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길다

단편소설

by 설민

하루가 길다

설민


새벽녘, 개 짖는 소리에 박보살이 나가보니 스님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스님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다리가 부러지고 추락으로 인해 뇌를 다친 상태였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 산속에서 절을 일군 혜광스님의 장례식은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지장보살을 외우며 기도를 하다가 박보살이 철퍼덕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눈이 벌게 질 정도로 울다가도 멀쩡하게 일어나 장례절차를 따라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곁눈질을 하며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는 박보살의 태도가 여느 때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마치 누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눈에 담아놓기라도 하려는 듯이 박보살이 온갖 간섭을 했다. 뒤늦게 스님의 소식을 들은 몇몇 신도들이 와서 애도를 표해도 웬일인지 말하기 좋아하는 박보살은 절대 말을 섞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지숙에 대한 경계심이 가장 컸다. 자신의 눈앞에 두고 종 부리듯 잔심부름을 시켰다.

숲이 우거진 청오산 중턱에 있는 [영일사]는 마치 커다란 계단처럼 되어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정도로 좁은 비탈길.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스님이 일군 텃밭과 비닐하우스가 있다. 그다음 칸에는 박보살이 거처하는 조립식 건물인 행랑채가 있어 부엌과 신도들이 거처할 수 있는 방이 있고, 차 서너 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그 위로는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맨 위가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채가 있고, 그 옆의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산신각 터가 있다. 그 층계처럼 만들어진 건물 사이사이 텃밭이 있고 차 한두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아담한 절터였다.

이 절의 구조상 건물이 독립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기에 부엌과 법당을 오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서 쟁반하고 행주 좀 가지고 오시셔.”

지숙이 박보살의 말을 듣고 다녀오면, 마실 물 좀 가지고 오라는 식의 심부름을 수시로 시켰다. 장사로 뼈가 굵은 지숙의 성격도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그러니 묵묵히 참았다. 지숙이 심부름을 가고 없을 때 박보살이 경림에게 말했다.

“스님이 실족한 게 지숙 때문인 것 같아, 형님. 우리 잘 때 몰래 나가서 스님 만나다가...”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스님이 실족을 했다고 누가 그래? 지숙이는 밤새 내 옆에 있었구먼.”

“거기서 죽은 거면 발을 헛디뎌서 떨어진 게 분명하재.”

박보살이 지숙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다시 큰소리로 꺽꺽, 울어댔다.

머리카락을 뒤통수 중간에 묶은 서일은 박보살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장례를 치르고 기도를 하였다. 그런 중간에 이상한 것은 그 두 사람이 한번씩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나타나면 담배인지 종이를 태운 건지 건초를 태운 냄새가 났다. 어떤 때는 둘 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씩씩거리면서 나타났다. 박보살이 넋 놓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불현듯 통곡하기를 반복했다. 휘청거리며 청수를 올리는 박보살에게 다가가서 경림이 도와주려고 하는데 손을 내치면서 촛대를 쓰러트렸다. 초가 법당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근처에 있던 법요집 책에 불이 옮겨 붙자 지숙이 서둘러 눈앞에 보이는 방석으로 덮어버렸다. 다행히 책 겉표지만 타고 장판이 그을렸다. 불은 바로 꺼졌다. 자신의 잘못으로 불이 날 뻔했는데도 박보살은 오히려 재숙을 째려보았다.

“하고 많은 방석 중에 하필 우리 스님 꺼로 끄요? 그 방석이 얼마짜린데. 울 스님 이제 쓸 수도 없는데...”

박보살이 말을 잇지 못하고 통곡을 했다. 실신하듯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꺼이꺼이 울어대자 경림이 두루마리 휴지를 건네주었다. 박보살이 그것을 받자마자 재숙을 향해 집어던졌다.

“살려 내. 살려 내라고.”

