소원이라는 그를, 지은은 이상하리만치 뿌리칠 수 없었다.
술 마시고 싸움질하다가 부러졌다는 씌운 앞 이빨이 웃을 때마다 더욱 도드라졌다. 이래 봐도 싸움에는 지지 않는다는 그였다. 자신이‘이길 때까지 독기를 갖고 싸운다나?’그러면 나중에는 상대가 질려서 나가떨어진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가 유독 눈을 가늘게 뜨는 이유가 자기 방어적인 본능 때문일지도 몰랐다. 선한 듯 보이면서도 날카롭고 야비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실눈처럼 뜬 눈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어쩌면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시인 눈동자를 가리기 위한 것일 수도. 의식하지 않으면 덜하지만 무언가에 집중하면 눈동자가 더 쏠리는 경향이 있었다. 대화를 나눌 때 지환이 상대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중력도 다소 떨어졌다. 혼자서 멍하니 딴생각을 해서 연출이 주의를 주곤 했었다. 연출이 하는 말에 주의 집중해서 대본을 고치고 배우들의 의상이나 움직임 등을 체크해야 하는 게 조연출인 그의 일인데도 자주 깜빡했다. 그럴 때마다 연출의 말과 의도, 그리고 사사롭게 흘려 말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메모를 해놓은 지은이 미리 귀띔을 해주거나 연출을 환기시켜 주는 일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런 관계로 연출이 지은을 배우가 아닌 조연출로 더 신임을 했다. 지은이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면 ‘너는 그보다 연출 쪽이 더 맞다’고 못 박듯 이야기를 했다.
그런 그가 연극계에서 크게 인정을 받는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지환의 도움이 조금이라도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서울로 연극 보러 가자는 제안을 냉정하게 뿌리치기 어려웠다. 지환이 아는 연출가 형님이 하는 공연이 있다면서 말을 했다.
갑작스러운 경로 변경으로 온, 놀이동산에서 지은은 마음껏 즐길 수가 없었다. 어쩌면 연극을 본다는 것은 애당초 계획에도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으려는 그를 피해 얼굴을 돌렸다.
“선배 왜 사진을 찍고 그래요?”
“지은이 네가 너무 예뻐서.”
싫은 내색을 하면 할수록 그가 지은에게 더 매달린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떨쳐낼 방법을 몰랐다. 지은의 기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들뜬 지환이 시간이 지날수록 노골적으로 더 손을 잡으려 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다가왔다.
“이제 그만해요. 집에 가야겠어요.”
순간 지환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눈매가 싸늘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같이 놀아주면 안 돼?”
“저는 이런 상황이 불편해요.”
가늘게 뜬 눈으로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체념하듯 그가 말했다.
“그래. 미안하다.”
그가 잠시 말을 못 잊고 뜸을 들였다.
“마지막으로 대관람차만 타고 가자.”
관람차는 바로 탈 수 있었다. 지환 앞에 서 있는 연인이 서로의 허리를 한 팔로 감싸 안고 연신 시시덕거렸다. 지환이 그들을 의식하며 지은의 어깨를 감쌌다. 그의 어깨가 나란히 닿았다. 지은이 그가 잡은 어깨를 뿌리쳤다. 한 뼘 더 다가올수록 지은이 그보다 더 멀찌감치 물러섰다.
흔들거리는 열차 안으로 들어갈 때도 먼저 탄 지환이 손을 잡아주려고 내밀었지만 무시하고 올라탔다. 천천히 도는 대관람차.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재빠르게 한 바퀴 돌고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와 좁은 공간에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마치 일시정지를 누른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멈춰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지환이 말을 걸었다.
“지은아, 밖을 봐. 너무 아름답지? 너 때문에 오늘이 더 행복한 것 같아.”
지환의 작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
목이 메는 듯 잠시 숨을 고르더니 지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기분 처음이야.”
조금 전의 침울하고 어색하고 냉랭한 분위기를 만회하려는 듯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가 말을 꺼냈다. 한껏 고조된 지환의 가는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의 태도는 아주 과장되거나 조용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간극의 차이를 처음에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탈을 쓴 것 같은 그의 얼굴이 공포로 다가왔다.
“선배님, 저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지환과는 달리 지은은 두려움을 느꼈다.
