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앵두나무 집 아이 (상)

짧은 만남

by 홍반의 서재

짧은 만남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평범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날들의 연속이었다.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건 전날 밤 꿈에서 내가 자는 방의 창문 위에 보기 드물게 눈이 시뻘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는 것 빼곤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는 아주 평온한 날이었다.


나는 재봉틀을 열심히 돌리며 옷을 만들고 있는 할머니의 옆에 누워서 조용히 눈을 감고 비단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냄새를 기분 좋게 맡고 있었다.


그러다 슬슬 지겨워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재봉틀에 열중이던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시곤 돋보기안경 너머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보셨다.


“어딜 가려고?”

“할머니 나 나가서 조금만 놀다 올게.”

“왜? 나가려고? 조금만 기다려봐, 맛있는 밥 먹자.”

“아니, 조금만 놀다 올게.”


할머니는 강경한 태도로 놀고 오겠다고 대답하는 나에게 더 이상은 집에 있으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대신 내 작은 고사리 손에 동전을 꼭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그럼 이거 가지고 가서 눈깔사탕이라도 사 먹으면서 놀다가 해지기 전에 조심해서 돌아오렴.”


나는 할머니가 쥐어주는 동전을 매우 기쁜 마음으로 움켜잡고는 그대로 신발을 대충 발에 끼우자마자 밖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뛰쳐나갔다. 오늘따라 대문 밖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라곤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우리 집 맞은편 낮은 담벼락 위에서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능수능란하게 외줄을 타는 사람처럼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과시하는 듯했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면 간밤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꿈속의 그놈과 아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나는 그 고양이 모습을 본체만체 그대로 놀이터로 신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상쾌하다 못해 청량한 가을바람이 나의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가을바람의 냄새를 참 좋아한다. 마치 바싹 마른빨래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향기랄까?


물론 그런 인위적인 향기를 왜 좋아하냐고 반문을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집집마다 한그루 두 그루 정도의 나무들(라일락, 장미, 은행, 앵두, 아카시아 등등)을 자신의 집 앞마당에 심지 않은 집은 거의 없었다. 그중에서도 라일락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언급해 본다.


그래서였을까...? 구불구불한 동네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언제나 바람 냄새를 타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향기를 원 없이 맡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유년시절의 그 라일락 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가끔 바람을 타고 라일락 향기가 코끝에 와닿기라도 하면 어렸을 적 추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곤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 도착한 놀이터에는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나온 노년보다는 차라리 중년에 가까운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도란도란 손주 육아 얘기를 나누다가 일제히 짜기라도 한 듯이 갑자기 며느리 흉을 보며 못마땅해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할머니들 무리에서도 유독 며느리 흉을 자제하는 쪽은 언제나 외할머니들 쪽이었다. 가끔씩 며느리 욕에 혈안이 돼서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돌려 까는 골수분자 할머니들과는 언성을 높여 종종 싸우기도 하셨다.


그러던 중 놀이터에서 어슬렁거리는 나와 눈이 딱 마주친 백발이 성성한 인상 좋은 할머니가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꼬마야, 너 한복 할머니 손녀딸이지?”

“네, 할머니 안녕하세요!”


나는 허리를 90도로 정중하게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나를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얼굴이 붉어져 계면쩍은 표정으로 다가가니 당신의 호주머니 속 하얀 손수건에 겹겹이 싸인 사탕을 네댓 개를 건네주시며 정겹게 말씀하셨다.


“이거라도 먹으면서 놀아라.”


두 손에 사탕을 받아 들고 입안에 한 개를 쏙 넣고는 나머지는 주머니에 쓰윽 욱여넣은 상태로 기분 좋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는 문득 그 아이를 발견했다.


혼자서 쓸쓸하게 시소 위에 앉아 있던 그 여자아이를...!


나보다는 두어 살은 족히 아래로 보이는 작고 앙상한 뼈를 드러낸 그 아이.


오늘도 그 아이는 아무도 없는 그 시소 위에 앉아서 누군가와 종알종알 즐거운 듯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보였다.


가끔 놀이터에서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 아이 옆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단지 그냥 그 아이를 둘러싼 주위가 조금은 진한 회색빛이 감돌고 있다는 정도뿐...!


심지어 내가 늘 할머니 집에서 보는 그 흔한 영가들조차도 그 아이 주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그 아이의 옆에는 어떤 존재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던 내가 아주 불쾌했는지 그 아이는 살짝 혀를 내밀며 약을 올리는 시늉을 한 후 또다시 내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즐거운 듯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의 그런 행동이 얄밉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차라리 불쌍하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 아이의 집은 날마다 시끄럽고 바람 잘날 없었으니까...!


그 집에 사는 아저씨는 술버릇 손버릇이 무지하게 나쁜 사람이었다. 늘 술에 취해서 자신의 아이와 부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손찌검을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할머니 말을 빌리자면 그놈은 인두겁을 쓴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했다. 어린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제도 그 아이의 집에서는 한바탕 회오리가 휩쓸고 지나갔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아빠가 술을 진탕 마시고 동네가 떠나갈 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육두문자를 날리고 와장창창 깨지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렸으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향해 얄밉게 혀를 내밀던 그 아이의 두 볼은 어제의 그 여파 때문인지 빨간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직도 양쪽 볼이 발갛게 퉁퉁 부어있었다. 마치 입 안 한가득 사탕을 잔뜩 물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부모에게서 사랑과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고스란히 폭력에 노출된 그 아이가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다.


나는 그 아이를 그대로 외면한 채 빈 그네에 앉아 짧은 발을 흙바닥에 대고 조금씩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연신 움직여 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샌가 신발 속은 흙들이 잔뜩 들어가 발바닥이 까끌까끌 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흙바닥에 두 발을 대고는 앞으로 뒤로 계속해서 움직였다. 어느덧 발이 지면 위를 뜨며 나의 그네가 푸른 하늘 위로 높이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시원하게 나의 온몸에 와 감겼다. 바람을 타고 가을의 꽃향기도 나의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나는 언제나처럼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가 된 기분에 젖어 그대로 눈을 꼭 감고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신발 한 짝이 휘익 공중으로 날아가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그 아이의 시소 앞으로 나의 신발이 톡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너무 놀란 나는 급하게 그네를 내려와 짝짝이 발이 돼서는 그 아이의 시소로 달려가 우두커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말했다.


“미안... 다치지 않았어?”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아이는 앉은자리에서 나에게 두 눈을 흘기며 아주 많이 언짢다는 듯이 대꾸했다.


“너 때문에 다칠 뻔했잖아. 너도 우리 아빠처럼 나를 때리려고 했지?”


날이 잔뜩 서서 경계하는 그 아이의 말에 기분이 상한 나는 조금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나는 너네 아빠 같은 사람이 아니야.”


그 아이는 나의 대답에 반쯤은 불신의 눈초리로 다시 물었다.


“정말이지? 너는 우리 아빠처럼 나를 때리진 않을 거지?”


나는 그 자리에서 얼른 고개를 세게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당연하지, 나는 너네 아빠같이 폭력적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그러자 나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는 듯이 그 아이는 옆에 바로 떨어져 있던 작은 신발을 주워서 내 앞에 살짝 던지며 말했다.


“그네는 눈을 뜨고 살살 타야지. 그렇게 눈을 감고 타다가는 떨어져서 크게 다칠지도 몰라.”


아주 무심한 어조였지만 그 아이는 이상한 아이가 아니라 나름 타인을 알게 모르게 잘 배려할 줄도 아는 속이 깊은 아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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