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형체의 남자 VS 앞마당 빌런 수탉
어려서부터 몸도 왜소하고 약하게 태어났던 나는 늘 잔병치레를 달고 살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방안에 누워서 재봉틀을 돌리는 할머니 옆에 껌딱지 마냥 딱 붙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에서 조금이라도 바람을 쐬고 오는 날이면 그날 밤은 여지없이 밤새 고열에 시달리며 할머니의 극진한 병간호를 받아야만 했다. 열이 펄펄 끓어 몸이 아프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린 나는 당연히 할머니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서는 밤새 징징거리며 기나긴 밤을 보내기 일쑤였다. 손주의 칭얼거림과 보챔에 마음이 아픈 할머니는 늘 자신의 피곤한 몸은 뒷전으로 하고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 마른 수건 여러 장을 돌려가며 찬물을 적셔서는 칭얼거리는 손주의 뜨거운 이마며 겨드랑이며 등이며 닥치는 대로 닦아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물론 집집마다 아스피린이라고 하는 상비약이 있긴 했지만 나의 펄펄 끓는 열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어린 손주를 밤을 새워 병간호를 하는 날이면 할머니 역시 덩달아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그 당시 나는 부모 형제들과는 떨어져 시골에서 혼자서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늘 씩씩한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나는 외할머니와 떨어지기라도 하면 자지러지는 분리불안 증세를 심하게 겪고 있었다. 그런 손주가 늘 눈에 밟혔던 외할머니는 내가 네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기꺼이 키워주셨다.
그렇게 나와 할머니와 바둑이의 동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할머니의 집에는 바둑이와 바둑이의 여러 마리 새끼들 말고도 암탉들과 수탉도 같이 살고 있었다. 새빨간 닭 벼슬을 멋들어지게 장식한 수탉은 여리고 왜소한 나를 보자마자 마치 자신의 앞마당에 불쑥 나타난 침입자라도 되는 양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가 신발을 신고 앞마당을 나가기라도 하면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서는 나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종아리를 사정없이 콕콕콕 찍으며 따라다녔다.
그러면 나는 아픔도 잠시 그런 수탉의 기세 등등함에 기가 팍 눌려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방 안에서 재봉틀을 돌리던 할머니는 나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급하게 버선발로 마당까지 뛰쳐나와서는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번쩍 안아 들어 꼭 끌어안고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듯이 말씀하셨다.
“누가 우리 강아지를 울렸어? 바둑이 네가 그랬어?”
그러면 바둑이는 제 주인이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정겹게 뛰어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낑낑거리다가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한 나름의 제스처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바둑이에겐 제 주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였으니 자신이 할머니의 손주를 절대로 괴롭히지 않았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면 할머니는 바둑이의 등을 정겹게 쓸어주며 “그렇지 우리 바둑이가 아이를 괴롭힐 일이 없지.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둑이는 억울한 누명을 푼 것이 그저 기쁘다는 듯이 바닥에 벌러덩 누워 배를 보이며 나 죽여줍시오 라는 재롱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면 나는 수탉에게 억울하게 쪼인 게 분해 훌쩍이면서 손가락을 쭉 뻗어 얄미운 그놈을 가리켰다. 그러면 할머니는 나의 억울함을 당장이라도 풀어주려는 듯이 이번에는 유유히 마당을 휘젓고 나 모르쇠로 뻔뻔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수탉에게 큰 소리로 역정을 내듯 말씀하셨다.
“네가 그랬구나, 우리 강아지를 괴롭혀서 울린 장본인이 바로 네 놈이구나.”
그럼 수탉은 마치 그 얘기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방향을 홱 틀어 할머니에게 다가오며 역지사지로 꼬꼬댁거리며 으름장을 놓는 불한당처럼 달려들곤 했다. 수탉은 제법 힘이 좋아 자신의 날갯짓을 퍼드덕 거리는 힘으로 얕게 보다는 일정 높이까지 점프 비슷하게 날 수도 있는 놈이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한 손에는 나를 안아 들고는 자신을 쪼려고 덤벼드는 수탉을 향해 손을 뻗어 날개를 잡으려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수탉은 자신의 생명에 강한 위협이 느껴지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쏜살같이 할머니의 손길을 피해 저 멀리 지붕 아래로 꼬리가 빠지게 도망을 치곤 했다.
