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태어나서 생전 처음으로 양심에 꺼리는 행동을 한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미신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날 밤부터 눈이 새빨간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의 꿈속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섬뜩한 모습을 한 고양이는 누워서 자고 있는 내 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야오옹~ 야오옹~”하는 소리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질렀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했던가...?
나는 도둑질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 눈은 뜨지도 못하고 더욱 꾹 감은 채 이불을 머리 꼭대기로 잡아끌어 올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검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울부짖음으로 바뀌던 그 찰나...!
나의 심장은 그야말로 공포감에 요동을 치다 못해 터져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검은 고양이의 존재 자체는 내 주위의 영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섬뜩한 공포감을 선사해 주기에 충분했다.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검은 고양이 꿈을 꾼 나는 점점 죄책감으로 낯빛이 흙빛이 되어 갔다.
‘역시 구멍가게에서 눈깔사탕 하나를 슬쩍 가져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검은 고양이로 인해 밤마다 벌벌 떨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하자 안색이 점점 초췌해지며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런 나를 할머니는 걱정이 한가득한 눈빛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으셨다.
아마도 내가 이실직고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기를 내심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매일 밤 찾아와서 울부짖는 검은 고양이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아서 할머니에게 울면서 두 손을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다.
“할머니... 쿨쩍... 내가 저번에 할머니 호주머니에서 몰래 돈을 가져가서 구멍가게에서 눈깔사탕을 샀는데... 쿨쩍... 그런데 하나를 몰래 훔쳐서 주머니에 넣어서 왔는데... 쿨쩍... 근데 검은색 고양이가 우리 집에 따라와서는 밤마다 나를 괴롭혀~~~ 쿨쩍..."
나는 코를 잔뜩 먹은 코맹맹이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소리 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 자신이 죄책감에 휩싸여 검은 고양이에게 완전히 먹혀버릴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
평소 같으면 거짓말이나 도둑질에 엄격하게 체벌을 하셨던 할머니 성격에, 하긴 체벌이라 해봐야 내 작고 볼록한 이마에 당신의 손가락을 살짝 댔다 빼는 딱콩 한 번 정도가 다였지만, 나의 꼴이 말이 아니었는지 그저 인자한 얼굴 표정으로 나를 꼭 끌어안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남의 물건을 가지고 싶다고 돈도 지불하지 않고 마구 가져오면 안 되는 걸 알겠지?”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가제 손수건을 들고 나의 작은 얼굴을 쓱쓱 닦아주신 후 말씀하셨다.
“그러면 지금 당장 구멍가게로 들어가서 눈깔사탕 하나 값을 제대로 계산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와!”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한동안 어깨를 들썩거렸다.
할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 나는 마당으로 나가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서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돼서 찐득찐득한 얼굴을 벅벅 문질러 닦았다.
평소 같으면 씻는 둥 마는 둥 고양이 세수를 하는 걸 즐겼지만 지금은 고양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쳐 나름 열심히 비누칠을 하며 얼굴을 정성껏 씻었다.
보통 때 같으면 나와 눈만 마주치면 득달같이 달려와 나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쪼아대며 기세 등등하게 공격하던 빌런 수탉이 그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오늘따라 내게 다가 올 생각 자체가 없어 보였다.
왠지 내 옆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이는 것처럼 나와는 눈을 아예 마주치지도 않고 그저 개집 주위만을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기에 바빴다.
나는 수탉의 그런 모습이 참 별일이다 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그러기에는 지금 당장 풀어야 할 무거운 숙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수를 마치자마자 할머니가 주신 동전을 가지고 그 구멍가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가서 그 할멈의 서슬 퍼런 얼굴을 마주하면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렇게 한걸음 두 걸음 힘겹게 고양이 할멈 구멍가게 앞에 도착했지만, 선뜻 용기를 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꿈속에서 검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그대로 허름한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는 안으로 총총히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고양이 할멈은 마치 지금까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한마디 툭 건넸다.
“빨리도 왔네. 계산도 안 한 눈깔사탕 하나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주머니에 쏙 넣고 간 후에 우리 집 고양이가 밤마다 안 찾아갔누?”
