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도깨비와 땅콩엿

하나만 주면 안 잡아가지

by 홍반의 서재

하나만 주면 안 잡아가지


“얘야, 그거 하나 주면 안 잡아가지.”

“너만 맛있게 먹지 말고 나한테 하나만 줘봐.”

“그거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늘 정월대보름 부럼을 하고 남아서 처치곤란인 땅콩으로 할머니가 엿을 만들어 주신 날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내게 엿을 달라며 보채는 그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안 잡아 가지."로 회유하듯이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약이 오르는지 "안 잡아먹지."로 싸한 으름장을 놓던 그것...!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제 얼굴보다 큰 도깨비감투를 쓰고 나타나는 내 또래의 아이였다.


혹시라도 아이라고 하면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을 연상하실까 봐 정정해서 말하자면 아이의 영혼을 가진 도깨비였다.


그날도 나는 늘 그렇듯 수탉에게 무방비로 쪼이는 게 싫어 대청마루에 한가롭게 앉아 치아에 쩍쩍 달라붙는 달디 단 땅콩엿을 쪽쪽 빨아먹으며 마당이 제 집인 양 활보하는 수탉을 언짢은 마음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무언가 쓰윽 다가오며 귓가에 대고 말을 걸어왔다.


“얘야, 그거 하나 주면 안 잡아가지.”

“너만 먹지 말고 나한테 하나만 줘봐.”

“그거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내게 살며시 다가와 엿을 달라고 밀당을 시도하던 건 다름 아닌 도깨비감투를 쓴 그 놈이었다. 나는 할머니 집에서 엄청나게 키가 큰 검은 형체를 본 이후로는 시도 때도 없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보기 시작했다.


흔히들 말하는 [ 영안이 트였다 ]라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섭고 공포스럽게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면역이 되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어린 마음에도 그냥 나는 우리 외할머니를 닮아서 그런가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내 옆에서 엿을 달라고 은근히 수작질을 떨고 있는 얘도 말로만 무서운 도깨비감투를 썼지, 실상은 나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왜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도깨비가 그렇게 낯설거나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나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친구 같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땅콩엿을 맛있게 오물거리는 내게 그것은 하나만 달라며 은근슬쩍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모른 척, 전혀 안 들리는 척을 하며 그것이 보라는 듯이 입안에서 쪽쪽 소리를 더욱 크게 내며 맛있게 먹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그 어린 도깨비는 약이 바짝바짝 오르는지 잔잔한 앞마당에 일순간 휘익하며 차디찬 바람과 함께 뿌연 모래바람을 일으키면서 “두고 봐,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다."라는 말만을 내뱉고는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그러면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먹고 있던 걔 중에서 가장 두툼한, 땅콩엿 하나를 은근슬쩍 도깨비가 앉아 있던 자리에 슬쩍 내려놓고는 그대로 대청마루 바닥 위에 드러누워 눈을 감고는 잠이 든 척을 했다.


그러면 어느샌가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엿을 할짝할짝 핥아먹는 소리가 내 귓가에 잔잔하게 들려왔다. 역시 도깨비감투는 쓰고 있어도 아이는 아이였나 보다.


나처럼 달달한 엿을 대놓고 좋아하는 걸 보면...!


그렇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땅콩엿을 나누어 먹은 다음 날부터 그것은 심심하면 나타나 내게 엿을 맡겨놓은 것도 아니면서 빨리빨리 달라고 보챘다.


일 년 내내 엿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만약 집에 땅콩엿이 떨어지는 날이면 구멍가게에 가서 형형색색 눈깔사탕을 사 와 먹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고는 그 도깨비감투를 쓴 어린아이 영혼에게 슬쩍 내어주곤 했다.


그러면 또 맛있다는 듯이 할짝거리며 날름날름 혀로 맛있게 핥는 소리를 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밤을 새워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할머니에게 신이 나서 달려가 잔뜩 흥분이 고조된 어조로 “할머니, 나 친구 생겼다.” 라며 즐겁게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게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왜 그놈이 땅콩엿을 더 만들어 달라고 하던?”


“아니 그건 아닌데... 걔는 나랑 똑같이 단걸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래? 그럼 또 만들어 줄 테니 사이좋게 나눠 먹어.”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같으면 그런 존재를 꺼리시던 할머니가 그 도깨비감투를 쓴 아이에게만큼은 인자한 어조로 사이좋게 나눠 먹으라는 말까지 남기셨다.


본래 도깨비는 변덕이 무지하게 심하고 심술궂어서 언제든지 심사가 뒤틀리면 인간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늘 들어서 도깨비라는 놈은 성깔 한번 더럽게 나쁜 놈이구나를 익히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게 그냥 그 도깨비감투를 쓴 아이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만을 하셨다. 아마도 절대 내게 해를 끼칠 영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셨던 분이었으니까...!


어쨌든 집에 늘 단 땅콩엿이 떨어지질 않으니 그 도깨비감투를 쓴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놀러 왔다.