흥분한 박보살을 서일이 끌어내다 시피하여 법당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리 죽을 줄 몰랐지만 언제인가 스님과 박보살, 경림과 지숙이 만든 사각의 링 안에서 누구든 피 터지는 싸움은 일어나겠다 싶었다. 절에 몇 번을 오고 간 끝에 불화의 출발점이 스님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아버지 천도재날 새벽에 절에 가기로 해놓고는 전날 가자고 약속을 바꾼 것은 경림이었다.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변경하는 것이 그녀의 특기였다. 장사를 하는 지숙이 투덜대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고 출발했다. 워낙 거리가 멀어 밤 9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스님에게 인사한다는 지숙과 경림을 박보살이 극구 말렸다. 종일 밭일을 하느라 피곤한 스님이 먼저 잠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밤에 운전을 하느라 피곤했다. 내가 먼저 누웠다. 박보살이 냉장고 문을 열어 곡주 한 병을 꺼내더니 한 잔씩을 마시자고 했다. 사투리가 섞인 박보살의 말, 경림의 웃음소리, 가끔 맞장구를 치는 지숙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꿈결이라 확실하지 않았다. 서로 경계하고 불만스러워하면서도 눈앞에서는 친하게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 이색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포시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새벽이었다. 개 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지만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봉화 청오산 골짜기의 절까지는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세 시간 반이나 걸린다. 절 입구까지 가는 길은 고불고불한 산길이라 긴장이 되었다. 한 번만 갈 거라는 말은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단지 평소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아온 터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무슨 물건을 바리바리 실어 나르는지 트렁크도 다 차고 넘치게 짐을 실었다. 사실 장거리 운전보다는 절에 가고 싶지 않다는 나의 심리가 더 크게 작용했다. 또 스님과 인연을 맺고 절에 다니는 일이 번거로웠다.

몇 년 전 경림은 마치 양몰이하듯 정신없이 사람들을 모았다. 친구 딸이 스님이 되어 암자를 차린 게 이유였다.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승은 두어 시간의 기도 중 반은 호통으로 시작해서 신경질로 끝냈다. 본인이 화가 나면 신도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으로 불경을 외웠다. 스님이 갱년기라서 그런 것 같다며 경림이 이해하자고도 했다. 신도가 몇 되지도 않는데 이름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스님. 떽떽거리는 스님의 목소리에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절은 물론 다른 사찰에도 가지 않고 그들과도 거리를 두었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지숙과 스무 살이 많은 경림은 동반이라는 이름으로 무슨 일이든 같이 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자매처럼 우애가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둘의 수다는 끊이지가 않았다. 문제는 전화를 끊고서는 꼭 나에게 지숙의 험담을 하는 경림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싫어서 통화하는 것도 피했다. 겉으로 볼 때는 친해 보이는데도 서로에 대한 불평이 많은 그녀들이었다.

“통장에 돈 넣었으니까 차 고치고 기름 넣어. 이번 주 일요일에 보자. 이게 다 너 복 짓게 하는 일이니까 그리 알아.”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그냥 통보였다.

자동차가 고장이 난 건 불편한 일이지만 때로는 귀찮은 일을 거절하기에 아주 적당한 구실이었다. 초파일이 다가오자 슬슬 움직이려는 경림의 수상한 조짐이 보여 차가 고장인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고치지도 못한다고 말한 것이 일주일이 채 안되었는데 일방적으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무슨 돈을 보내요?”

“나랑 지숙이랑 네 신세 좀 지려고. 어차피 밴을 불러서 타고 가도 그 값은 준다기에 그 돈을 너에게 보낸 거야.”

다른 사람의 의견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도모하는 경림의 성격이 부담스러워 한동안 멀리해 왔는데, 전에 다니던 절의 비구니 스님과의 마찰로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로한다고 연락을 한 것이 또 이리 엮이게 되었다.

“어디 가는데요?”

일부러 짜증 섞인 말투로 말을 했다.

“봉화. 그리 알고 일요일 새벽 5시까지 우리 집으로 와라.”

할 말만 하고 경림이 핸드폰을 끊었다.

