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고무줄놀이할래? 종이 인형 놀이할래? (상)

은행나무집 주근깨 삐삐 언니

by 홍반의 서재

은행나무집 주근깨 삐삐 언니


요즘이야 인터넷이 워낙 발달해서 어린아이들조차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놀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대체로 고무줄놀이나 종이 인형에게 옷을 입히는 놀이 만으로도 행복해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은 나 역시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컴퓨터를 이용해서 글을 쓰거나, 구글에 접속해 내가 만든 유튜브에 들어갈 영상을 직접 만들거나, 넷플릭스를 즐겨보거나, 혹은 그동안 바빠서 챙겨보지 못한 애니메이션을 한꺼번에 몰아보곤 한다. 영화의 경우는 대체로 유튜브에서 짧은 시간에 몰아보기를 즐기는 편이다.


나 역시도 그러고 있으니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도저히 갑갑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혹시 이런 증상을 중독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미 인터넷 중독 말기 환자임에 틀림없다.


남들은 주말에 산으로 들로 바다로 주로 캠핑을 간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그다지 야외활동은 즐기지 않는 편이다.


가끔 바다가 미친 듯이 보고 싶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집에서 혼자서 노는 걸 즐기는 약간은 오타쿠(?) 기질이 다분한 성향을 가졌다. 그런 성향 탓에 나는 혼자 놀기의 달인(?)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각설하고... 구멍가게 같이 생긴 작은 문방구에서 고무줄을 하나 사면 그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는 개구쟁이 녀석들만 없으면 온종일 뛰어놀 수 있는 가성비가 그야말로 끝장인 놀이가 바로 고무줄놀이였다.


동네에서 안면을 튼 친한 언니 동생들 다 합쳐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을 갈라서 놀아야 하니까 그야말로 팀워크가 절실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두명만 있어도 할 수는 있다. 그럴 때는 전봇대가 필수로 있어야 한다.


웬 고무줄놀이에 거창한 팀워크를 들먹거리느냐고 반문하시겠지만, 고무줄놀이야말로 줄다리기만큼이나 같은 편끼리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한 놀이 중 하나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그러나 조금만 뛰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거친 숨을 헐떡거리는 나에게(구멍가게 눈깔사탕을 사러 가는 것만큼은 예외임) 고무줄놀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시골이라고는 해도 여기도 학교라는 곳이 버젓이 존재했기에 동네에는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언니들과 오빠들도 꽤 많이 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과는 다르게 보통 한 집에 아이들이 네댓 명 정도는 연년생으로 있었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어느 날부턴가 하굣길에 삼삼오오 편을 먹고 고무줄놀이를 거의 매일 하는 언니들이 생겨났다.


집 안 대청마루에 앉아서 이야기책을 읽거나, 혼자서 공기놀이를 하거나,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바둑이와 수탉을 바라보다가 슬슬 좀이 쑤실 때쯤 되면... 기가 막히게 밖에서는 고무줄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언니들의 목소리가 담장을 타고 나의 귓가를 직방으로 때렸다.


그러면 나는 반사적으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에 홀린 듯 신발을 급하게 신고는 앞마당으로 내려갔다.


작았던 나의 키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노쇄해진 늙은 수탉은 더 이상은 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언제나처럼 나의 통통한 종아리를 호시탐탐 노리며 달려오는 수탉을 향해 가소롭다는 미소를 한번 날려주고는 할머니가 하는 것처럼 그놈의 날개를 꽈악 잡고는 잠시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나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화들짝 놀란 수탉은 빌런 체면이고 뭐고 다 벗어던지고 꼬꼬댁~ 꼬꼬댁을 연발하며 죽는시늉을 해댔다.


그러면 방 안에서 재봉틀을 돌리시던 할머니가 대청마루로 나와 나의 모습을 보며 한마디 하셨다.


"늙은 수탉을 왜 그렇게 못살게 굴어? 얼른 놔줘라." 라며 할머니 쪽을 바라보며 애걸복걸하는 수탉의 편을 드셨다.


하지만 나는 바로는 놔주지 않고 몇 초정도 더 그놈의 날개를 꽉 잡고는 "너도 한번 당해봐라. 내가 아팠던 만큼... 앞으로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라며 앞뒤로 살짝만 흔들었다.


그러면 그놈은 할머니를 향해 더욱더 꼬꼬댁 소리를 높이며 자지러지는 시늉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놈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닭대가리와는 차원이 다르게 지능 플레이가 가능한 영악한 놈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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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에 할머니는 "얼른 놔주고 나가지 못해? 말 못 하는 짐승을 왜 그렇게 괴롭혀?" 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셨다.


그러면 나는 마지막으로 수탉을 향해 장난스럽게 미소를 보이다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다음번에도 겁 없이 덤비면 할머니한테 너를 꼭 닭백숙으로 만들어 달라고 할 거야. 알아들었지?"라고 그녀가 전혀 들리지 않게 수탉에게만 조용히 경고를 날린 후 놔줬다.


그러면 수탉은 그 말을 마치 알아 들었다는 듯이 혼비백산해서 걸음아 날 살려라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빌런 수탉을 당당히 제압하고 앞마당의 진정한 제왕으로 군림했다.


아마 수탉에게 있어서 그날만큼은 나라는 존재가 자신의 목숨줄을 꽉 쥐고 쥐락펴락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는 간담 서늘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려서는 맨날 수탉에게 쪼여서 울고불고하던 찌질이 어린 손주가 이제는 키도 커지고 더불어 성격도 예전과는 다르게 왈가닥으로 변한 것이 나름 대견스러우셨던 걸까...?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리다 말고는 이내 활짝 웃으시다가 더 이상은 아무런 말씀도 없이 다시 방 안으로 재봉틀을 돌리러 들어가셨다.


