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고양이 할멈 구멍가게 (상)

10원짜리 눈깔사탕

by 홍반의 서재

10원짜리 눈깔사탕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작은 동네는 골목이 여기저기 미로처럼 구불구불 생긴 곳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에 집들도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나름 정겨운(?) 시골 동네였다.


밤새 어느 어느 집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육하원칙에 근거해서 제법 상세하게 알 수 있었던 곳...!


그렇다 보니 요즘같이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은 좀처럼 기대할 수조차 없었을 뿐더러 일단 그곳은 자의든 타의든 한번 낙인찍히면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개미 지옥 같은 곳이었다.


장혁.jpg 내 너를 끝까지 주시하리라


그 동네 사람들은 특히나 남의 집일이라면 관심이 몇 배나 더 많아서 그 집에 심지어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도 정확하게 꿰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천만 다행히도 할머니와 나는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을 덜 받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우리 집은 간헐적으로 바둑이가 짖는 소리와 빌런 수탉의 꼬끼오 소리와 할머니의 재봉틀 소리 이외에는 그다지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리가 없었다. 글쎄 재봉틀 소리도 그다지 새어 나갈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전동 모터를 단 오토바이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도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지켜보는 집은 몇 군데 있었다. 대체로 내 또래의 아이가 있는 집이 대다수였지만 말이다.


그중에서도 어린 내가 유독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집은 고양이 할멈 구멍가게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할머니가 주인인 구멍가게라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허름하고 다 쓰러져 가는 작은 구멍가게였지만 안으로 한 발자국만 걸어 들어가면 그곳은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여담이지만 어렸을 적 나의 꿈은 단연 구멍가게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고양이보다는 개를 더 좋아하니까 내가 나이를 먹어 꾸부정한 몸으로 할머니가 돼서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를 팔고 있으면 왠지 아이들 사이에서 개 할멈 구멍가게라고 명명되어 있을 것 같다. "개 할멈 구멍가게" 왠지 임팩트 있고 멋진 듯...!


나의 신세계, 고양이 할멈 구멍가게는 다양한 사탕들과 과자들이 열을 맞춰 알록달록 자태를 뽐내며 진열되어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배가 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간 이상 어떤 것이든 정직하게 사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눈이 빨간 검은 고양이 귀신이 부정을 저지른 그 아이의 어깨 위에 앉아 집까지 따라가서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괴롭힌다는 무서운 괴담이 존재했다.


동네 어른들은 그저 아이들의 말을 우스갯소리로 흘러 넘겼지만 내 또래 아이들에게 있어서만큼은 그야말로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날은 언제나 그렇듯 아침부터 가을비가 겨울을 재촉하듯 음산하게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오늘도 나는 재봉틀을 돌리는 할머니 옆에 가만히 누워 비단에서 나는 냄새를 한껏 맡고 있었다.


그러다 재봉틀을 돌리는데 여념이 없는 할머니의 겉옷 호주머니 속에 가만히 손을 슬쩍 넣어 보니 작은 동전이 만져졌다.


아야~~ 내려놔라, 어디서 밑장을 빼고 있냐~~!

나는 타짜가 능수능란한 솜씨로 밑장을 빼내듯 조심스럽게 그 동전을 꺼내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할머니가 내 얼굴을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비도 많이 오는데 어딜 가려고? 그냥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그러나 나의 마음은 이미 구멍가게에서 눈깔사탕을 사러 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서는 할머니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대로 방문을 힘차게 열고는 대청마루로 나갔다.


나는 얼른 투명한 우비를 꺼내서 몸에 걸치고 신발도 대충 구겨 신은 채로 수탉에게 쪼일세라 급한 마음에 앞마당으로 나가 대문을 힘겹게 열었다.


대문 밖을 나서자마자 곧장 고양이 할멈 구멍가게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도착해서 그 앞에 있는 허름한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니 주인 할멈은 온 데 간 데 없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만이 어슬렁어슬렁 그 가게 안에서 순찰을 돌 듯 꼬리를 잔뜩 세운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가 제법 신경 쓰였지만 형형색색 눈깔사탕을 보자마자 그 고양이의 존재는 새까맣게 잊은 채 가지고 있던 돈에 맞춰 사탕을 집어 작은 손바닥 위에 올렸다.


하나 두울 셋넷다섯... 내가 쥐고 있던 동전으로 살 수 있는 개수를 몽땅 집은 나는 다른 사탕 하나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내가 살 수 있는 양은 다섯 개까지고 그 이상은 가질 수 없는 걸 알았음에도 그날따라 욕심이 앞섰다.


나는 할멈이 없는 틈을 타서 그 사탕 하나를 내 주머니 속에 쏙 감췄다.


그러자 나의 그 은밀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검은 고양이가 갑자기 내 주머니를 쳐다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참 소름 끼치긴 했지만 나 역시 그 사탕을 포기할 수가 없어 그냥 모른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잠시 후 고양이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던 구멍가게 주인 할멈이 불편한 다리를 끌고는 가게 안에 붙어 있던 작은 간이 방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요년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성가시게 소리를 지르고 싸돌아 다녀. 조용히 좀 해, 요년아.”


그러더니 나를 싸한 눈빛으로 째려보며 말했다.


“눈깔사탕 다섯 개야? 맞아?”


나는 할머니의 히스테릭한 말투에 침을 한번 꼴깍 삼킨 후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돈 내고 가. 오십 원.”


말을 마치자마자 할머니는 엄지손가락이 굽어 펴지지 않는 손을 내게 불쑥 내밀며 다시 한번 물었다.


“다섯 개만 산거 맞지?”


재차 확인사살까지 하며 묻는 할멈의 물음에 뒤가 심히 켕겼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할머니의 손바닥에 오십 원을 잽싸게 올리고는 손바닥에 있던 눈깔사탕 다섯 개를 바지 호주머니 속에 그대로 욱여넣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뛰어서 집에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에 우비도 벗지를 못하고 그대로 대청마루에 털썩 주저 앉아서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바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머니의 주머니 속에 있는 동전을 소리 소문 없이 꺼내서는 그 돈으로 동네 구멍가게에서 눈깔사탕 다섯 개 말고도 돈을 지불하지 않은 사탕 하나를 더 몰래 들고 나왔던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올바르지 못한 일을 연속적으로 두 번이나 한 탓에 심장은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한편으론 뭔가 걸리지 않았다는 묘한 쾌감이 아드레날린처럼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래서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라는 속담이 생겨났나 보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는 거리낌없이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 넣어 둔 사탕 하나를 입안에 넣고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재우려 애썼다.


역시나 달디 단 사탕이 입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두근거림은 이내 간질간질함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잔잔하게 쏟아지던 가을비가 이내 소나기처럼 세차게 퍼붓더니 금세 마당에 물웅덩이들을 곳곳에 만들기 시작했다.


비가 갑자기 세게 내리치자 놀란 개들은 제집으로 급하게 몸을 쑤셔 넣고는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그러나 바닥에 톡톡톡 튀기는 빗방울들이 간헐적으로 코에 튕겨 간질이는지 제 발바닥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쓸어내리기에 바빴다.


또한 집 앞마당에서 놓아 키우던 수탉과 암탉들 역시 비를 피해서 지붕이 있는 곳으로 몸을 피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비를 피하는 게 나름 힘들었는지 기세 좋던 수탉은 떨어지는 빗소리에 맞춰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평소 같으면 기세 좋게 나를 쫓아다니며, 징징대면서 도망 다니기에 여념이 없는, 나의 작은 종아리를 콕콕콕 부리나케 쪼았을 텐데... 거세게 내리는 빗줄기에는 자신의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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