“연극 보고 연출자 소개해준다고 서울에 온 거 아니었어요? 나를 속이면서까지 이깟 놀이동산에 오고 싶었어요?”
뒷걸음질 치며 지은이 끝내 참았던 말을 내뱉었다. 두 세걸 음이라도 더 뒤로 가고 싶었지만 한 걸음 만에 의자 모서리에 종아리가 닿고 말았다.
“너도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지환의 억양이 고조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개 무시해도 너는 아니었잖아. 도와주고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줬잖아.”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따지듯 묻는 그를 피해 외면했다.
“그건......”
지은이 고개를 숙이며 울고 말았다.
차마 지환이가 불쌍해 보여서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연출가는 물론 연극무대에서 자리를 잡은 몇몇 선배들은 지환이 나이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대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무던히도 애쓰지만 무시당하기 일쑤인 지환이었다. 속상하기도 하련만 사람들 앞에서 말장난을 하며 애써 웃어버리는 모습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만이 연극판에 발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마냥 그럴수록 더 쾌활하게 말을 걸고 북을 치며 창가를 불렀다. 음담패설로 이루어진 내용이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딱 좋은 지환의 레퍼토리였다. 그의 그런 모습을 읽지 못하는 무던한 성격이었으면 좋으련만 지은은 그렇지 못했다. 그의 마음이 읽혔다.
지환이 갑자기 지은이를 거칠게 안으며 입술을 포갰다. 드문드문 가시처럼 자란 수염 때문에 입술과 볼이 따갑고 아팠다. 밀쳐내면 낼수록 대관람차가 어지럽게 흔들릴 뿐이었다. 멀미가 났다. 까마득히 들려오는 ‘해피, 해피, 해피 데이’를 외치는 노랫말...... 그 명랑한 노래가 구슬픈 가락으로 늘어지게 들려왔다.
그날이 그와 마지막이어야 했다고 지은이 생각했다. 그럼에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 최고의 날이 다른 이에게는 반대로 없었어야 했던 최악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배경음악처럼 지환도 지은이의 인생에서 스쳐 지나가야 했고, 주인공인 아닌 ‘행인 1’이었어야 했다.
성수가 연이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마치 지환이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은에게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깜짝 놀라며 갑자기 현기증이 난 지은이 숨을 몰아쉬며 연회장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잊고 싶었던 지환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노래였다. 그 먹먹함에 압도되어 잠시 지은이 방향을 잃어버렸다. 상대를 완전히 잊고 용서했다고 여겼었는데, 완전한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지은이 오열을 했다.
몇 년 만에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세미나를 오는 도중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헤어지고 난 후에도 술만 마시면 어김없이 주기적으로 전화를 해서 자살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돌아오라고 애걸하던 그였다.
“너, 나 없이 잘 살 줄 알아? 너를 내가 얼마나 아꼈는데...... ”
지환이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나 죽어버릴 거야.”
술 취한 목소리였다.
“나 버리지 말고 돌아와.”
독백처럼,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의 연기는 무대 위에서 보다 일상에서 더 간절하게 빛을 냈지만, 더 이상 지은의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환의 말들에 단련이 되고 길들여졌기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엄격히 따지면 지환이 지은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거늘 그는 늘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대꾸 없음이, 그 무덤덤함이 지환을 더 괴롭힌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끊어진 인연이라는 것을 지은이 계속 상기시켰다.
“혼자 살 수 있어. 어리광 그만 부려. 당신, 나 없이도 잘 살고 있잖아.”
더 냉정하고 감정 없는 대사를 읊듯 지은이 또박또박 말했다.
