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으로 사는 하루

단편소설

by 설민

만원으로 사는 하루


설민


영찬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우리를 믿고 맡기는 일인데 제대로 하라고. 미소가 입을 삐죽거리며 피식 웃었다. 자동차의 휠을 닦는데 너무 힘을 줘도 흠집 난다고 영찬이 또 볼멘소리를 한다. 깐깐한 영찬의 눈에는 어리숙한 미소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는 가 보았다. 쭈그리고 앉아 세차를 한 탓에 다리가 저린 미소가 걸레를 든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섰다. 차를 닦던 걸레를 땅바닥에 대면 안 된다고, 그러면 차가 긁힐 수 있다며 영찬이 또 한 소리한다. 고객들의 차를 내 것 인양 잘 다뤄야 하지 않겠냐고. 영찬의 군소리에 미소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엇보다 여행과 일과 아이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빈틈이 없는 영찬이었다. 미소의 눈웃음은 알겠다는 수긍의 표시다. 도독하게 올라온 눈두덩이가 도드라지는 미소의 웃음을 영찬은 일명 ‘삼십 장 미소’라고 부르곤 했다. 그 숫자가 삼십 장인 데는 나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월초가 되면, 바로 내일이면 볼 수 있는 미소의 해맑은 모습. 미소의 고단함을 눈치챈 영찬이가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목장갑과 고무장갑을 겹겹이 끼고 일을 해도 손이 시렸다. 겨울 세차는 그게 제일 곤욕스러웠다. 불현듯 부지런한 손놀림을 멈추고 영찬이 호호거리며 입김으로 손을 데우는 미소를 일으켜 세웠다. 장갑을 벗고는 영찬이 두툼한 점퍼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덩치 큰 남자가 술을 마시면 애교로 강아지 흉내를 내며 손을 비비는데 영찬이가 웬일인지 맨 정신에 그 행동을 시작했다. 이유가 있는 영찬의 행동이었다. 만지면 열을 내서 따뜻하게 해주는 팩을 미소에게 건네고는 좀 쉬고 있으라고 했다. 영찬이 속도를 내어 자동차를 닦는다.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 가이드나 음식점 보조, 각종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도 하고 있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하루에 두 대의 손세차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은 꽤 드물었다. 영찬이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짬짬이 연락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한번 손세차를 맡긴 사람들이 계속 연락을 하고 소개를 해주는 이유가 있었다. 영찬의 꼼꼼한 세차는 기본이고, 종종 연락을 취하며 안부를 묻는 친절한 태도에 있음을 미소도 알고 있었다. 한국 도착 전에 얼마 동안 있을 것인지 기간을 미리 안내하는 영찬이었다.

추운데 혼자서 일하는 남편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같이 세차를 시작한 미소가 핫 팩을 손에 쥐고 쉬면서 마지막 마무리로 자동차의 물기를 닦는 영찬의 뒷모습을 보았다. 영찬은 쉬라고 했지만 알바 휴무라고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은 미소였다. 그의 튼실한 허벅지와 봉긋하고 빵빵한 엉덩이, 업히고 싶은 등을 바라보다가 뒤통수를 보게 되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깔깔댔다. 꼬리가 붓처럼 짧은 경주 토종개 [동경이]가 떠올랐다. 영상에서 본 그 개는 연신 짧은 꼬리를 흔들며 마당을 뛰어다녔는데, 영찬의 묶은 꽁지머리가 그 모습과 흡사했다.

“남편 일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니? 미소?”

이를 앙다물고 이름을 강조하며 말하는 투가 영찬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는 것이었다. 이름처럼 웃음이 많은 미소가 계속 킥킥댔다.

“남편, 이름을 동경이로 바꾸자. 지난번 본 동영상 기억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던.”

“남편이 천연기념물이지.”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 집중하는 영찬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발언이었다. 세상에 흔하지 않은 일들을 담은 동영상을 즐겨보는 미소. 자신이 보고 신기하면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같이 보는 것이 취미인지라 영찬도 보았을 동영상이었다.

