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거지 아저씨 (하)

홍연의 붉은 실

by 홍반의 서재

홍연의 붉은 실


눈빛이 잠시 흔들렸던 것도 잠시...!


그날 이후로 아저씨와 할머니와 나는 한 지붕 아래서 살게 됐다.


아저씨는 할머니 말씀대로 깨끗하게 씻고 이발소에서 단정하게 이발도 하고 덥수룩하던 수염도 말끔하게 깎았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손수 장을 보러 가서 사다가 건네 준 옷들을 몸에 걸친 아저씨는 그야말로 부드럽고 멋진 남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 거지 아저씨가 이 남자 맞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참으로 말끔하게 잘생기고 곱상한 외모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아저씨는 집에서 한복을 짓느라 바쁜 할머니를 대신해 장을 봐 오거나 집안을 청소하거나 두꺼운 이불 빨래를 하거나 장독을 옮기거나 의뢰한 집에 다 만들어진 한복을 배달해 주는 일들을 도맡아 했다.


대신 요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삼시세끼 할머니가 직접 하셨다. 그 아저씨를 위한 할머니 나름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저씨는 일도 잘하고 재주도 비상했다. 전구란 전구는 다 갈아 끼우고 선반이 필요하면 나무들을 어디선가 잔뜩 주워와서 뚝딱뚝딱 망치질을 하고 니스질을 하며 멋들어지게 만들어 냈다.


또한 아저씨는 아침마다 암탉이 밤새 낳아 놓은 분뇨가 덕지덕지 묻은 달걀을 꺼내서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할머니와 나를 위해 맛있는 계란 프라이도 만들어 줬다.


장을 보러 나갔다가 잘디 잔 딸기를 사 온 날이면 어김없이 딸기잼을 만들어 내게 맛을 보라며 먹여줬다. 나는 지금도 아저씨가 만들어 준 그 달달한 딸기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일을 하던 중간중간 짬짬이 시간을 내서 나를 위해 손수 작은 책상과 의자도 만들어 줬다. 그리고 바둑이를 위해서는 개집도 조금 더 큰 사이즈로 증축해서 자라나는 새끼들이 마음껏 제 어미와 살을 비비고 살 수 있게끔 개조를 했다.


페인트도 직접 사다가 내가 좋아하는 하늘색으로 쓱쓱 칠한 후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니스질을 두어 번 더 했다.


그러자 우리 바둑이 집이 금세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집(말하자면 칠성급 개 호텔 정도)으로 탈바꿈했다.


바둑이는 아저씨의 손에서 볼품없던 제 집이 멋들어지게 만들어지자 기분이 좋은지 아저씨를 향해 "왈왈" 짖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기에 바빴다.


갑자기 바둑이가 아저씨에 대한 호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자 저 멀리서 아저씨를 경계하며 늘 일정 거리를 유지하던 빌런 수탉이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며 바둑이와 아저씨 곁으로 한 발짝 두 발짝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러나 바둑이는 이미 자신과 새끼들이 같이 살 집을 멋지게 만들어준 이 멋진 아저씨에게 큐피드의 화살을 직방으로 맞은 사랑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수탉은 사랑에 빠져 눈에서 하트를 연신 발사하고 있는 바둑이의 주위를 기웃거리며 굉장히 심사가 뒤틀리는지 자신의 부리로 흙바닥을 사정없이 콕콕콕 찍으며 연신 화풀이를 해댔다.


한편 내가 앞마당에서 늘 수탉에게 종아리를 사정없이 쪼여 노이로제가 단단히 걸려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아저씨는 수탉이 무서워 아저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숨어있던 나를 번쩍 들어서 무등을 태워주며 말했다.


"이러면 하나도 안 무섭지...?"

"응. 하나도 안 무서워, 아저씨."


나는 아저씨의 무등을 타고는 바다같이 새파란 하늘 위로 짧은 팔을 쭉 뻗고는 그대로 흔들었다.


나도 이다음에 아저씨만큼 키가 컸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저씨 키 높이에서 보는 하늘이 더 푸르고 예뻐 보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건넸다.


"하늘이 참 바다같이 예쁘지 않아?"

"응. 하늘 바다 너무 예뻐."

"그럼 아저씨가 무등 말고 하늘 높이 비행기 태워 줄까?"

"응, 나 그 비행기 타고 싶어, 아저씨."


아저씨는 나의 대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바닥에 잠시 내려놓았다가는 양손으로 나의 겨드랑이를 잡고 번쩍 들고는 비행기를 태워주듯이 앞으로 뒤로 앞다갔다 공중에서 흔들어 줬다.


기분이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진 나는 눈을 꼭 감고 하늘에 간절하게 기도했다.


"아저씨가 영원히 나랑 같이 살게 해 주세요..!"






아저씨는 장을 보러 나갈 때마다 서점에 들러 자신의 책을 사면서 나를 위한 이야기책을 한 두 권씩 매번 사다 주곤 했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을 내서 내게 재미난 옛날이야기도 해주고 이야기책도 읽어주고 글자도 가르쳐 줬다.


그러면 나는 그 내용을 속으로 달달달 외워서는 할머니 앞에서 보란 듯이 책을 읽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혼자서도 진짜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돼서 날마다 큰 소리로 할머니 앞에서 책을 읽어드리고는 크게 칭찬을 받았다. 아저씨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한글을 빨리 깨쳤다.