지환은 잘 나가는 배우도, 연기를 잘하는 선배도 아니었다. 직함은 조연출이었으나 그가 하는 거라고는 술 마시고 노래하며 신입 단원들 연기를 지도하는 일이었다. 아담한 지은의 키와 왜소한 몸이 비슷한 그. 양복바지를 나팔바지처럼 소화해 내는 지환이었다. 또 여자도 남자의 목소리도 아닌 그의 독특한 음색이 귀에 익는 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 기억이 났다. 가늘고 음침한 눈매가 싫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무대 정중앙이 아닌 조명도 닿지 않는 한쪽 구석에서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모습 때문이었다. 자기 몸통보다 넓은 기타를 부여안고 통곡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창을 하는 줄 알았다. 그는 가요를 부르고 있었다. 극장 문틈으로 그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와 얽히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지금도 지은이는 믿고 있다.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고 싶어 했지만 어느 연출가도 그를 캐스팅할 생각이 없었기에 조연출을 맡기며 온갖 사무적이고 귀찮은 일들을 떠맡겼다는 것쯤은 새내기였던 지은도 느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심부름을 몇 차례 도와주었다. 처음에는 공부를 위해서 썼던, 연출가가 말한 메모를 지환에게까지 전해주곤 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화근이 될 일이라고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지은이 선배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고 믿었다.
조연출인 그가 단원들에게 분명하게 청소하고 가라는 지시를 내렸는데도 남아있는 이가 없었다. 지은이조차 그 말을 거부할 수가 없어서 극장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문이 잠겨있었다. 단원들과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게 불과 30분 남짓도 안 되는데 문이 잠겨있는 게 이상했다. 문단속을 하려면 극장 문까지 다 닫아야 하는데 말이다. 지은이 체념을 하고 돌아서는데 지환과 마주쳤다.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다른 놈들은 다 도망가도 내 지은이 너만은 나를 도와주리라 믿었다. 역시...”
말을 흐리며 지은을 와락 안았다. 놀란 지은이 지환을 밀쳤다.
“이게 무슨 행동이에요?”
“네가 너무 예뻐서 그렇지.”
“선배한테 예쁨 받고 싶은 생각 없으니 그냥 가겠어요.”
지환이 지은의 손목을 낚아채며 말했다.
“귀엽기까지 하네. 알겠어. 사무실에서 대본만 꺼내고 같이 나가자.”
“사무실이 잠겨 있어요.”
“이상하네. 난 분명 그냥 나왔는데.”
문고리를 돌려보고는 지환이 말했다. 허리춤에 찬 묵직한 열쇠다발이 자신이 위신을 세우는 거라고 느끼는 양 늘 그것을 자랑스럽게 찰랑거리며 다니던 그였다. 허리춤을 만져보던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내가 아까 놓고 나왔나 보네. 열쇠가 사무실에 있는데, 괜찮아. 다 들어가는 방법이 있거든.”
지환이 호기를 부리듯 지은을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옥상으로 가서 사무실로 난 창문을 열고 들어간다고 했다. 작은 몸이 이럴 때는 유용하게 쓰인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날 지환과 지은은 잠겨 있는 사무실에 소파 위에서 남녀가 포개져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체인 뒷모습인데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있었다. 연출과 당당하게 가출 소녀라고 말하던 극단에 갓 들어온 지은의 동갑내기. 고등학교 시절 사랑하는 남자가 생각나서 수업 시간에 뛰쳐나갔다가 가출했다고 떠벌이는 그녀의 말이 거짓말 같았다. 좁디좁은 3인용 소파 위에 두 사람이 같이 겹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연출의 가슴에 눌린 동기의 유방이 찌그러진 밤 식빵처럼 삐져나와 있었다. 평소 왜소해 보이던 연출의 등짝은 생각보다 넓었고, 엉덩이도 토실했다. 격렬한 흔적을 남기고 땀에 찌든 머리카락처럼 소파에 붙어 잠을 자고 있는 남녀. 지환이 놀라서 흠칫거리는 내 손을 잡아끌며 계단을 내려왔다. 1층까지 내려오는 동안 한 마디도 없더니 입을 열었다.
“좆같은 새끼. 극단의 여자들이 다 자기 건 줄 안다니까. 왜 돈까지 주며 저녁 먹고 술 한 잔 하고 오라고 했는지 알겠네. 너도 조심해. 넌 내 거니까.”
지환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지은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환이 단원들 앞에서 지은을 표 나게 챙기기 시작한 것이 그날 이후부터였다.
