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
설민
아픈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가 있다면 당신은 그곳을 방문하겠습니까?
살다 보니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면 내 안에서 희석되고, 동화되고, 때로는 각색되면서 ‘그럴 수도 있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퇴색된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신경 쇠약에 걸려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도 굳이 돈을 들여가면서, 아픈 순간의 기억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하나씩 지워나가는 게 더 곤혹스럽지 않을까, 한다. 영화에서 기억을 지우며 오열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니 더 슬프다.
[이터널 선샤인]은 의외의 배우와 반전으로 신선함을 준다. 헤어진 연인에 관한 이야기를 색다르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코미디 영화의 대명사 격인 짐케리가 소심한 직장인으로,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릿이 기분에 따라 머리를 다채롭게 염색하는 충동적이고 자유분방한 서점 직원으로 나온다.
우선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라니……, 또 그 회사 직원이 맘에 드는 여자의 과거 기억 자료를 훔쳐서 그것을 토대로 데이트하고, 기억을 지우는 기술을 연구하는 박사와의 불륜 사실을 지워가면서까지 그곳에서 근무하는, (결국은 동료에게 그 사실을 듣고 충격에 휩싸여 자신의 회사에서 기억을 지운 사람들에게 상담 내용을 담은 테이프를 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면 ‘어떻게 기발한 발상을 하고 글을 쓸까’, 신기하다. 틀에 벗어난 배우들과 이야기들이 뒤죽박죽인 것 같은 구성이지만, 사람의 의식구조를 따라가는 듯한 연출이 놀랍다.
밸런타인데이!
여느 날과 같은 출근길. 차가 긁혀있는 것을 보고는 화가 치민다. 기차를 기다리던 조엘은 뜬금없이 무엇엔가 홀린 듯 반대편 플랫폼으로 향한다. 회사에 출근 못 한다는 전화한 그가 향한 곳은 몬토크. 그곳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오렌지색 후드티를 입은 파란 머리 여자를 식당에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도 만나게 된다.
내성적인 조엘과는 달리 형형색색의 머리칼을 지닌 무척 활발하고 자유분방한 클레멘타인.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에 기차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둘은 급격히 사랑에 빠진다.
어느 정도 영화가 진행되다가 오픈 멘트가 시작되는 구성 때문에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는가 싶지만, 곧 알게 된다.
다시 기억되는 사랑. 둘 다 기억을 지웠는데도 다시 사랑에 빠지는 조엘과 클레멘타인. 기억은 지워져도 감정은 남아있는 듯하다.
사실 그 둘은 오래 사귀었던 여인이었다.
사랑의 시작! 매 순간이 완벽했지만 결국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자’ 헤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너무나 달라서 끌렸던 부분이 나중에는 참을 수 없는 성격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결국 관계가 끝나게 되자 클레멘타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조엘과의 추억을 지우기 위해 기억 제거 회사를 통해 모든 기억을 삭제하게 된다.
나중에 클레멘타인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이 홧김에 자신 역시 기억을 지우기로 하고 라쿠나사를 찾아간다.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그곳에서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하고 그녀와 관련된 사진이나 물건들을 정리한다.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조엘은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 행복한 기억들, 가슴속에 각인된 추억들을 지우기 싫어지는데…….
당신을 지우면 이 아픔도 사라질까?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그녀의 기억을 지우려고 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추억을 없애기 싫다는 생각에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지워지는 사랑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엘. 지워지는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이 지우기 싫어진다.
라쿠나사에서 보내온 테이프를 들으며 서로의 기억을 왜 지우게 되었는지 알게 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 과연 그들은 그럼에도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될까?
밸런타인데이!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날을 공식화 한 날이다. 굳이 이런 기념일을 챙기지 않더라도 나와 다른 또 한 명의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사랑한다’ 면, 매일이 사랑스러운 날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기본 전제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