“아니, 동경이가 천연기념물이지.”

미소가 지지 않고 꿋꿋하게 이야기를 하니 영찬이 자동차 물기를 마무리하던 마른걸레를 그녀의 얼굴에 덮어 씌웠다.

“세차 끝”

세차를 마친 영찬과 미소가 근처 재래시장을 들렀다. 어둑어둑해진 거리, 기온이 내려가자 시장상인들이 드럼통에 나무를 넣었다. 연기와 함께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 시골에서 자랐잖아, 장작 타는 냄새가 나면 어릴 적 상상했던 연기 괴물 생각이 나.”

미소가 이야기를 했다.

“무슨?”

“집집마다 장작을 때고 연기가 올라오면 엄마들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하나 둘 데리고 들어갔거든. 친구들이 마치 연기 괴물이 있는 악당 소굴로 쏙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했어.”

“미소야, 이렇게?”

영찬이 입으로 청소기 빨아들이는 소리를 내며 미소를 두 팔로 안아 올렸다. 미소가 까르르 웃었다.

“영찬, 미소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엉뚱하기는, 갑자기 웬 아이스크림? 세차하느라 추워서 덜덜 떨어놓고? 감기 걸려”

영찬이 미소의 이마를 만지면서 말했다.

“연기를 보니까 드라이아이스, 아이스크림이 떠오르네? 그리고 떡볶이, 어묵, 붕어빵도 먹고 싶다.”

개연성 없는 상상력이 특징인 미소가 일정한 간격으로 먹을 것을 나열했다.

“오늘 왜 그래? 장 보는데서 군것질로만 다 먹는 것은 무리인데?”

미소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볼에 풍선을 불었다.

“그럼 아이스크림 하나만도 안 돼?”

“오늘, 그날이야? 왜 그래?”

영찬이가 눈을 지그시 내리깔며 미소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미소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이 말일이라......”

영찬이 다시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데 눈치 빠른 미소가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미소도 모를 리가 없었다. 매일 하루를 만원으로 사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사실 쓸 수 있는 돈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왠지 투정을 부리고 싶은 미소였다.

“그날은 아닌데......”

“뭐야?”

줄줄이 알사탕처럼 이야기를 나열하던 미소가 뜸을 들였다.

“우리, 아기가 먹고 싶은 것 같아.”

영찬이 걸음을 멈췄다. 잠시 하늘을 바라본 영찬이 미소의 몸을 탐하던 때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자신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행동했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 같은 영찬을 보며 미소도 생각했다. 사실 관계를 해도 사정을 하는 일은 드물었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날은 반드시 미소의 배 위에 희뿌연 액체를 난사했다. 여행이 인생의 목적인 영찬이 방랑자로 살다가기를 바랐기에 결혼도 아이도 원하지 않았다. 혹시 만일에 아기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는 미소의 물음에 ‘내 인생에 그런 일은 없다며’ 단칼에 말을 잘랐던 영찬이었다. 그의 인생에 미소가 들어온 것도 변수라고 여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평소 영찬이의 생각을 알고 동조해 온 미소였지만 놀라는 내색이 아니라, 실수를 추궁하는 것 같은 영찬의 반응에 얼음 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목구멍으로 차가운 기운이 내려갔다. 목울대가 쏴 해졌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같이 지내온 것은 미소였다. 잠시 영찬을 놀려 주려했던 자신의 말에 오히려 미소가 상처를 입었다. 아이스크림 가게로 간 미소가 평소에는 먹지 않던 비싼 콘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가격이면 시장 노점에서 파는 가락국수를 사 먹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계산을 할 영찬이라는 것을 예상하면서. 그럼에도 밉기는커녕 영찬이가 이해되는 자신에게 더 화가 난다고 미소가 생각했다.

