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우리 집 파수꾼 바둑이

by 홍반의 서재

2화 우리 집 파수꾼 바둑이



꼴 보기도 싫은 밉상 수탉이 제멋대로 들쑤시고 돌아다니던 앞마당에서 내가 유일하게 그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라일락 나무 아래였다...!


그 나무 아래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을 맡고 있노라면 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묘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예전부터 할머니 집 앞마당에는 엄청나게 큰 라일락 나무 한그루가 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봄이 되면 그야말로 나뭇가지 가지마다 선홍색 잎들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며 매혹적인 향을 뿜어대고 있었다.


단지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면 마당을 제집 인양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는 수탉이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를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놈은 그렇게 마당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생명체에게는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지만 유독 그 나무 주위로는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절대로 다가가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청마루에서 빈둥거리다가 마당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같이 커지면 그 순간만큼은 신도 신지 않은 채 수탉에게 쪼일세라 허겁지겁 아름드리 드리워진 라일락 나무 안으로 숨도 꾹 참은 채 재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나무 안에서 숨을 거칠게 헐떡거리면서도 수탉을 따돌렸다는 우월감에 흠뻑 빠져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는 나에게 그 나무는 언제나처럼 “어서 와! 작은 아이야.”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포근하게 맞아주는 것만 같았다.


그 나무 아래에서 만큼은 무법자 수탉에게 종아리를 인정사정없이 쪼일 걱정도 없이 그저 두 다리를 쭈욱 뻗고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그곳만이 그놈이 범접할 수 없는 나만의 유일무이한 공간이자 아지트였다.


그렇게 나무 아래에 앉아 눈을 감고 향기를 맡고 있으면 어느샌가 밖에서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맞춰 왁자지껄 뛰어노는 소리들이 정겹게 들려왔다. 나는 그저 눈을 감고 노는 소리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도 유일한 친구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집 앞마당에서 키우는 바둑이었다. 검고 흰 얼룩이 멋들어진 패턴으로 삐뚤빼뚤 나 있던 나의 유일한 친구 바둑이...!






바둑이는 우리 할머니가 거두어들인 떠돌이 어미 개의 유일한 새끼였다.


밤마다 길거리를 헤매며 남의 집 음식물을 뒤적이다 행여 사람들 눈에 띄는 날이면 여지없이 몰매를 맞으며 도망 다니면서도 모진 생명을 연명하던 불쌍한 어미 개.


그 당시에는 개장수 아저씨들이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개에~ 팔아요.! 개에~ 팔아요~!”라는 소리를 목청껏 높이며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던 때였다. 그러면 동네에서 놀던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이 그 아저씨 마냥 목소리를 흉내 내며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곤 했다.


그러다 가끔 비가 오고 날씨가 잔뜩 흐린 날이 되면 여자의 깔깔거리는 묘한 소리가( 웃는 소린지 우는 소린지 구분이 전혀 안 가는) 비릿한 비 내음과 같이 공기를 타고 들려오곤 했다.


이건 여담이지만 왜 그 당시에는 동네 동네마다 머리에 꽃을 꽂고 비를 맞으며 거리를 미친 듯이 활보하는 여인네들이 그리도 많았던 것일까...?


아마 그건 모르긴 몰라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시집살이를 모질게 당하며 사는 게 많이 힘들었던 며느리들이 많았던 때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고 짐짓 추측해 본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음침하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만큼은 집집마다 아이들이 대문 밖으로 절대로 나가지 못하게 단속하는 일이 잦아지곤 했다.


동네에서 들리는 흉흉한 괴담을 빌리자면 내 또래의 아이 하나도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엄마 몰래 구멍가게로 눈깔사탕을 사러 나간 이후 더 이상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대로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했다.






그렇게 거리를 활보하며 굶주림에 떠돌아다니던 어미 개를 집으로 거두어들인 그녀(이 에피소드만큼은 할머니가 주인공인지라 편의상 그녀라고 칭하겠다)는 개에게 바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한 해가 무사히 지나고 그 이듬해 여름. 요란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로 바닥을 내리꽂던 무시무시한 여름날 밤...!


집 앞마당에서 늘 점잖게 집을 지키던 바둑이가 그날만큼은 묘하게도 목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우~~~ 왈왈 왈왈~~~ 아우~~ 왈왈 왈왈”

“아우~~~ 왈왈 왈왈~~~ 아우~~ 왈왈 왈왈”

“아우~~~ 왈왈 왈왈~~~ 아우~~ 왈왈 왈왈”


쉼 없이 짖어대는 통에 ‘혹시 도둑이라도 들었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휩싸여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었던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대충 주섬주섬 입고는 대청마루로 나와 우산을 급하게 쓰고는 집 앞마당으로 슬금슬금 내려갔다.


번개가 번쩍번쩍 거리는 마당 한 곳. 다름 아닌 라일락 나무 바로 옆에서 웬 검은 형체의 사람이 퍼붓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그 자리에서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바둑이는 다른 곳도 아닌 바로 그곳, 라일락 나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워낙 강심장이었던 그녀였지만 그날만큼은 오금이 저려 발을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다.