나 역시 재빠르게 밖으로 나가서는 내 눈 바로 앞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언니들의 모습을 잠시 동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 조금 먼발치에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론 땅바닥에 뭔가를 그리는 척하면서도 시선은 온통 그 고무줄놀이에 멈춰져 있었다.


그렇게 매일 같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눈으로 고무줄놀이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여지없이 그 자리에 앉아 그저 부러운 눈빛으로 구경을 하고 있는 내게 또래 중에서도 유독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언니가 나에게 유쾌하게 물었다.


“꼬마야, 너 어디서 살아?”

“나? 나는 라일락 나무집.”


언니의 물음에 대답은 하면서도 금세 부끄러워진 나는 귓불이 새빨개져서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언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유쾌하게 말했다.


“아아~ 네가 그 한복 할머니 손녀구나.”


언니의 한복 할머니 손녀라는 말에 더욱 수줍어진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는 짐짓 딴짓을 하는 척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그 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도 우리랑 같이 고무줄놀이하고 싶어?”


나는 그 언니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격하게 앞뒤로 끄덕거렸다. 언니는 생각지도 못한 나의 열렬한 반응에 웃음을 터뜨렸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기분 좋게 느껴졌다.


잠시 후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던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그럼 얘는 우리 팀 깍두기 어때?”


그러자 한 언니가 눈살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얘를 우리 팀에 넣으면 우리 편이 완전히 질 텐데...!”


그녀의 말에 그 언니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야아~ 지면 어때? 친구끼리... 그냥 재미로 하는 건데 상관없잖아.”


귀를 쫑긋 세우고 쭈그리고 앉아 불쌍한 척 흙을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는 내게 그 주근깨 투성이 언니는 “꼬마야, 거기 앉아 있지 말고 이리 와! 같이 놀자.” 라며 나를 불러줬다.


나는 그토록 기다렸던 같이 놀자는 언니의 말에 기쁜 나머지 용수철 마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던 그 언니네 편으로 슬쩍 스며들어 같이 뛰었다.


역시나 내가 그 팀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실력 차이가 현저히 나서는 그대로 편이 바뀌자 나를 못마땅해하던 언니가 “난 저 꼬마 때문에 재미없어서 안 해, 니들끼리 재밌게 놀아.”라는 말을 툭 건네더니 그대로 고무줄놀이를 관두고 가버렸다.


그러자 다른 언니들도 한창 재밌게 놀던 고무줄놀이에 흥이 완전히 식었는지 다들 빠져나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하나 둘 빠져나가자 고무줄 주인인 그 언니와 나랑만 어색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언니는 굉장히 미안해하며 뻘쭘해하는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명랑하고 쾌활한 어조로 물었다.


“더 놀고 싶지 않아?”


나는 대답보다는 그저 고개만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어댔다. 그러자 언니는 웃으며 고무줄의 한쪽을 전봇대에 묶고는 다른 한쪽 고무줄을 자신이 직접 나의 키보다 낮게 잡고 쭈그려 앉아서는 말했다.


“내가 노래를 하고 있으면 너는 속으로 하나 둘 세엣 세면서 들어오는 거야. 알았지?”


그렇게 그 동네에서 삐삐 언니(언니의 외모가 사실 그 당시 엄청 유행했던 드라마의 주인공인 말괄량이 삐삐를 쏙 빼닮았었기에 삐삐 언니로 칭하려고 함)의 배려로 나는 생전 처음 고무줄놀이라는 것이 정말 재밌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 바둑이랑 안하무인 수탉을 그저 대청마루 위에서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눈을 살짝 감고 향기를 맡는 것, 혼자서 놀이터에서 눈을 살짝 감고 그네를 타는 것,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The others)과 얘기를 하는 것보다 몇 백배는 더 재밌었다.


고무줄을 두고 노래에 맞춰 뛰다 보면 정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아 괴롭기도 했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즐거웠다.


외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처음으로, 또래집단이라기보다는 몇 살 위의 언니였지만, 그 언니로 인해 단조로운 일상이 즐거워졌다.


그때부터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삐삐 언니와 고무줄놀이를 했다. 물론 삐삐 언니가 나랑만 놀아주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편을 먹고 놀다가 얼추 끝나서 친구들이 한둘씩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에 맞춰 늘 그렇듯 고무줄 한쪽을 전봇대에 꼭 묶고는 나머지 한쪽을 직접 잡아주며 내가 즐겁게 놀 수 있게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려 고무줄놀이는 원천 봉쇄된 상태였다. 나는 늘 그렇듯 대청마루에 누워서 온통 뿌연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몸이 근질거렸다.


밖으로 나가봤자 고무줄놀이를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저 대청마루에 몸을 꼭 붙이고는 뭉그적뭉그적 거리며 빨리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때마침 밖에서 그 삐삐 언니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대문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눈을 살짝 감고는 비가 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나를 부르는 삐삐 언니의 목소리가 명확하게 빗속을 뚫고 들려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비를 입고는 신발에 발을 대충 욱여넣었다. 급한 마음에 마당으로 껑충 뛰어 내려가자마자 그대로 대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대문 밖에는 우산을 쓴 언니가 한 손에 든 종이뭉치가 비에 맞을까 봐 품 안에 살짝 집어넣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 집에 가서 인형놀이나 할래?”


나는 처음에는 고무줄놀이가 아니라 인형놀이라는 말에 살짝 실망감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언니와 함께 그 집으로 향했다.


미로 같은 골목골목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니 키가 큰 누런 입의 은행나무들이 족히 서너 그루는 서있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보기에도 집이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삼층집 양옥이었다. 언니는 가지고 있던 열쇠로 대문을 활짝 열면서 내게 말했다.


“들어와, 여기가 우리 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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