청오산 기슭. 제일 위쪽에는 스님이 기거하는 요사체가 있고, 아슬아슬한 층길을 따라 바위 절벽 위를 지나가면 산신각을 만들 터로 점찍어놓은 장소가 나왔다. 앞이 틔여 있어 스님이 일군 절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중간에는 대웅전이, 제일 아래는 부엌과 방 세 개가 있는 조립식 건물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층층이 만들어진 커다란 다랑이 논 같은 형상이었다. 절을 소개하면서 스님 요사체에서 산신각 터를 보여준다고 가는데 경림은 길이 좁고 바위가 높아서 어지럽다며 가지 않고 지숙과 나만 다녀왔다. 한눈을 팔면 떨어지기 십상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파르고 좁은 층길이 었다. 그 길 중간에 커다란 바위가 솟아 올라와서 더욱 위태롭게 보였다.

“오메 무서운 거. 스님, 오래 봐야 하니 길 제대로 만들기 전에는 여기로 다니지 마셔요?”

지숙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저 아래 길 만들고 있어. 지금은 지름길로 가느라 그런 거지. 그 길 내고 산신각 만들려고 사람 들였잖아. 이젠 힘들어서 혼자 일 못하겠더라고. 이 불사 하느라고 진을 다 뺏어. 좀 골치 아픈 사람인데 일하는 거 보고 있어. 여차하면 내보내야겠어. 젊은 사람이 힘도 못쓰고 자기 기분 날 때만 일하더라고.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 얼마나 숲이 우거졌는지, 뱀이 득실득실했는데...”

뱀이라는 말에 지숙이 소리를 지르며 스님 팔에 매달렸다.

그렇게 스님과 지숙과 내가 산신각 터에 다녀왔다. 대웅전에서 산신각으로 가는 오솔길을 내느라 나무를 베고 흙을 편편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남자는 머리카락을 묶었지만 옆머리가 반쯤은 흘러내려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인사를 해도 상대의 얼굴을 피하며 약간의 목례로 답을 했다. 스님은 젊은 남자 이름이 ‘서일’이라고 했다.

밭을 만들고 야채와 꽃을 심어 가꾸는 일은 스님의 하루 일과였다. 처음 절에 왔을 때만 해도 숲이 우거지고 뱀들이 우굴거리던 곳이 아담한 산사가 되기까지의 고생담을 이야기하는 스님은 오십 대 후반이었다. 밭일을 하는 게 수도인 것처럼 날이 좋으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끼니때도 잊고 텃밭을 가꾸었다고 했다. 풀을 베고 잡초를 뽑느라 신도를 맞이하기보다는 자신의 일이 더 바쁜 스님이었다.

처음 절에 갔을 때에도 일하느라 점심때가 지나서야 느지막이 나타난 스님에게 박보살이 타박을 했다.

“스님이 하도 조그만해서 수풀에 가려 어디 있는지 안 보여 못 찾았다니까. 손님이 온다고 말했는데 우찌 이제 나타났으야. 우리 배고파서 먼저 묵었소. 밥때에 같이 묵으야지. 또 차린다요?”

스님에 대한 예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한참 아래 동생 대하듯 했다. 박보살이 스님보다 연배는 많아 보였다. 오히려 박보살이 그 절의 주인처럼 스님을 좌지우지하는 느낌이었다. 스님도 썩 탐탁하지 않게 박보살의 행실을 보고 있는 듯했다.

절에 다녀온 후 일이 생겼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문제의 주인공은 지숙이었다. 지숙이 스님에게 매일 너 댓 통의 전화를 걸어 잡담을 한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경림이가 박보살과의 대화 내용을 지숙에게 아무 생각 없이 했고, 지숙 또한 여과 없이 스님에게 전달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스님도 한몫을 했다. 사소하게 있었던 일을 공공연하게 박보살과 지숙, 경림에게 했을 뿐이었겠지만, 그녀들은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각색을 하여 서로를 의심하고 싸울 지경까지 감정이 올라갔다. 스님은 아궁이의 불쏘시개처럼 그들 셋을 쑤셔놓았다.