열 살이 넘는 나이차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유독 마르고 노안인 그의 얼굴 탓이었는지. 지환이 그리 호감 가는 편은 아니었다. 그가 서울로 공연을 보러 가자는 이야기에 선 듯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흔들린 건 선배 연출가를 소개해 주겠다고 한 부분이다. 연극을 하려면 서울 물을 좀 먹어야 큰다고 하면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후에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오른 지은과 그. 출발할 때까지 단 둘이 서울로 가는 것이라고는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이벤트라는 말에 동기들과 다 같이 보러 가는 공연으로 알아들었다. 처음에는 시간이 안 맞아서 우리가 먼저 올라가는 거라고 했다. 이미 올라탄 버스, 서울로 가는 두 시간 동안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창밖만 바라보았다. 계속 지은을 향해 있는 그의 얼굴이 유리창으로 흐릿하게 보였다.
“공연 보러 가는 거 맞아요?”
지은의 질문에도 지환은 엷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극장 앞에서 만나나요?”
대답이 없자 잠시 시간을 두고 지은이 말을 걸었지만 지환은 대꾸 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서울 고속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지환의 태도가 돌변했다. 별안간 손을 잡고 팔짱을 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속 시원하게 말을 하지 않아 스멀스멀 올라오는 화를 참아왔던 지은이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무작정 매표소를 찾아 나섰다. 그가 팔을 잡아당기며 막무가내로 막아섰다.
“나, 그냥 내려갈 거예요. 선배 혼자 일 보고 오세요.”
지환이 지은을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사람 많은 데서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싫다고요. 갈 거예요.”
지환이 지은의 입을 막으며 다시 한번 어깨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지은의 등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외마디 지은의 비명소리가 금세 사그라졌다.
“아프다고요.”
지은이 말했다.
“그러니 내가 하라는 대로 가만히 있어.”
눈을 치켜뜨며 나지막하게 말하는 지환이의 그런 모습이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순간 다른 사람 같았다. 강압적이었다. 지은이 할 말을 잇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눈을 부릅뜨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정한 눈빛으로 돌변한 지환이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놀이동산에서 즐겁게 놀다 가자.”
지환이 양 쪽의 엄지손가락으로 지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지은 선배?”
홀에 있는 소파에 앉아있는 지은을 향해 헐레벌떡 성수가 뛰어왔다.
“식사하시다 말고 왜 나왔어요? 어디로 사라졌나 깜짝 놀랐네.”
노래에 빠져서 선배가 없어진 것도 몰랐다며 호들갑을 떨던 성수가 찬찬히 지은을 살펴보던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운 것 같은데?”
아무 말이 없자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이상해요. 선배를 보면 자꾸 날아갈 것 같아요. 그래서 곁에서 잡아줘야 할 것 같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지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요.”
잠시 뜸을 들이던 성수가 말했다.
“아빠랑 이혼하고 엄마 그랬다고요. 표정은 공허하고...... 마치 커다란 열기구에 탄 사람처럼 떠다녔어요.”
지은이 성수를 바라봤다.
“뭐 선배가 그럴 리는 없는데......”
머뭇거리던 성수가 씁쓸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웃었다.
“정말 선배는 강단이 있어서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돼요. 우리 엄마처럼 날아가기 전에 잡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엄마가 날아가셨다고?”
“네. 하늘로 날아갔어요.”
지은이 성수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성수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이제 오늘 일정은 다 끝났는데 뭐 하실 거예요?”
불현듯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지은이 성수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대로 끝은 아니죠? 서울에 왔으니 즐겨야지요. 우리 건너편에 있는 놀이동산 가보지 않을래요? 지금 야간개장 중일 거예요. 거기 들렀다 내려가죠?”
성수가 애써 지은의 눈물을 모른척하며 말을 걸었다. 대신 지은이 야간개장이라는 말에 반응을 했다.
“애들처럼 무슨 놀이동산이야? 거긴 애인 하고나 가.”
“애인이 있었으면 진즉에 갔죠.”
성수가 그래서 오늘 가야 한다며 지은을 졸랐다. 또 무슨 놀이동산을 혼자서 가냐며 지은을 일으켜 세웠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가지 않겠다고 했어도 되었지만 한 번쯤은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 못 이기는 척 성수를 따라나섰다. 건널목을 건너려고 기다리는 동안 지은이 말을 했다.
“이혼이 무슨 대수라고 엄마는 왜 날아가셨대?”