대체로 날씨가 화창한 날은 내 손을 꼭 잡고 장도 데리고 가서 꽈배기도 사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잠시 잠깐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놀이터에 데려가서 뒤에서 살살 그네도 밀어주고 시소도 태워줬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항상 잊지 않고 앞마당에 있는 우리 집 바둑이와 새끼들, 닭들도 굶기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렇게 하루해가 지면 본격적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저씨는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촘촘하고 밀도 있게 쓰는 사람이었다.


왜 그런 아저씨가 거지 행세를 하며 이 집 저 집 밥을 빌어먹으러 다니며 그런 천덕꾸러기 같은 대접을 받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아저씨는 무엇을 하든 크게 성공할 사람같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지금 같았으면 모델을 하든 배우를 하든 뭐를 해도 성공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비주얼도 좋고 키도 컸으니까...!


내 눈에 아저씨는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님처럼 멋져 보였다.


나와 아저씨의 모습을 장터에서나 혹은 놀이터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아저씨는 금세 나의 친아빠로 둔갑해 있었다.


동시에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미남 그레고리 팩을 쏙 빼닮은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뒤에서 남 흉보기를 즐겨하던 아줌마들 사이에서도 아저씨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저녁 반찬을 하기 위해 장을 보러 나왔다가 아저씨와 눈이 한 번이라도 맞은 아줌마들은 금세 아저씨에 대한 강한 호감을 드러내며 팬이 됐다.


여담이지만 그때 이 아저씨에게 물을 뿌리고 소금을 집어던지며 욕을 하던 그 심술쟁이 아줌마 역시 아저씨의 팬이 돼서 눈이라도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굴이 새빨개져 부끄러워했다.


아마도 이 아저씨가 자신이 물을 뿌리고 소금으로 마무리했던 그 거지 아저씨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참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알 것도 같다.







그렇게 정확히 2년이 흐른 그날...!


결과가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아저씨는 한통의 전보를 받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던 아저씨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울고 있는 아저씨를 위해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 아스피린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


"아저씨 어디 아파? 이거 먹어." 라며 아스피린을 쥔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며 "아저씨 하나도 안 아파, 그냥 기뻐서 우는 거야."


나는 아저씨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 말고 "아저씨, 기쁜데 왜 울어? 아프지도 않으면서..."


방 안에서 재봉틀을 돌리던 할머니는 나와 아저씨의 얘기를 듣다 말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저씨는 사시에 패스했다며 할머니에게 그 자리에서 넙죽 큰 절을 올리며 숨죽여 울었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울기만 했다. 할머니는 바닥에 머리를 숙이고 하염없이 울고만 있는 그 아저씨를 일으켜 세우며 두 손을 꼭 부여잡고는 합격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만 연신 하셨다.


주경야독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를 하던 아저씨는 사시를 패스한 후 서울로 올라가서 그토록 바라던 변호사가 됐다.


아저씨는 매번 잊지 않고 할머니께 언제든지 좋으니 한번 자신의 사무실로 놀러 오시면 극진한 대접을 해 드리고 싶다고 전보를 보냈다.


나에게만큼은 전보 대신 예쁜 편지지에 손수 글을 써서 추신에는 "늘 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말을 써서 편지를 보내주시곤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그 변호사 아저씨의 전보에 답도 하지 않으셨고 더욱이 찾아가지도 않으셨다.


전생에 걸쳐 꼬인 인연의 매듭이 아주 잘 풀렸으니 그걸로 됐다고 만족해하셨다.


그걸로 우리 할머니와 그 아저씨와 나의 인연은 이렇게 시원섭섭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이후로 동네에서는 한복 할머니 집 밥을 먹으면 반드시 사시에 합격한다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며 몇 년째 시험에 낙방해 시름에 겨워하던 만년 고시생들이 하숙을 하고 싶다며 알음알음 연락을 해왔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고시생들의 제안을 모두 다 거절하셨다. 사실 할머니는 엄마가 어렸을 적에 청상과부가 된 후 먹고 살길이 막막해 서울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주로 인근 대학의 법대생들을 위주로 받았었는데... 할머니 밥을 먹던 학생들의 대부분은 사시에서 좋은 성적으로 패스해서 판, 검사가 꽤나 많이도 나왔었다고 엄마가 자랑스럽게 말해주곤 했다.


그러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더 이상은 하숙생을 받지 않고 시골로 내려와 그저 재봉틀을 돌리며 동네 사람들이 의뢰한 한복을 지어주는 일들만 도맡아 했다.


그러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 거지 아저씨의 비범한 눈빛을 보며 내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마지막으로 법조인을 만들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결국 그 아저씨는 할머니의 밥을 먹고 법조인이 된 마지막 케이스가 되었다.


아마도 귀인이 있다면 그건 우리 할머니 같은 분이 아닐까...?


정작 본인은 전생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홍연의 매듭을 드디어 끊어낸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셨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할머니는 그 아저씨를 보자마자 단박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의 직감 하나만을 믿고 진심으로 믿어 주었던 유일한 단 한 사람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과연 나는 그 어느 누구에게 이렇게 멋지고 향기 나는 귀인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며 이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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