지숙이 스님에게 자주 전화를 하는 이유는 기도를 하고 왔더니 다음날부터 장사가 잘 된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알아온 지숙은 그리 생각이 깊은 사람은 아니었다. 다소 즉흥적이기까지 했다. 장사를 하면서 절에 다녀와서 일이 잘되면 끊임없이 보시하고 스님을 챙기는 것이 습관인 지숙이었다.

스님의 속옷부터 일할 때 입을 옷은 물론이고 먹을 것이며 그릇들 등등. 속속들이 절 살림을 택배를 보내는 지숙이었는데, 한 번은 스님 작업복으로 인해 박보살이 화를 냈다. 그날은 마침 장사하느라 바빠서 경림과 나만 절에 간 터였다. 우리를 보자마자 보란 듯이 소리를 질렀다.

“스님이 이런 바지를 입고 패션 쇼하며 돌아다닐 일 있으요?”

박보살이 배달되어 온 바지를 집어던지며 길길이 뛰었다.

“택배도 종종 보내야지. 스님 죽을 때까지 쓰지도 못할 정도여. 무슨 빤스를 스무 장씩이나 사서 보내냐고. 새 빤스 못 입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그것도 모자라서 이건 또 뭐여? 돈지랄하는 거야?”

경림도 스님에게 전화를 자주 하는 지숙이 못마땅하던 차였지만 강성인 박보살의 눈치를 보았다.

“스님이 날이 더워서 일하다 보면 옷이 땀범벅이라고 하니까 땀과 비에 강하다는 고어텍스 소재의 고급 바지를 사서 보낸 거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경림이 말했다. 돈은 재숙이 냈지만 그 옷을 고른 사람이 경림이었기 때문이었다.

“코어땍스가 뭔가 고놈 입고 일하면 일이 더 잘 된다요? 그놈의 남편은 여편네가 이러고 다니는 거 안답디까? 이리 스님 눈을 높여놓으면 빠듯한 절구석에서 앞으로 어찌 산다요.”

지숙이 통화를 하면 스님의 태도가 달라진단다. 통화도 길게 하지만 스님의 태도와 말투가 박보살에게 하는 것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친절하다고 박보살이 말을 덧붙였다.

밖으로 연결해 놓은 스피커에서는 끊이지 않고 불교 방송이 흘러나왔다. 법당에서 기도를 하는데 기껏해야 신도 세 명과 스님이 전부이건만 굳이 핀 마이크를 달고 스피커를 켜고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다. 틀니를 한 것 마냥 발음이 새고 침이 고여서인지 습관적으로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셨다. 거기다 간간히 사래가 들려 기침도 했다.

기도할 때에도 지숙에게 많이 기울어져 있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인사할 때 고개 숙이는 정도나 반가움을 표하는 정도도 다름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게 여자들이다.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스님만 모르는 진실이었다. 스님에 대한 감정이 없는 나도 느끼고 있던 터였는데, 관심의 축이 자신에게서 지숙으로 진작이 넘어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박보살은 오죽했겠나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영역에서 스님을 구박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꼭 커피를 마시는 스님에게 ‘혼자 타드쇼’, 한다든지 얼음 좀 달라는 스님에게 ‘스님은 손이 없소 발이 없소. 내 일하는 거 안 보이쇼?’ 갈 때마다 타박의 강도와 핀잔을 주는 가지 수도 달라졌다. 전보다 더 티격태격했다.

장사가 잘되고 현금을 많이 만지기에 기도며 보시하는 지숙의 스케일은 남달랐다. 빠듯한 절 살림에 보탬이 되는 지숙을 스님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이 거기에서 끝났으면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 이후에 또 색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박보살의 태도였다. 처음 갔을 때는 음식도 정갈하게 대접해 주고 친절하게 대하던 박보살이 매일 서너 통의 전화를 하는 스님과 지숙을 꼴불견으로 생각했다. 경림과 지숙과 내가 있는 앞에서 스님한테 보란 듯이 노골적으로 연애하냐며 비아냥거렸다.

사시 예불을 준비하며 법당에서 청수를 올리고 나온 박보살이 법당에 들어서는 스님을 보며 씩씩거렸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님 어찌 그랄 수 있소?”

“무슨 소리고?”