영찬과 있는 것이 좋으면서도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진역 아동 납치범]이라는 동영상의 여자가 떠올랐다. 아기를 보면 돌변하는 납치범의 행동에 경악하다가 끝내 울어버린 이 영상은 영찬과 관계를 갖은 후 잠을 오지 않아 고이 잠든 그의 옆에서 보게 된 것이었다. 사정을 해주길 바라는 미소와는 달리 깔끔한 처리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잠든 영찬을 보며 미소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무엇이든 영찬과 공유하는 미소였지만 이것만은 혼자 보고는 영상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부진역에서 늘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서 어슬렁거리다 아기를 안은 엄마나 유모차를 보면 눈빛이 달라지며 달려가서 아이를 만지고 부모가 잠시 방심한 사이에 아이를 빼앗아 달아 다는 여자.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했으나 사람들의 반응이 거세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그녀도 ‘내 아이야’라며 소리를 지르며 대항했다. 매번 몇 걸음 못 가서 붙잡혀 곤욕을 당하면서도 그녀의 행동은 계속되어 신고가 들어오고 역에서도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방송에서는 그녀의 행적을 몰래 뒤따라가 집을 알아냈고 그녀의 보호자를 만나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녀의 방 벽면에는 언제 적부터 걸린 것들 인지모를 상장들이 빼곡하게 걸려있었다. 어릴 적 꽤나 영민하던 여자가 연인과 헤어지고는 정신을 놓아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포악하게 돌변하는 딸의 영상을 보여주자 매일 나가기에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줄 알았지 저런 행동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 정도인지 몰랐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오히려 딸을 모략하는 게 아니냐며 경악하는 부모들이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잠시 그러려나 싶었던 세월의 골이 깊어져 버린 거였다. 그녀의 부모도 살기 바빠 그녀의 정신이상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고, 매일 부진역에서 남자를 기다리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가보니 임신을 한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고. 그 아이를 유산하고서도 그 이후로 몇 번의 상상임신으로 힘들어했다는 이야기까지.

“어서 계산해”

미소가 더 장난스럽게 지시하듯 말하며 껍질을 벗겨서 아이스크림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부진역 여자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가 쨍했다.

영찬이 미리 적어놓은 찬거리를 사는 동안 미소는 장보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한쪽에 서서 아이스크림만 먹고 있었다. 영찬도 그런 미소를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두어 가지의 반찬거리와 양파를 샀다.

시장을 벗어나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하나 둘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어둑해진 저녁. 영찬은 대롱거리는 검정비닐봉지를 앞뒤로 흔들며 걷다가 점퍼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어색한 침묵도 잠시, 미소가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고는 영찬을 향해 말을 했다.

“뻥이야”

큰 소리로 뻥을 외친 미소에게 영찬은 배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두 손으로 미소의 볼을 감싸 안았다. 볼을 누르자 아이스크림이 삐져나왔다. 영찬이 강아지처럼 날름거리며 핥아먹었다.

“반칙이야. 내 아이스크림 내놔”

미소가 영찬의 입을 덮쳤다.


다음 날도 미소와 영찬은 한 건의 세차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시장에 들르기로 했다. 파우치에서 꺼낸 미소의 수첩. 거기에는 날마다 쓸 수 있는 만 원짜리 지폐가 들었다. 날짜별로 만 원을 꽂아두고 돈을 사용한 내역을 적어놓는 수첩은 지폐의 크기와 비슷했다. 미소가 수첩을 반원모양으로 구부리자 엄지손가락으로 종이 한 장 돈 한 장이 찰락 대며 넘어갔다. 우리 부자라며 미소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영찬이 매월 초가 되면 수첩 사이사이에 서른 장의 만 원짜리 지폐를 꽂아두는데 미소가 그것을 받아 든 순간이었다. 그때 나오는 웃음이 영찬이 말하는 ‘삼십 장 미소’다. 아껴 쓰자며 영찬이 미소의 머리를 흩트리며 장난을 친다. 소꿉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한 미소가 전에 없이 바나나와 귤을 사기로 결정했다. 오래간만에 집에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미소가 직장을 다닐 때 친하게 지낸 후배 채영이었다. 그녀는 여행을 다니면서 사는 미소를 도와 한국에서의 급한 일을 처리해 주곤 하는 사이었기에 감사 인사차 초대를 한 것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영찬이 요리를 시작했다. 한 때 식당을 운영했던 영찬에게는 요리라고까지 할 것은 없었지만 꽁치 통조림을 넣어 만든 김치찌개와 콩나물 무침, 김을 구워 밥상 위에 올렸다. 채영이가 오자 밥을 푸는데 아직도 밥그릇을 사지 않았냐며 군소리를 한다. 두 번째 방문으로 집안 살림을 꿰뚫는 채영이의 눈썰미도 대단하다며 미소가 엄지를 세웠다. 밥과 국그릇 두 개씩, 수저 젓가락 두벌, 접시 세 개와 밥솥, 냄비, 프라이팬 하나, 작은 도마와 칼 한 자루가 세간 살림의 전부였다.

