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상 없다는데

몸이 보내는 신호는 이유가 있다

by 한지안

검사 결과를 듣는 순간,

안도감보다 절망감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가혹하게 느껴졌을까요.

차라리 어디가 안 좋아서

그런 증상이 나타난 거라고

딱 잘라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주째 증상이 계속되고 있는데

모두 ‘정상’이라니.

마치 내가 과민한 사람, 예민한 사람,

없는 증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로 힘든데, 병이 아니라면 나는 이제 어쩌죠?’

병명 하나 못 얻고 해결책도 없이

‘스트레스성’이라는 애매한 말과

위염약 몇 알을 들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진료실에서 나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마, 나 공황장애인가?’


그 말이 마음속에 맴돌며 커져갔습니다.

신경정신과를 가야 할까…

그전에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서

동네 한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저를 보자마자 한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했습니다.

손끝에 센서를 붙이고,

맥박과 심박리듬을 측정한 뒤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자율신경실조증입니다.”

“자율신경계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어요.”

“지금처럼 교감신경이 항진된 경우엔,

몸이 계속 긴장 상태로 유지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소화가 안 되고,

잠도 잘 안 오고요.”


“이건 뇌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고,

그걸 뇌가 불안으로 해석해서 생기는 반응이에요.”


선생님은 내 상태를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런 상태가 오래되면

몸은 항상 전쟁 중인 것처럼 긴장하게 되고,

그 긴장이 어느 순간 한계를 넘으면

‘지금 죽을 것 같다’는 공황반응이 나타나는 거예요.”


지금껏 내가 겪은 모든 증상에

처음으로 설명이 붙는 순간이었습니다.

딱, 제 증상이었습니다.


항상 뭔가를 해야 하고,

빨리 움직여야 하고,

늦으면 안 될 것 같고,

사소한 변화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던

지난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저는 한약 한 재를 지어 나왔습니다.


그 약이 모든 걸 낫게 해 줄 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회복이 시작된다는 느낌.

그게 조금은 위로가 됐습니다.


아직도 어디가 망가진 건 아닐까,

불안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정말 힘들었던 거구나’

나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회복은

어떤 특별한 결심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