“울 아들 축원 카드가 왜 망자들 사이에서 나오냔 말이오. 우리 석훈이가 지숙네 망자들 사이에 끼워있던데? 죽이려면 나를 죽이지 우리 아들한테 왜 그란디요?”

“무슨 소리고? 그랄 리가 없는데?”

“하다 하다 정말 스님 미쳐 부렸소. 우리 아를 망자 속에 두고 싶소? 정신이 핵 가닥 돌아버렸네. 그년이 그리 좋소?”

박보살이 손으로 돌았다는 시늉을 하며 스님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눈을 부라렸다. 기도를 하는 내내 박보살의 화는 풀리지 않는 듯, 기도하는 스님 앞에 물 컵을 갖다 놓으면서도 스님을 째려봤다.

기도를 마치고 화장실을 가던 내가 손을 쳐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박보살을 발견했다. 방 안에는 사진을 찍을 만한 대상이나 물건이 없었다.

“뭐를 찍고 계세요?”

박보살이 나를 이끌고 가더니 말을 이었다.

“저것들 보라요. 뭐가 그리 좋아 웃는 거지? 남 열 불나게 해 불고?”

나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을 했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스님과 지숙의 모습을 방 안에서 찍고 있었던 거였다.

“이야기가 재미있나 보죠.”

어쩌면 내가 같이 흉을 보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말에 꼬리를 달아 오해를 낳는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문을 닫았다.

화가 잔뜩 난 박보살이 기도를 마치고 점심 공양을 먹으러 내려오는 스님과 지숙, 경림을 쳐다보며 다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 번이면 몰랐을 것을 여러 장을 찍다가 스님에게 들키고 말았다.

“아니 저 여편네 뭐 하는 기고?”

스님이 다가와 박보살의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 박보살이 그것을 안 뺏기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어깨로 스님의 얼굴을 치고 말았다. 스님이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키가 한 뼘 이상 큰 박보살의 힘에 당해낼 수가 없어 보였다. 깡마르고 자그만 체구가 굼벵이처럼 더욱 쪼그라들었다. 스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씩씩거리면서 자신이 기거하는 방으로 올라갔다. 밥을 먹으로 들어오던 젊은 남자가 고스란히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박보살이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냈다. 방바닥에 앉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서로 눈치만 보는데 경림이 말을 했다. 박보살 편을 들어준다는 의미였겠지만 그것은 불난데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런 사달이 날 줄 알았어. 지숙이 네가 행실을 좀 잘해야지.”

눈을 멀뚱 거리던 지숙이 말을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네. 내가 뭐를?”

지숙은 본인이 스님에게 자주 전화를 걸고, 물건을 사보내면서 스님에게 환심을 사는 것이 자신의 최선이라고,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늘 박보살과 있던 스님의 관심이 지숙에게로 옮겨지면서 벌어지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변을 살피지 못했다. 별 상관없다는 듯이 아르바이트라고 여기며 경림과 지숙을 태워 봉화로 오고 가는 나도 지숙의 물량공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나에게 차량비에 톨비를 주는 것을 포함해서 기도비와 스님 선물과 불전 등을 얼핏 따져 봐도 한 번 올 때마다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 정도가 들어갔다. 지숙은 절에 다녀가면 그 돈의 몇 배는 더 벌 수 있다는 맹목적인 확신과 믿음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잘하려고 하는 건데. 뭐가?”

경림이 박보살을 힐긋 쳐다보았다.

“너 뭐 하러 스님한테 그렇게 자주 전화를 하냐?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벌컥대며 막걸리를 마시던 박보살이 경림의 그 질문에는 지숙을 흘겨보았다.

“스님이 이것저것 필요하다니까 그게 뭔지 물어보고 확인하느라고 그러지?”

지숙의 대답은 너무 천연덕스러웠다. 박보살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했다.

“그게 아닌데. 그나저나 스님한테 내 아들 야그 했소, 안 했소.”

“내가 박보살 이야기할 게 뭐 있어요? 스님이 얘기해 줬지. 그리고 본인이 직접 이야기도 했잖아요. 아들이 사업으로 집 한 채 말아먹고 망해서 지금 감방가게 생겼다고.”

