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역할이 하루를 바꾼다
“엄마, 나 내일 우유당번이야. 일찍 깨워줘“
잠들기 전, 아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 어릴 적에도 우유당번이 있었는데,
요즘도 하는가 봅니다.
아이가 뭔가 중요한 일을 맡은 듯한 표정으로 말해서
괜히 웃음이 나면서도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배달의 기수님!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깨를 살짝 으쓱하며
눈빛에 스치듯 비친 책임감이 기특하면서도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습니다.
작은 역할 하나가 아침을 다르게 만들 수도 있구나.
책임을 맡았다는 자부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아이의 걸음에 담겨 있었습니다.
어릴 땐 사소한 역할 하나에도 마음이 들떴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작지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감정을
잊고 지낸 지 꽤 오래되었구나 싶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제 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그동안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감각을 느끼며 일해왔던가?
입사할 땐 분명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일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믿음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일하는 곳은 사람들의 삶과 건강에
직결된 일을 다루는 공공기관이라
더 큰 책임감과 의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마음을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보다
‘오늘도 잘 넘겨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으니까요.
아이는 지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배우고 있는데,
저는 점점 그 감각에서 멀어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제 일도 다시
‘의미 있는 일’로 바라보고 싶어졌습니다.
단순히 버티는 하루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일상에 닿아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번아웃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던 시간을 지나,
일의 의미와 삶의 균형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조용히 깨어난 어느 아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