그 그림자의 형체는 뭘로 봐도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왜소한 여인의 모습을 했지만 엄연히 이 세계에는 속하지 않는 존재였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그동안 비일비재하게 경험해 왔던 그녀였지만, 그날만큼은 온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한기에 잠시 잠깐 공포라는 놈에게 곁을 내어 주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는 목에 두르고 있던 묵주를 빼서는 한 손에 살짝 감고는 입술을 갖다 대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한참 동안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마치 탐색전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 같던 그 검은 형체가 드디어 때가 됐다는 듯이, 미친 듯이 울부짖는 바둑이는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서서히 그녀가 서 있는 쪽으로 쓰윽 쓰윽 뭔가가 질질 끌리는 소리를 내며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그것과 거리가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마치 초자연적인 강력한 힘에 몸이 결박이라도 된 것처럼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지만, 그녀는 그 숨 막히는 기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더욱 바짝 차리고 묵주가 손에서 떨어질세라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나지막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검은 여인의 형체는 그녀의 기도문 소리에도 전혀 주눅이 들지도 않은 채 점점 더 쓰윽 쓰윽 쇠붙이 끌리는 소리를 내며 위협적인 공포감을 풍기며 거리를 좁혀왔다.


일반인들과는 결이 다르게 워낙 담력과 기가 센 그녀였지만 그 검은 형체에게서 짙게 풍기는 위협적인 아우라는 이전의 피라미들과는 전혀 다른 공포감을 들게 했다.


이윽고 바로 옆으로 바짝 다가 선 그 검은 여인의 형체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 너머로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역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낄낄낄낄...! 그딴 기도소리가 나한테 통할 리가 있어? 자매니 임...?”


폭우 소리와 천둥소리에도 그 형체의 속삭이는 날카로운 목소리는 정확히 귓속에 꽂히며 울려 퍼졌다.


불과 몇 초가 흘렀을까...?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심장을 누군가가 꽈악 잡아 비트는 것 같은 느낌에 순간 들고 있던 우산을 바닥에 힘없이 떨어뜨리고는 거센 빗속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으며 자신의 조여 오는 심장을 힘겹게 부여잡았다.


불과 몇 초 사이로 생명의 불꽃이 꺼지려고 하던 그 찰나!


미친 듯이 울부짖던 바둑이가 제 목줄을 스스로 힘겹게 끊고는 자신의 주인 옆에 붙어 해코지를 하고 있던 그 검은 형체를 덮쳐서는 마구마구 물어뜯었다. 아니 물어뜯는 시늉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를 회상하던 할머니의 말씀을 살짝 빌리자면 마치 한 마리의 길들여지지 않은 늑대가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산만한 맹수의 목을 인정사정없이 물어뜯는 형국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제 주인을 지키고자 맹렬하게 그 검은 형체와 사투를 벌이던 바둑이는 결국엔 검은 형체에게 온몸이 서서히 잠식되어 갔다.


그러나 주인을 반드시 지켜내고자 했던 열망이 컸던 탓일까...?


잠식이 다 된 줄로만 알았던 바둑이의 몸에서 갑자기 “파악”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이 제 몸을 뚫고 희미하게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그 푸르스름한 불꽃은 점점 커지면서 반대로 검은 형체를 꽁꽁 휘감더니 이내 연기처럼 사라지게 했다.






그렇게 그날... 정확히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사정없이 내리치던 그날 밤...!


한때는 거리를 떠돌며 굶주릴 대로 굶주려 생명의 빛이 꺼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바둑이는 제 생명을 구해준 소중한 주인을 위해 기꺼이 그 정체불명의 검은 형체와 용맹하게 싸워 제 주인을 살리는데 나머지 목숨을 불살랐다.


아마 그 푸른 불꽃은 바둑이의 마지막 혼신의 숨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둑이는 제 주인인 고마운 할머니에게 보은을 하며 그대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여담이지만 바둑이는 죽기 며칠 전 날, 새끼 여덟 마리를 출산했지만 일곱 마리 새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다 죽고, 유독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이 한 마리만이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사악한 여인의 모습을 한 검은 형체에게서, 출산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성치 않은 몸으로, 제 주인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사투를 벌였던 것이다.


자신을 거두어주며 보살펴준 고마운 은인인 할머니에게 보은이라도 하듯 그렇게 나머지 생명의 불꽃을 마지막까지 활활 태우며 한 줌의 재가 된 바둑이...!


할머니는 자기 대신 죽은 바둑이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그 새끼에게 제 어미의 이름을 지어주고는 눈도 못 뜬 새끼에게 맑은 고깃국 국물을 새하얀 가제 손수건에 묻혀서 먹이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래서였을까...?


제 어미를 쏙 빼닮은 바둑이 역시 할머니 집에는 그 흔한 좀도둑조차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는 듬직한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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