미소가 눈웃음을 지으며 채영에게 대신 접시에 밥 많이 준다며 실눈을 찡긋거렸다. 방 하나와 거실 겸 부엌이 있는 구조의 집. 가구도 간단하다. 작은 사무실에서 음료수나 넣어두려고 쓸 법한 냉동도 안 되는 냉장고. 페브릭 소파, 책장 하나와 책상 겸 식탁. 그 위에는 노트북 두 대가 마주하며 놓여있었다. 거실 한쪽에는 벽면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벽지를 대신하듯 걸려있다. 집에 있는 가구들은 거의 다 재활용품들이다. 용케도 구해오는 영찬이의 실력을 칭찬하는 미소를 보며 채영이 고개를 돌린다.

“난 안 듣으련다. 자유롭게 여행 다니며 사는 것도 좋지만 집안 구색은 갖춰야지 않아? 소꿉놀이도 아니고. 나는 돈 주고 그렇게 살라고 해도 못 살아.”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우리가 집에 붙어있지를 않는데. 그리고 있을 건 다 있어. 우리 집에서 제일 비싼 건 영찬이와 미소, 그다음이 노트북과 핸드폰이야. 그리고 새로 산 것도 한 번 쓰면 바로 중고 돼. 안 그래, 영찬?”

저녁 준비로 바쁜 영찬이 듣지 못하자 미소가 영찬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토닥거린다.

“남편, 힘들지? 내가 도와줄까?”

옆으로 가서 입을 쭉 내밀며 말하고는 미소가 영찬의 볼에 뽀뽀를 하자, 채영이가 둘이 정말 참 잘 만났다며 손뼉 치는 시늉을 했다. 채영이 그 둘을 방해하듯 사이에 서서 양쪽을 번갈아 보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애는 안 가져? 이제 둘 다 나이도 많구먼.”

하던 일을 멈춘 영찬이 정색을 하며 채영이를 향해 대꾸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베이비야. 그렇지 미소야?”

미소는 영찬의 말에 실웃음으로 답했다. 조금씩 아기를 갖고 정착하고 싶었으나, 단호한 영찬의 태도에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미소였다.

“베이비들 암튼 잘 만났네, 잘 만났어.”

채영이 비아냥거리며 이야기했다.

단출한 밥상, 밥을 준비한 영찬이 소리 없이 밥을 먹는 미소와 채영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맛이 있는지 어떤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미소가 소싯적버릇 나온다며 영찬이 묶은 꽁지머리를 댕댕거렸다. 오늘의 요리사님에게 엄청 맛있다고 말을 하라고 채영에게 다그치자, 한 수 더 뜬 후배가 형부 밥 한두 번 먹어보나 그 맛을 인정한 지 오래니 먹는데 집중하잖다. 영찬이 고개를 저으며 밥을 먹었다.

“암튼 영찬, 맛있는 밥 해줘서 고마워!”