“뭐라고라. 스님이 말했다고라. 내가 말하는 거랑, 넘한테 전해 듣는 거랑 같으요?”

박보살은 취기가 올랐는지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본인이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믿고 의지해오던 스님이 자기 말을 전했다는 게 억울하다며 울었다. 박보살이 스님한테 따지러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휘청거렸다. 짧은 시간에 막걸리 한 병을 다 마신 박보살의 얼굴은 붉었다. 눈물로 범벅되었다. 경림과 지숙이 힘에 부쳐 말릴 재간이 없자 나를 불렀다. 셋이서 박보살을 제압하고는 바닥에 뉘었다. 눕자마자 거짓말처럼 박보살은 잠이 들어버렸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광경을 서일이 뚫어지게 보고 있는 서일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스님이 한 박보살의 이야기가 지숙으로 흘러가는 흐름을 간파한 이가 경림이었다. 박보살과 지숙은 서로 안 그런 척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돌아서면 경림을 붙들고 욕을 퍼부었다. 경림도 중간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심지어는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 같이 겉도는 나에게조차도 박보살은 대놓고 지숙이가 스님에게 빠진 미친년, 천박한 년이라고 욕했다.

한 번은 박보살이 밥을 하느라 분주한 사이 스님과 지숙이 요사채로 올라갔다. 박보살을 돕고 있던 내가 힐끗 쳐다보니 지숙이가 검지를 입으로 갖다 대면서 박보살 눈치를 봤다. 나에게 아무 말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점심이 거의 차려질 즈음 고추장을 뜨러 장독으로 가던 박보살이 스님과 지숙이 같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허리가 아프다는 경림은 건넌방에서 잠시 누워있겠다고 했고, 나는 옆에서 나물을 볶고 있는데 지숙만 없는 것이었다. 장을 퍼온 박보살이 안절부절못하며 씩씩거렸다.

“지숙보살 어디 갔대?”

박보살이 나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처음에는 모른다고 했다가, 계속 추궁을 해서 스님하고 나갔다고 했다. 박보살이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손의 물기를 바지에 벅벅 닦으며 밖으로 나갔다. 파란 고무 슬리퍼를 신고는 스님이 기거하는 별채를 향해 달려갔다. 박보살이 흥분한 것처럼 보였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가스 불을 끄고 따라갔다. 요사체에 다다를 무렵 스님과 지숙이 웃으면서 방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지숙이 옷매무새를 다듬고 파마 머리를 양손으로 빗어 내렸다. 박보살의 거친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주먹 쥔 양손을 부르르 떨며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서일이 일하다 말고 박보살 쪽으로 뛰어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온 지 채 얼마 되지 않아서 경림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구보다 급한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거였다. 스님이 경림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뭐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기도를 하래? 그동안 절에 갔을 때는 암 말도 안 하더니 이제 안 가려고 마음먹으니까 뭐라는 거야?”

내가 경림에게 따졌다.

“너 시댁 사람 중 자살한 사람이 있다며. 그게 보통일이니? 그거 안 풀어주면 니 자식들 어쩌려고 그래?”

말문이 막혔다. 경림을 잘 파악하지 못했던 오래전에 마음 터놓고 이야기한 것을, 나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사실을, 반토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다.

갑자기 천도재라니. 경림과 지숙은 기도를 하고 나니 너무 좋다고, 하는 일도 잘 풀린다며 나를 부추겼다. 사정이 어려우면 조금 도와줄 테니 기회일 때 기도하라는 거였다. 또 그만한 돈으로 기도해 주는 스님도 없다며 부르는 게 값인 기도이니 지금 하라고. 인생에 무언가가 막히고 앞이 안 보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 많고 탈 많은 이곳은 피하고 싶었다. 또 정말 필요한 일인가 싶었다. 그 기도 비면 나에게는 한 달, 아니 두세 달 정도의 생활비였다.

문제는 내가 생각해보겠다고 한 것에서부터 또 시작되었다. 두어 사람의 입을 통해 스님에게는 벌써 내가 천도재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전해졌다.

