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이 살아 있는 거지 아저씨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시골 동네는 유독 비렁뱅이 아저씨들이 쪽박을 허리춤에 차고 많이 돌아다녔다.
요즘 말로는 비렁뱅이보다는 차라리 노숙자라는 표현이 더 잘 맞아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일정한 주거지 없이 누더기 옷을 몸에 걸치고 머리는 까치가 집을 지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덥수룩한 데다가 비듬으로 새하얗게 뒤덮인 머리에서는 당장이라도 이가 후드득 쏟아질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늘 일정한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나타나 동네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배회하며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거지 무뢰배 집단이었다.
그들은 동네에 내려와 집집마다 밥을 구걸하러 다니면서도 부끄러워하거나 전혀 계면쩍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뿐인가...? 뻔뻔하기는 아주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얼굴에 철판을 대여섯 장은 깔고 다녔다.
그런 그들에게 아줌마들이 밥을 주지도 않고 싫은 소리라도 할라치면 걸쭉하고 끈끈한 욕지거리를 난무하며 선빵을 날렸다가 심지어 제 분에 못 이겨 대문짝이 떨어져라 발로 뻥뻥 뻥 걷어차기도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새벽녘에 웬 오물을 가져다가 그 집 대문 앞에 사정없이 뿌려대며 깡패 불한당 같은 짓들을 서슴지 않고 일삼고 다녔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거지 아저씨만큼은 다른 불한당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엄청나게 초라한 행색과는 다르게 키도 큰 데다가 눈빛은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거지 행세를 하는 걸 봐서는 확실히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긴 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다른 거지 아저씨들과는 다르게 늘 혼자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주머니들에게 늘 얼굴이 붉어져 뻘쭘해하며 밥을 구걸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 아저씨는 느지막이 동네에 내려와 밥을 빌어먹으러 다니면서도 절대로 겨드랑이 사이에 낀 두꺼운 법전을 내려놓는 일이 없었다.
집집마다 대문을 살살 두드리며 “아주머니, 찬밥이든 쉰밥이든 좋으니 남는 게 있으면 좀 부탁드립니다.” 라며 문을 두드렸다.
그러면 집 안에서 잠자코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심술궂은 아주머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문을 활짝 열어서는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냅다 그 아저씨에게 가차 없이 뿌리며 욕지거리를 해댔다.
“원 아침부터 재수가 없게... 어디서 빌어먹을 소리나 하고 자빠졌어. 냉큼 내 집 앞에서 꺼져. 역겨운 냄새 풍기지 말고.”라는 말과 함께 다른 한 손에 꼭 쥐고 있던 굵은소금을 그 아저씨의 면상에 대놓고 뿌리며 불쾌해했다.
그러면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이며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평소처럼 이른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나의 손을 잡고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손주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한없이 자상하게 웃던 할머니는 허우대가 멀쩡한 남자가 밥을 구걸하다 봉변을 당하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는 마음이 많이 언짢았는지 그 심술궂은 아줌마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주기 싫으면 그냥 안 주면 될 것이지, 뭘 그렇게 물을 뿌리고 그 위에 소금까지 뿌리고 그러는 거요. 아줌마는... 그렇게 살지 말고 베풀면서 살면 좀 좋아요?”
우리 할머니의 역정 어린 소리를 들은 심술쟁이 아줌마는 기분이 나쁜지 입을 씰룩거리며 대꾸는 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대문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쾅 닫았다.
할머니의 당당한 모습에 거지 아저씨는 그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자신의 편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듯이 인사치레를 하는 것만 같았다.
무뢰배 비렁뱅이 무리들과는 결이 무척이나 다른 아저씨의 바른 행실이 맘에 들었는지 할머니는 그 아저씨를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래... 배가 얼마나 고프겠소. 우리 집에 갑시다. 내 따끈한 흰쌀밥을 한상 내어 줄 테니...”
할머니의 흰쌀밥이란 말에 갑자기 아저씨의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지만 아저씨는 짐짓 점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댁에서 드시지 않는 찬밥이나 쉰밥이라도 한 덩어리만 내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모님.”
할머니는 그 아저씨의 사모님이라는 말에 부끄러운 듯 손 사레를 강하게 치며 말했다.
“사모님은 무슨... 어서 우리 집으로 갑시다. 내 오래간만에 한상 내어 드릴 테니.”
진심 어린 할머니의 말에 그 아저씨는 감동을 받았는지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더니 이내 할머니 손에 들려져 있던 장바구니를 덥석 낚아채듯 들으며 “그럼 제가 댁까지 이 짐을 들어 드리겠습니다.”라며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할머니는 초라하고 비렁뱅이 같아 보이는 아저씨의 외모와는 다르게 예의 바른 말투며 반듯한 행실에서 뭔가를 강하게 느끼셨는지 활짝 웃으며 그를 대동하고 집으로 향했다.