영찬의 머리를 토닥이며 칭찬을 한 미소가 특별 간식이라며 과일을 꺼낸다. 채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채영도 만원으로 하루를 사는 부부의 씀씀이를 알고 있었던 터였다. 무슨 일 있는 거냐고. 이번 알바에서 돈을 많이 벌었냐고 묻자 미소가 웃는다. 이렇게 장 봤어도 만원 안 넘었다고 했다. 채영이 혀를 내두른다. 정말 ‘찬미부부’는 국보급이라고. 분명히 커피도 없을 거라며 직접 사가지고 온 채영이 따뜻한 물 준비를 하며 물었다.

“도대체 두 양반, 언제 불꽃이 튄 거야? 미소언니 직장 그만두는 것도 놀라웠는데 듣도 보도 못한 남자랑 바로 여행 다니며 산다기에 엄청 충격받았잖아. 나중에 그 상대가 [영찬이네] 사장이라고 해서 두 번 놀랐어. 나도 그 식당에서 밥도 먹고 술 사 먹었잖아, 언니랑 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통보하듯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바로 여행을 떠난지라 궁금증이 컸으리라 짐작은 되었지만 영찬이도 미소도 소문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미소에게 영찬이란? 미소가 종종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결정하기 전까지 영찬은 미소의 인생에 마늘이나 파 같은 보조양념 같은 존재였다. 있으면 넣고 없으면 생략해도 요리의 본질을 크게 흐리지 않는 그런 것. 20대 후반의 미소에게 뭉쳐있는 어깨 근육의 통증 같은 고민이 항상 있었다. 성미에 맞지 않은 회사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는지, 생계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오른손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인상을 찌푸리는 미소에게 영찬은 어디가 불편하냐며 다가왔다. 개방식 주방에 테이블 세 개와 벽을 바라보고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 놓은 긴 탁자와 간이 의자 네 개가 전부인 식당을 운영하는 영찬이 서너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미소에게 말을 걸었다.

“어깨가 뭉치셨어요?”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영찬이네] 음식점은 소문을 듣고 오거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간혹 들를 정도로 비교적 여유로웠다. 미소가 다소 늦은 저녁을 먹으며 소주를 혼자서 마시기에 편안하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음식점 주인인 영찬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속마음은 신경 써 주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몸에 밴 친절함으로 별 것 아니라며 미소가 손사래를 쳤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늘어난 기술이었다. 멋쩍고 당황했을 때 더 눈웃음을 치는 버릇이 있는 미소가 직감적으로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라서 주인이 나온 것이라고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소지품을 챙겼다.

“벌써 가시려고요?”

주방에서 음식도 만들고 손님들에게 직접 음식을 갖다 주는 영찬이었지만 정면으로 얼굴을 쳐다본 것은 미소도 처음이었다. 네모난 뿔테 안경을 끼고 반 머리 묶음을 했는데, 까만 빵모자를 얹어 놓은 것 마냥 앞이마와 정수리 쪽만 머리카락이 있고 나머지는 거의 삭발을 한 수준이었다. 앞에서 보면 짧은 커트 머리 형태지만 뒷부분은 일부만 길러서 묶은 모습이었다. 단발머리인 미소가 머리카락을 묶었을 때의 길이 정도이니, 뒷 머리카락은 꽤나 오래 공들여 길렀을 게 뻔했다. 투박하게 생긴 얼굴에 평범한 스타일은 아니어서 낯설었지만 왠지 영찬에게는 어울린다고 미소가 생각했다. 거기다 왼쪽 귀에만 한 콩자반 같은 귀걸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영찬을 얼핏 보았을 때는 귓불에 검은 점이 있는 사람이 있구나, 여겼었다. 가까이 보니 그것이 귀걸이였다는 게 순간 다행스럽게 여겨진 미소. 다시 한번 눈웃음을 웃고 말았다.

문 닫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불편하지 않으면 술 한 잔 같이 하고 싶다는 게 영찬의 의도였다. 영찬은 올 손님은 없어 보이지만 영업 종료는 알려야 한다면서 식당 문에 붙여놓은 원목팻말을 바꿔 걸었다. 유리문 안으로는 [OPEN] 글자가 보였다. 밖이 닫히면 안에서는 열리는 거라며 영찬은 팻말을 바라보는 미소에게 말을 건넸다.