앞을 보고 말을 거는 지은에게 성수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이혼한 것보다 억울했대요. 바람피운 아빠가 더 당당하게 이혼하자고 한 것이.”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 한 블록 차이인데도 호텔 쪽과는 다르게 주변이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놀이동산이 주는 특유의 환상에 설렘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 속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성수가 지은이를 이리저리 이끌고 다녔다.
순간적으로 스무 살의 지은이 덩그러니 서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는 느끼지 못한 감정들. 놀이동산의 활기찬 소음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나 귀신 보여.”
지은의 마음을 다독이며 햄버거와 콜라를 사가지고 온 지환이 뜻밖의 말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놀라서 쳐다보자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그가 말했다. 놀리려고 얘기했는데 안 웃기냐고 지환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이 섬뜩했다. 때로 지환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르게 일방적인 말로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엄마가 그러는데, 그래서 나는 천생 배우래. 원래 배우들이 반 무당이라잖아. 특별하다는 거지. 올해 천생연분을 만난다고 하더니 그게 너였나 봐.”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도 연신 말을 했다. 대사 연습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혼잣말처럼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지은이 몸서리를 쳤다. 음식물이 튀어나오는데도 우걱우걱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올 10월에 여자를 만나고 그 사람이 천생배필이라고. 봐 지금이 딱 10월이잖아?”
“선배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무 지나친 억지 아닌가요? 뭐, 우리가 연인도 아니고.”
전에 없이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으며 지환이 대꾸했다.
“아니, 우리는 연인이 될 거야.”
그 말을 들으니 반쯤 먹은 햄버거를 목이 매여 먹을 수가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쟁반 위에 내려놓자마자 지환이 남은 반쪽을 집어 들었다. 지은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지환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극단에서도 남은 음식을 아무 거리낌 없이 먹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지은이 부지불식 중에 말을 꺼냈다.
“거지같이 뭐예요? 남이 먹다만 걸 왜 먹어요?”
지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너랑 간접 키스하는 거야.”
지은이 베어 문 부분을 혀로 핥았다.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은에게 그날의 놀이동산은 ‘놀이’가 아니었다. 어쩌면 귀신의 집을 지나가듯 무섭고 아찔한 순간을 견뎌 내야 하는 공포였다. 고속버스 안에서 내내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지환이 무엇엔가 홀리듯 지은의 손을 낚아채고 강제로 택시에 태웠다. 이미 그의 눈은 초점이 흐릿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왜 그래요?”
지은이 숨을 몰아쉬듯 다급하게 물어봐도 지환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치 수갑처럼 지은의 손에 깍지를 낀 채 놓아주지 않았다. 빼보려고 움직일수록 더욱 세게 조여 왔다. 긴박한 상황이었다. 불시에 아이러니하게도 힘이 빠지며 졸음이 몰려왔다. 지은이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고된 하루의 끝이었다. 불빛 없는 깜깜한 시골길에 접어들었다. 그즈음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불거졌다. 골목 끝에 다다라 택시에서 내렸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거스름돈을 받는 동안에도 지환은 손깍지를 풀지 않았다. 손이 땀으로 축축해도 개의치 않았다. 몇 가구 있지 않은 동네에 유독 푸르스름한 대문이 눈에 띄었다. 하얀 깃발이 밤하늘에 유독 펄럭거렸다. 지환이 그 집 문 앞에 섰다.
“우리 집이야.”