예기치 않은 인연으로 우리 집으로 들어온 아저씨는 마당에서 반갑지 않은 손님의 기척에 놀라서 짖는 바둑이와 마주쳤다.
그러나 아주 능숙한 태도로 자신을 향해 목이 터져라 짖고 있는 바둑이를 눈빛 하나만으로 주눅이 잔뜩 들게 만들더니 이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수탉도 역시 가뿐히 제압하며 사실상 마당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그런 그 아저씨의 모습을 보던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급하게 부엌으로 들어가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더니 이내 한상을 가득하게 내오셨다.
대청마루 위에 차려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을 보던 아저씨는 할머니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사모님, 제가 씻은 지가 오래돼서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나니 저는 마당에 앉아 국에 밥 한 숟가락만 얼른 말아먹고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중한 부탁을 할머니는 강력하게 거절하다시피 딱 잘라 말했다.
“사람이라면 응당 받아야 하는 대접인데 그 냄새가 다 뭐라고 그러우, 어서 같이 앉아 식사나 합시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 뭐 어떠우, 이리 와서 앉아 같이 식사합시다.”
할머니는 밥그릇이 아닌 큰 냉면기에 흰쌀밥을 가득 남아서는 안절부절못하는 아저씨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서 맛있게 먹읍시다. 거기서 그러고 뻘쭘하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올라와 앉으시오. 젊은 양반.”
나는 할머니의 젊은 양반이라는 말에 그저 그 아저씨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 그 거지 아저씨는 전혀 젊어 보이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보시기에는 아주 젊은 사람같이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던 것을 멈추고는 그대로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 위에 차려진 밥상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아저씨에게서는 엄지가 뻥 뚫어져 있는 너덜너덜한 양말 사이로 꼬랑내 비슷한 냄새도 하나 나지 않았다.
옷은 누더기에 머리는 까치집을 하고 있어 냄새가 아주 역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 반대로 이름 모를 들꽃의 향기가 아저씨에게서 은은하게 풍겨왔다.
여하튼 내가 늘 상상했던 그런 악취는 전혀 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저씨는 도대체 얼마나 굶었는지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상 위의 음식들에 젓가락을 능수능란하게 종횡무진하며 허겁지겁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는 그 모습에 할머니는 짠함을 느끼셨나 보다. 얼추 식사를 마친 아저씨에게 구수한 숭늉 한 사발을 정겹게 건넸다. 그 아저씨는 할머니에게서 받아 든 숭늉을 조금씩 음미했다.
그런 모습을 잠자코 응시하던 할머니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단도직입적으로 그 아저씨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래 집은 없소?”
“네.”
“부모님과 형제는 있수?”
“아니요, 저 혼자입니다.”
“그럼 지금 어디서 살고 있수?”
“지금은 저 길 건너 개천에서 천막을 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럼 나이는?”
“이제 막 35살이 됐습니다.”
"결혼은...?"
주저하는 말투로 물어보는 할머니와는 다르게 아저씨는 아주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몇 년 전 아내가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아휴~ 이를 어쩌누... 괜한 걸 물어가지고, 미안 하우, 젊은 양반."
"아닙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사모님."
아저씨는 할머니의 물음에 진솔하게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다.
“그건 그렇고 그 옆에 애지중지 끼고 있는 책은 혹시 법전 이우?”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저씨는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 표정을 뒤로한 채 대답했다.
“네, 제 소중한 법전입니다. 이게 제 전 재산입니다.”
그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의외의 질문을 했다.
“계속 공부할 의사가 있긴 한 거유? 아님 아예 포기 한 거유?”
그 말에 그 아저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언젠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을 도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의 말이 굉장히 맘에 드셨는지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호탕하게 말씀하셨다.
“그럼 앞으로는 우리 집에서 숙식을 제공해 줄 테니 원하는 공부를 해서 꿈을 이루어 보는 것은 어떠우?”
전혀 생각지도 않은 할머니의 제안에 화들짝 놀란 아저씨는 그저 할머니 얼굴만 빤히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을 망설이는 아저씨에게 딱 잘라 말했다.
“공짜 밥은 없으니까 걱정은 말고... 어떠우...?”
“하지만 사모님! 저는 정말 가진 게 이 법전 하나 밖에는 없는 놈입니다. 제 뭘 믿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쎄... 나는 젊은 양반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진 것뿐이니... 그리 알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나를 좀 도와주면 내 월급은 후하게 쳐드릴 테니 그 돈으로 책을 사서 공부를 마저 하시는 건 어떻소?”
뜻하지도 않은 할머니의 제안에 거지 아저씨의 눈빛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