이날 이후 미소에게 영찬은 더 이상 파, 마늘이 아니라 김치찌개의 김치, 된장찌개의 된장 같은 주된 요리 재료가 되었다.

서로 처음 보며 이야기를 한 날, 영찬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미소는 어깨를 짓누르던 통증이 해소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해외에서 살아보기. 영찬은 여행을 위해 요리사 자격증도 따고 식당을 운영하며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떠돌아다니는 성향에 맞는 밥차를 하려고 했는데, 그게 쉽게 허가도 안 나고 자금도 많이 들고, 맘대로 차를 세워놓고 장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작은 점포를 얻은 아는 형과 낮과 밤을 나눠서 음식장사를 하자며 빌붙은 거라며 세 달 후 떠날 거라고 했다. 한 도시에서 한 달씩 살면서 지낼 거라고. 그래서 발목 잡히는 어떤 일도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살 거라고 했다. 돈을 그렇게 많이 모았냐는 미소의 말에 영찬은 비행기 값과 조금의 여유자금만 준비하고 현지에 가서 일하면서 충당을 할 거라고 했다. 벌써 여러 나라를 다녀온 영찬의 에피소드는 거의 매일 밤마다 계속되었다. 천일 야화처럼 그 이야기에 끌려 퇴근하면 [영찬이네]로 갔고, 미소도 여행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 흔하게 방영하는 세계여행 관련 프로그램도 잘 보지 않았던 미소가 영찬의 말에, 책을 찾고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세계여행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결정했다.

영찬에게 함께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말하자 진심인지를 몇 차례 확인했다. 국내 여행하고는 달라서 호기심으로 갔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게 선배 여행가로서의 충고라고. 그러면서 그가 제일 먼저 제안한 것은 운동과 영어회화 공부였다. 체력과 소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타지에서 버티기가 힘들다고 했다.

실행력이 좋은 영찬은 미소의 마음을 확인하려는 듯 바로 다음날부터 함께 운동과 영어공부를 하자고 했다. 의지력이 강한 미소는 아니었지만 영찬과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컸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 따로 헬스클럽을 다닐 돈도, 영어회화 학원에 다닐 비용도 여행경비로 아껴가며 바로 [영찬이네]가 영어 공부하는 장소, 미소네 자취방이 운동하는 곳이 되었다. 유튜브를 보며 운동을 했지만 영찬이 헬스트레이너 자격증까지 겸비한 실력자라서 미소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함께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밥을 먹다 보니 영찬과 미소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두 번째는 자금의 문제였다. 둘이 함께 최소한의 경비로 살면서 여행 준비를 해야 하기에 한 달 생활비 백만 원, 어쩌면 그보다 적은 돈으로 살아야 하는데도 함께 행동하겠냐고 영찬이 미소에게 물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은다고는 했지만 허술한 관리로 쓰기가 바빴던 미소가 영찬에게 재무를 맡기기로 했다. 관리라고 할 것도 없는 박봉이었기에 매달 돈 나가기 바빴다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반면 영찬은 절제 있게 금전관리를 해가면서 생활을 조율했다. 보기에는 보스기질을 가진 외모로 나이트에 꽤나 다녀 봄직한 근육이 많은 다부진 체구였지만 그런 영찬의 끼는 해외여행에 다 소진되는 듯했다. 미소의 퇴직금과 영찬의 자금으로 처음에는 조금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었지만 애초에 혼자서 여행을 준비하던 영찬은 쉽지만은 않은 여행길에 자신이 돌봐야 할 책임이 생겨 부담은 된다고 했다.