나는 그 할멈의 말에 손에 꽉 쥐고 있던 동전을 불쑥 내민 후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아앙~~ 잘못했어요! 다시는 도둑질 안 할게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자신의 눈앞에서 잘못했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고양이 할멈은 이내 인자한 눈빛으로 바뀌더니 난생처음 들어보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이제는 사탕이 탐이 난다고 그냥 막 가져가지 말고 말을 해. 언제든지 외상으로 해 줄 테니까... 알겠지?”
“네에~~ 아앙~~~”
계속해서 서글프게 흐느껴 우는 내가 꽤나 안쓰러웠는지 고양이 할멈은 진열장에 비치되어 있는 분홍색 눈깔사탕 하나를 나의 입안에 쏙 넣어 주며 말했다.
“이거 그냥 줄 테니까 뚝 그쳐라. 아가야!”
구멍가게 할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대체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건지 그녀의 옆에는 검은색 고양이가 누워서 할멈의 다리에 제 몸을 비비며 개냥이 마냥 애교를 떨고 있었다.
그런 고양이를 한동안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던 할멈이 말했다.
“너도 그러지 마. 아이가 눈깔사탕 하나 몰래 가져갔다고 그렇게 밤마다 찾아가서 괴롭히면 되누? 요년이 아주 요망스러운 년이야! 명물 중에서도 최상급 명물이지.”
말을 마친 할멈은 자신의 옆에서 눈물을 닦으며 사탕을 맛있게 오물거리고 있는 나를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요 검은 고양이 년이 눈에 보이는 거지?”
나는 고개를 격하게 앞뒤로 끄덕이며 “네에~~ 밤마다 저를 찾아와서 괴롭혔어요. 훌쩍”
“그랬겠지. 요년이 언제부턴가 나타나서는 우리 집 구멍가게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나는 사실 그 말뜻의 의미를 그때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그냥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 할멈이 이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툭 던졌다.
“너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 아이구나. 요년도 사실 네 눈에는 안 보이는 게 정상인데 말이야.”
말을 마친 고양이 할멈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나를 바라보며 그저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그날 그렇게 고양이 할멈 구멍가게를 다녀온 이후로 새빨간 눈동자를 번뜩이던 검은 고양이는 더 이상은 나의 꿈속을 찾아오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나는 두발을 쭉 뻗고 기분 좋게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역시 죄를 짓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무섭고도 값진(?) 경험이었다.
그 사건이 슬슬 내 기억 속에서 빛바랜 사진처럼 잊힐 무렵 나는 고양이 할멈에 관한 흉흉한 소문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 소문인즉슨... 그 구멍가게 고양이 할멈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자신의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고양이가 신경통에 좋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철석같이 믿고는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검은색 길고양이들을 전부 먹을 것으로 가게 안으로 유인해 모조리 잡아서 싹 다 보약으로 만들어 먹어치웠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갑자기 뱃속에서부터 토악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그 집에서 즐겨 사 먹었던 총천연색 눈깔사탕들이 내 뱃속에서 모두 다 검은색 길고양이들의 눈깔로 변해서는 나의 식도를 타고 올라올 것만 같은 싸한 느낌에 속이 미식미식하다 못해 울렁거렸다.
그 구멍가게에서 그동안 쭉 봐왔던 그 검은 고양이의 실체가 실은 할멈의 손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고양이 영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눈에 그 검은색 고양이는 살아 있는 고양이들과는 별반 다르지 않게 아주 총 천연색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 년이 지난 습하고 꿉꿉한 여름날 밤...!
고양이 할멈 구멍가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누전으로 화마에 휩싸여 시커먼 재만 남았다.
동네 사람들 말을 빌리자면 그 가게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은 마치 할멈이 고양이 수 십 마리에 둘러싸여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형상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 검은 고양이는 구멍가게를 지키는 파수꾼인 척하다가 결국 할멈에게 억울하게 죽은 길고양이들의 원혼을 대신해 한을 풀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했던 신성스런 동물령이 아니었을까...?
더 기이한 사실은 구멍가게가 타서 재가 되고 남은 자리 그 어디에도 고양이 할멈의 뼛조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그 고양이 할멈은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
혹시 사람들이 본 화마 속 괴이한 형상처럼 자신이 죽인 수많은 고양이들의 원혼에 꽁꽁 묶여 산채로 지옥으로 끌려간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