놀러 왔다기보다는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엿을 먹으러 왔다는 표현이 더 그럴싸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으로 와서 땅콩엿을 맛있게 먹던 그 도깨비 아이는 어느 날부턴가 드문드문 오더니 뭐가 그리도 바쁜지 잘 오지 않았다.


대청마루 위에 앉아서 무료함을 달래며 온종일을 기다려 봐도 그것은 도무지 올 기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땅콩엿이라면 환장을 하던 그 도깨비가 더 이상은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왠지 모를 서운함과 섭섭함에 지쳐가던 나는 더 이상 땅콩엿을 먹지 않게 되었다.


사실은 단 것을 늘 입에 달고 살아서 몇 군데 충치가 생겨 아팠기 때문에 먹지 않게 된 것뿐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봄의 기운이 완연하던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며 보기 드물게 새빨간 저녁노을이 짙게 깔린 예쁜 하늘을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감상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쓰윽 나타나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땅콩엿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나는 그 도깨비의 목소리에 반가운 마음이 컸지만 그냥 안 들리는 척 안 보이는 척 그저 팔짱을 끼고 저녁노을만을 그대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잠자코 옆에 앉아 나의 동태를 살피던 도깨비는 처음으로 인간처럼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그동안 잘 지냈어...?”

“......”

“나는 잘 지냈는데...!”

“......”


전혀 대꾸를 하지 않는 나의 태도에 살짝 기분이 상했는지 그 도깨비는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그 도깨비가 더 이상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늘 눈깔사탕 두어 개와 먹지 않아 눅눅해진 땅콩엿을 새하얀 가제 손수건에 겹겹이 싸서 바지 호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늘 또래 친구가 없어 혼자서 외로웠던 내게 은근슬쩍 다가와 수작을 부리는 그 도깨비 아이를 나는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얼른 호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고는 때가 묻은 가제 손수건을 꺼내 안에 들어 있던 눈깔사탕과 땅콩엿을 꺼내서는 말없이 내 옆에 앉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그 도깨비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손만 쭉 뻗어 자리에 넌지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도 잘 지냈지. 어서 이거 먹어. 네가 좋아하는 땅콩엿.”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색함이라고는 다 집어던진 도깨비가 땅콩엿을 맛있게 으드득 깨무는 소리에 이어 바로 오도독오도독 씹어먹는 소리가 들렸다.


‘왜 예전처럼 할짝할짝 핥는 소리가 나지 않고 오독오독 깨무는 소리가 나는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돌려 옆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도깨비감투를 쓰고 나타났던 그 작은 아이 대신 나보다 한 서너 살은 많아 보이는 덩치가 좀 커진 남자아이가 도깨비감투를 쓰고는 그 땅콩엿을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내며 깨물어 먹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놀란 표정을 감지했는지 땅콩엿을 깨물어 먹던 것을 잠시 멈춘 그 도깨비가 내게 반은 농담조로 그러나 그 반은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나랑 같이 갈까? 여기서 심심하게 있지 말고?”

“어디로...?”

“내가 사는 곳으로... 어때?”

“내가 가면 우리 할머니는?”

“그야...”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땅콩엿을 바라보던 그 도깨비가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나랑 같이 갈까? 아주 재밌는 곳으로...?”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나는 그 말뜻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며 강한 거절 의사를 표시하며 말했다.


"내가 가면 우리 할머니가 슬퍼하니까 안돼."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땅콩엿을 바라보던 도깨비는 그 엿을 마저 오도독 소리를 내며 씹어 먹고는 내게 그동안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고마웠다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그 도깨비가 사라지고 난 후 나는 이름 모를 들꽃이 반지 모양처럼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도 “이게 웬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야?”라고 반문을 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날 하마터면 도깨비 신부가 돼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뻔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헛헛한 마음에 그 들꽃을 들고는 대청마루에서 일어나 재봉틀 질에 여념이 없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없이 보여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짓다 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그놈이 내 강아지를 엔간히 맘에 들어 한 모양이구나."


“으응...? ”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얼떨결에 대답하는 내게 할머니는 아주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도깨비는 변덕이 심하기도 하지만 보은을 잘하기도 하는 존재거든.”

“정말...?”


흥미롭게 눈빛을 반짝거리며 되묻는 내게 할머니는 아주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그럼. 그러니 그놈이 네가 심심할까 봐 데리고 가려고 했던 게지.”

“그게 뭐야?”


나는 할머니의 말에 조금은 실망했다는 듯이 아주 시큰둥한 어조로 답했다.


하마터면 우리 귀여운 손주가 도깨비 신부가 될 뻔했구나. 뭐어... 언젠가 다시 한번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러 오긴 할 텐데... 그게 언제가 될는지는 내가 장담을 할 수가 없어서..."


"그럼 또 와서 같이 가자고 나한테 막 조르면 어떡해?"


나는 할머니에게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걱정스럽게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유쾌하게 웃으며 한마디 툭 건넸다.


"그럼 그때는 따라가서 재밌게 놀다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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