무작정 지은을 끌고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문소리가 나자 방 안에서 ‘왔냐. 는 말이 들렸다. 지환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목이 잠기고 가래가 낀 듯 답답한 소리였다. 마루로 올라갔다. 지환도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쪽문을 열고 방으로 갔다.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같았다. 성인 두 세 사람이면 꽉 찰 것 같은 좁은 방. 대본만 한 작은 창마저 없었으면 금세 질식할 것만 같았다. 지환의 거친 숨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무대 위에서 광대처럼 웃기던 지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한 옆에 쌓아둔 이불을 깔고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금세 알몸이 되었다. 섬뜩하기까지 한 눈빛, 달빛을 받아 눈에서 푸른빛이 도는 것 같았다. 옆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요령소리. 무어라 중얼거리는 기도소리에 소름이 돋은 지은이 나가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지환은 뱀이 똬리를 틀 듯 몸을 조여 왔다. 뱀 허물 벗겨지듯 지은의 옷들이 방바닥에 널브러졌다. 혀를 날름거리며 지은의 몸을 기어 다니는 뱀. 움찔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지은의 몸을 쪼였다 풀었다 하며 먹이 조준을 하던 뱀이 입을 크게 벌렸다. 먹이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뱀은 입 가죽이나 몸통의 신축성이 상당한 수준이라서 배가 불룩해질 정도로 먹이를 먹을 수도 있다. 그 순간에 <<어린왕자>>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이 연상되었다. 삼킨 먹이는 뼈까지도 소화시킬 수가 있는 있다. 몸이 녹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찐득한 뱀의 입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가는 지은. 거친 숨소리, 향냄새……. 잠시 정신을 잃은 듯 혼미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무스름한 달빛이 보였다. 휴지로 정액을 닦아낸 그가 일어섰다. 알몸으로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른 몸피에 비해 도드라져 보이는 엉덩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지은이 다시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뱀의 소화액이 퍼지면서 살이 녹고 뼈가 녹아내리는 통증을 느끼면서.
이혼 사실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벌써 오래 지난 일이었다. 사실 결혼한 것도 나중에 알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군소리를 들었다. 친구들이 남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연극배우이고, 대학 시절 내내 끈질기게 주변을 맴돌고, 지은이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쳐내며 따라다니던 그림자였다는 게 다였다. 집요한 지환의 눈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지은이 뒤에 서 있었다. 섬뜩할 정도로.
딱히 내세울 만한 결혼도 아니었다. 조용히 시작한 동거였기에. 사실 그대로 말하면 거의 납치였다. 그럼에도 친구들에게 외국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했다며 사진만 보여주고, 임신했을 때 초음파 사진만 공유했을 뿐이었다. 사실을 더욱 말하지 못한 것은 지환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별달리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외국에서 식을 치르고 왔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지역에서의 연극 무대는 그를 피해 다니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이었다. 두어 달간 그를 떠나 다른 극단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그와의 관계를 아는 연출가가 단역이라도 해보겠냐고 제안을 했다.
“지은아, 그래도 옛정이 있어서 말해보는 건데, 단역이라도 한번 해볼래?”
“좋아요. 해볼게요. 기회 줘서 감사해요.”
그렇게 연극 연습을 하고 있을 즈음 결국에는 그와 맞닥트려졌다.
“누가 내 여자랑 맘대로 연극하래?”
다짜고짜 연출에게 주먹질을 하며 지환이 말을 했다.
“네가 그동안 내 여자 가지고 놀았냐?”
연출이 막말을 하는 지환의 뺨을 때렸다.
“작작 좀 해라. 이 진상아. 지은이 앞길을 그만 막으라고. 연극판에서 잘 클 수 있는 애를 잡아놓고 그만 옭아매라고.”
“누가 누구 앞길을 막아?”
지환이 눈을 부라리며 연출에게 막무가내로 대들었다. 이성을 잃은 지환이었다.
“그만해”
지은이 비명을 질렀다. 연출을 때리는 그를 막아섰다. 지환의 주먹이 정확하게 지은의 명치를 가격했다. 배가 뻥 뚫리는 듯 감각이 없어졌다.
공연 하루 전 마지막 리허설을 하는데 극단에 쳐들어와서 행패를 부렸다. 연출가와 무슨 사이냐고 하며 무대 소품을 집어던지며 난리를 쳤다. 다시 그를 만나서도 안 되었다. 그와의 동거는 더더욱 안 될 일이었지만, 지은이 알고 느끼면서도 무엇엔가 이끌리듯 그 구렁텅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의 음침함과 슬픔의 그늘이 싫은데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와 함께인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강박증 때문에 지은이는 더 이상 연극을 할 수 없었다. 말버릇처럼 자신은 무대 위에서 죽는 게 소원이라던 그는, 반대로 이미 연극판에서 내쳐졌다. 자질이 없어서 무대에 설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고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연출가와 다른 배우들에게 난폭한 성질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하는 한 지은이도 같은 신세가 되었다. 그가 지은이 혼자 연극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대에 설 수 없다면 너도 마찬가지야. 어느 놈하고 시시덕거리려고. 절대 안 되지.”