그렇게 하게 된 천도재 기도날에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스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나와 경림, 지숙은 한두 시간만 있다가 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장사도 해야 했지만 아픈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했다. 스님의 죽음을 자살인지 타살인지 의심스럽게 접근한 경찰 두어 명이 장례식장에도 왔다 갔다 했다.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는 게 보였다. 경찰들이 지숙에게 다가왔다.

“말씀 들어보니 스님과 각별한 사이였다고 하던데. 혹시 어젯밤이나 새벽에 스님을 보셨습니까?”

지숙의 눈이 동그래졌다.

“못 봤는데요? 그리고 무슨 각별한 사이라고요?”

“박보살과 스님이 최근 들어 자주 다툰 이유가 그쪽 때문이라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누가 그래요? 뭐 박보살과는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스님을 죽이지는 않았어요. 나는 저 젊은 남자가 수상한데요? 늘 스님 그림자처럼 어슬렁거리며 일했거든요. 스님이 좀 못마땅해하기도 했어요. 가끔 스님하고 싸우는 적도 있었다고 하고. 또 새벽이면 저 서일이가 제일 유력하잖아요.”

지숙의 말을 듣고 경찰들이 젊은 남자를 예의 주시 했다.

“이 절 스님과는 무슨 관계시죠?”

“관계는 무슨. 좆같이.”

서일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분노에 찬 음성이었다.

“스님 하고 싸운 적이 있다는데 그 이유는요?”

“씨발, 그래, 싸우다가 내가 죽였다. 어쩔래?”

서일은 필요이상으로 갑자기 흥분했다. 경찰들이 계속해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추근거리는 것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화풀이하듯 경찰을 마구잡이고 때리기 시작했다.

“그 좆같은 인간 내가 죽였다고. 어쩔래?”

싸우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박보살이 맨발로 뛰어나와 서일을 말렸다.

“석훈아, 우리 아그가 왜 그란다냐?”

숙연해야 할 자리가 난리법석이 되자 경찰이 남자의 양팔을 붙잡고 경찰차에 태웠다. 박보살이 필사적으로 경찰에게 매달리면서 ‘우리 이그 왜 잡아가냐. 장례식에 상주는 있으야지’하며 울부짖었다. 스님 장례식날, 서일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일주일도 안 되어 경림과 지숙, 나는 경찰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누군가가 스님과 싸우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고 경찰서에 출두하라는 말만 했다. 스님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말인가 싶어 소름이 돋았다. 사채의 위치상 별채에서 법당으로 이어진 바위 절벽 아래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는 다시 절에 가면서 경림을 통해 전해 들었다.

경림과 지숙과 함께 봉화로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서로에게 궁금한 점은 남아있었다.

“서일이란 사람이 박보살 아들인 석훈이가 맞는 건가요?”

내가 경림에게 물었다. 둘 다 잘 모르겠다고는 했으나 정황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을 인정했다.

경찰서에 도착했다. 박보살이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앉아있는 게 보였다.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우리가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박보살이 경림과 지숙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형님하고 저년 때문이야. 왜 저런 미친년을 스님한테 소개했으야? 그 파장으로 우리 스님이 죽었어. 내가 죽인 게 아니야. 저 미친년이 스님을 홀려서 죽은 거야. 내가 스님을 왜 죽이냐고. 나랑 살아온 세월이 얼만디. 지숙이 년이 스님 잡아먹은 것도 모자라서 우리 아덜도 잡혀가게 했다며. 무슨 원수가 졌길래. 너 죽고 나 죽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박보살이 쏘아붙였다.

새벽, 절벽 위 충길 위에서 다투다가 스님을 미는 박보살의 모습을 본 목격자는 서일이, 아니 석훈이었다.

“조용히 좀 하셔요. 기다리던 상주가 경찰서에 오는 중이랍니다.”

경찰이 한 말에 나는 잊었던 박보살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숙이 뜬금없이 경림에게 물었다.

“그럼 스님 상주가 박보살 아들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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