둘은 결혼까지는 원하지 않은 바였지만 그런 장치가 없이 딸을 여행 보내지 않겠다는 미소 부모님의 만류로 미소와 영찬은 둘만의 조촐한 언약식으로 결혼을 대신했고 양가 부모님들에게 키워준 보답으로 선물과 식사를 준비했다. 물론 영찬과 미소는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다. 아이도 갖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미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채영이가 이번에는 영찬에게 물었다.

“형부는 도대체 그동안 어느 나라를 가 본거야?”

궁금해하는 채영에게 코팅된 세계지도 앞에 서더니 영찬이 혼자서, 때로는 미소와 가보았던 나라에 빨간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채영에게는 낯선 이름의 도시들을 영찬은 밥 먹듯이 편하게 말하면서 속도를 냈다. 도쿄, 런던, 이스탄불, 세비아, 파리, 더블린, 카트만두...... 영찬의 동선을 보면서 미소도 맞장구치듯 거들었다. 함께 한 3년여의 시간이 3분도 안되어 끝나 버렸다. 3년을 내내 해외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자 문제로도 한국에 종종 왔어야 했고, 자유롭게 여행만 즐길만한 여유 자금도 일거리도 없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했던 곳도 있었다. 채영이 부러워하는 것도 잠시, 이제 미소언니 퇴직금도 없고 형부도 사정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살 거냐는 질문을 했다.

영찬이 채영에게 최근에 쓰기 시작한 원고를 보여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꾸준히 올린 블로그를 보고는 출판사에서 우리가 다닌 여행지를 남자의 관점에서, 여자의 관점에서 써보라는 섭외가 들어왔다는 거였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의 여행지 소개를 책 한 권에 넣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미소가 채영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목소리 톤을 높여 이야기를 거들었다. 거기다 경비도 줄이고 여행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들떠 있기까지 했다. 채영이 집에 온 김에 도와줄 일이 있다며 영찬이가 핸드폰을 손에 쥐어주었다. 미소와 영찬을 따라다니며 동영상을 찍어달라는 거였다. 한국에서는 안 먹히는 얼굴인데 외국에서는 뛰어난 미모라며 칭찬이 자자하다는 미소의 말에 하마터면 핸드폰을 놓칠 뻔 한 채영이가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내 집 사용 설명서 동영상을 시작합니다”

미소가 잇몸을 드러내며 인사를 했다. 집 안의 모든 가전은 사용하고 코드를 빼주시고, 한쪽 벽면 옷걸이에 있는 외투를 가리키며 이것들은 필요하시면 입으시고 잘 빨아놓으시면 됩니다. 여기까지 말한 미소가 영찬을 쳐다보며 어떤 말을 더 해야 할지를 묻자 영찬 마무리를 했다.

“저희도 깨끗하게 사용하고 갈 테니, 우리 집에서 편하게 쉬다 가세요!”

채영이 한글과 영어 버전으로 두 개의 동영상을 핸드폰으로 찍었다. 이제는 집 바꿔 여행 가기까지 시도하는 거냐고 묻는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이렇게 여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거기에 덧붙여 심지어 어떤 집에서는 한 달을 보냈다고 했다.

영찬과 채영이 찍은 동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잠시 방으로 들어온 미소가 영찬의 수첩을 열어보았다. 여행을 하면서 해보고 싶은 목록들이 적혀있었다. 영찬의 성격을 알 수 있듯이 거기에는 꼼꼼하게 그날그날의 일을 메모해 두었다. 생활비가 든 수첩을 열어보는 습관처럼 엄지손가락으로 차르르 넘겼다. 자잘한 글씨 중에 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의 목적; 여행. 여행하기 위해 돈을 번다.]

미소가 영찬이와 곧 떠날 여행을 위해 꾸려 놓은 짐을 보았다. 여행이 일상이기에 짐을 싸는 일쯤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영찬이 알차게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게 여행가방 싸는 베테랑이기에 그것은 그의 몫이었다.

미소가 짐을 최소화하려는 영찬에게 들키지 않도록 배냇저고리를 똘똘 말아서 예쁘게 포장을 한 후 생리대 파우치 안에 고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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