또 다른 연출과 몸싸움을 하고 왔다며 코피가 터진 코를 틀어막고 앉아서 한 말이었다. 지환의 말에는 대꾸도 안 하고 지은이 결국 선전포고를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난 더 이상 아이 가지려고 이런 노력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연극도 다시 시작할 거야.”
시어머니가 정해 준 시간에는 쪽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밖에서 문을 잠가놓고 사정하는 시기까지 지시했다.
“지금은 아니다. 조금만 더 참아.”
걸출한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톱날처럼 지은의 귀를 후벼 팠다. 지환의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떨어져도 지은은 체념한 듯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남녀의 자연스러운 교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거를 시작한 이후로 아들에게 아이를 가져야만 지은이와의 끈을 이어갈 수 있다고 무당 엄마는 끊임없이 임신을 부추겼다. 그는 마치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정해준 날짜를 지키고 섹스를 하는 동안 기도를 하는 기행까지 벌었다. 철저하게 자식을 바로 세우기 위한 어미의 최선이라고는 했지만 그 계획은 번번이 실패했다.
연극에 대한 꿈도 다 무산되고 포기하듯 지환과 동거를 시작한 것은 다음 해 겨울,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일이었다. 지은이 임신을 하게 되었고 몇 달이 안 되어 유산이 되었다. 그 후로 두어 번의 임신과 유산의 반복. 끝내 불임 판정을 받기까지의 생활은 지환과 그의 무당 엄마의 대 잇기에 대한 집착으로 일관되었다. 그 스트레스가 유산을 불러왔다.
지환이 결국 지은과 헤어지라는 엄마의 지령을 받아들였다. 유산을 하고 누워 있는데 때에 지은에게 그가 장난처럼 이별을 통보했다.
“갈라서자”
결국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후의 일이었다. 집착의 끈이 이렇게 쉽사리 끊어질 거였으면 지은이 먼저 자를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들었다. 무 토막 자르듯 깔끔하게 갈라서기를 바랐던 건 어쩌면 지은이었다. 생선 머리 자르듯 한 순간에 잘려버린 지은은 시원하면서도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지환을 만난 후 단 한 가지라도 좋은 기억만 있었더라면 헤어지는 게 어려웠을 텐데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진 뒤, 우연하게라도 그를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을 했지만 그런 스토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이어서 다행이었다. 결국에는 지독하게 악연일 거라고 지은이는 생각했다. 우연한 만남은 없었지만 지환의 끈질긴 전화는 피할 수가 없었다. 매달 내야 하는 공과금처럼, 연체를 따지는 카드사의 독촉전화처럼 주기적으로 시시각각 걸려오는 연락이 되풀이되었다.
헤어진 뒤 간간히 지환의 소식이 들렸다. 운 좋게 연출을 하다가 포악질을 떨어 공연이 무산되었다, 또 병에 걸렸다, 여자가 있는데 도망갔다는 이야기였다. 무당인 엄마가 돌연사했다는 이후로 들은 말이므로 그런가 보다 했다. 자신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엄마의 지시대로 살아온 그였으니 그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을 거라 짐작되었다.
잊을만하면 걸려오는 전화. 수시로 지은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 포악질을 부리는 게 지환이 자신이 살아있다고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협박을 하는 지환이 한심하다 못해 불쌍했다. 심지어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까지도 지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어떻게 다른 여자를 두고 나를 괴롭히니? 미친 거 아냐? 너 사람 아니지?”
“알겠으니 내 전화만은 받아줘. 더 괴롭히지 않을게.”
결국 지환에게 전화는 받기로 약속을 하자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가혹 행위를 당하는 사람처럼 지은도 그의 협박 전화에 길들여져 있어서 연락이 안 오면 불안하기까지 했다.
지루하고 끈질긴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한동안, L호텔 워크숍에 오는 날 다시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지환을 거의 잊고 있었다.
“선배, 놀이기구 잘 타요?”
엄마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말을 들은 후로 지은이 성수가 다르게 보였다. 날카롭게 세우던 발톱을 내리고 부드럽게 대답을 해주었다.
“나이 들었나 봐. 이제는 무서워서 못 타겠어.”
지은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수가 바로 대꾸했다.
“선배가 무슨 나이가 들어요? 아직도 20대 같고 만.”
본인이 말해 놓고도 어색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놀이기구가 있는 쪽으로 달렸다. 성수가 놀이공원 안을 돌아다니며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놀이기구를 탔다. 어지럽고 멀미 난다며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성수에게 지은이 짓궂게 말했다.
“날아갈 것 같다며, 지금 날아다니는 사람이 누구야? 나를 잡아주겠다고 하던 사람 어디 갔나? 날아갈 것 같은 사람을 혼자 둬도 괜찮냐고?”
그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성수가 보란 듯이 소리를 지르고, 지은을 향해 손을 흔들며 혼자서도 잘 놀았다. 밝게 웃고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미소였다. 몇 개월간 함께 한 공간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의 생김새를 자세히 쳐다본 적이 없었었다. 친근하면서도 너무도 생소한 얼굴이었다. 그가 안경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동그스름한 얼굴이라 귀엽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리다고 치부했지만 다시 보니 성숙한 모습이 어른스럽기까지 했다. 보기보다 큰 성수였다. 지은의 얼굴 하나가 더 있는 셈이어서 가까이에서는 그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양복이 잘 어울렸다. 제법 몸피는 있지만 뚱뚱한 편은 아니어서 보기에 좋았다.
어느 틈에 놀이기구에서 내렸는지 성수가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 회전목마를 타러 가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성수의 손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건 안 무서울 거예요.”
“성수 씨, 회전목마 말고 우리 대관람차 탈까?”
지은이 말했다. 성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 선배님 하고 어색하게 무슨 관람열찹니까?”
지은이 성수가 잡은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건 안 어색하고?”
재빠르게 손을 놓고 머리를 긁적이는 성수의 손목을 낚아채듯 붙잡고 지은이 대관람차에 올랐다.
마침 밖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요란한 굉음이 들리며 하늘이 번쩍거렸다. 찬란한 불꽃이 꽃도 만들어내고 허공에 하트도 그렸다.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가슴을 뻥 뚫렸다. 민들레 홀씨처럼 피어났다가는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팝콘 튀듯 타닥거리는 소리, 하늘로 솟구쳐나가는 불꽃들, 색색별로 뻗어나가는 고운 불꽃들이 아름다웠다.
“잘 되었다. 올라가서 보면 되겠어.”
지은이 불꽃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선배, 오늘 웃는 모습 처음 보네요.”
성수가 미소를 지으며 지은의 손을 다잡았다.
“그래?”
터지는 불꽃에 눈길을 두며 지은이 말했다.
“참 예쁘다. 좋네.”
“신나면 소리도 지르고 깔깔대고 웃어 봐요.”
성수가 환호성을 지르며 웃었다. 지은이 소리 내어 따라 웃었다. 소리 내보라는 말이 뭉클했다. 성수를 바라보았다.
“야호, 야~~~ 이렇게?”
웃고 있는데, 순식간에 눈물이 흘렀다. 불현듯 지은이 잡고 있는 성수의 손등에 뽀뽀를 했다. 눈물 한 방울이 손등에 또르르 흘러내렸다. 성수가 지은을 안았다.
“선배가 날아가지 않게 제가 잡아줄게요.”
‘성수의 품이, 아니 남자의 품이 이렇게 넓고 포근할 수 있구나!’ 지은은 새삼 느꼈다. 그의 심장 뛰는 소리가 불꽃 터지는 소리와 함께 더 크게 들렸다. 불꽃을 바라보며 눈물을 닦는데 성수가 지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성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윽하게 바라보는 성수의 눈. 그의 안경 렌즈에 지은의 상기된 얼굴이 비쳤다. 성수가 고개를 숙여 지은에게 키스를 했다. 대관람차의 꼭대기에 다다르자 아찔하고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다시 적막하고 깜깜한 하늘뿐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때 진동소리와 함께 핸드폰 불빛이 빤짝였다.
놀이동산에서의 마지막 불꽃놀이처럼 찬란하게 피어오르던 기쁨은 잠시였다. 지환의 문자메시지였다.
“젊은 놈이랑 대관람차 타니 좋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