그날부터 나와 수탉의 미묘한 알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사실 알력 다툼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이 앞마당을 지배했다는 것을 대놓고 내게 보여주려는 그놈의 텃세에 가까웠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수탉보다 여리고 작은 나는 그놈에게 쪼이는 게 무서워 마당으로 나가는 걸 진즉에 포기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웬만하면 마당에 나가 놀기보다는 그냥 대청마루 위에 앉아서 마당에서 제 새끼들과 놀고 있는 바둑이를 바라보다가 그게 재미가 없어지면 암탉들을 전두 지휘하며 세상 잘난 척이란 잘난 척은 다 해대고 있는 얄미운 수탉을 고작 째려보는 게 다였다. 주인이 없는 앞마당은 그야말로 수탉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도 신기한 게 한 가지 있었다면 바둑이는 수탉보다도 엄청나게 덩치가 큰 데도 불구하고 안하무인격으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심지어 참견까지 하는 것 같은 그놈을 견제하기커녕 그대로 놔두는 것 같아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복을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던 할머니는 재봉틀을 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할머니 옆에 있는 게 지겨워진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 대청마루 위에 누워서 여름날의 진득한 더위와 큼큼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등짝을 마룻바닥에 딱 붙이고 있었다. 그러자 나무 아래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서늘한 바람 비스름한 것이 올라오며 슬슬 나의 낮잠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두 눈을 살포시 감자마자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을 자고 있는 주위로 검은 형체의 무언가가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은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내 주위를 돌면 돌수록 나의 몸이 저 깊은 심연의 바닥으로 축축 꺼져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안간힘을 쓰면서 눈을 뜨려고 애썼다. 머리카락이 전부 쭈뼛쭈뼛 서면서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있는 힘껏 할머니를 불러보려고도 애썼지만 나의 목소리는 그저 입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이 검은 형체는 뭐지...? 왜 내 주위를 이렇게 빙빙 돌고 있는 거지...?’ 아무리 봐도 그 검은 형체는 키가 엄청 큰 어른의 형상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두 주먹에 힘을 불끈 쥔 채로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몸은 저 깊이 밑으로 서서히 곤두박질치는 느낌에 온 몸에서 기운이 쭉쭉 빠져나갔다. 마치 탱탱한 풍선에서 바람이 스윽 스윽 빠져나가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린 나는 본능적으로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더욱 안간힘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썼다. 그런 나의 모습이 꽤나 가소롭다는 듯이 그 검은 형체는 주위를 빙빙 돌던 행위를 잠시 멈춘 후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씰룩거렸다.
“아이야~ 아이야~ 작은 아이야! 나랑 같이 가자.”
“아이야~ 아이야~ 작은 아이야! 우리 이렇게 재미없게 놀지 말고 나랑 같이 저 아래로 내려가서 재밌게 놀자.”
그 검은 형체의 입에서 나는 소리는 여자의 목소리도 아닌 그렇다고 남자의 목소리도 아닌 웬 날카로운 쇠붙이가 허공을 찌이익 찌 이익하며 긁어대는 소리 같았다. 나는 그 형체가 입을 씰룩거릴 때마다 공포감이 극을 달했다. 그럴수록 나의 몸이 강한 힘에 짓눌리는 것만 같은 이상현상에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워졌다. 내가 공포로 괴로워하면 할수록 그 형체는 더욱 힘이 강력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 형체와 대치한 지 몇 분이 흘렀을까? 몸에서 힘이 쭈욱 빠질 대로 빠진 나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그냥 죽은 듯이 안간힘을 멈췄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향해 섬뜩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점점 다가오는 그 검은 형체가 그대로 나를 덮쳐왔다. ‘이대로 꼼짝없이 죽는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갑자기 뭔가가 나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콕콕콕 쪼아대는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불쾌하고 아팠을 쪼임이 그날만큼은 구세주를 만난 것같이 전혀 아프지 않고 오히려 간질거리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공포감이 서서히 즐거움으로 바뀌려는 찰나, 한참을 콕콕콕 쪼아대던 수탉이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나의 귀청이 터져라 “꼬끼오~~”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수탉의 비정상적인 울음소리에 놀란 할머니가 재봉틀을 돌리다 말고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오자마자 그제야 그 수탉은 본인의 사명을 다했다는 듯이 그대로 대청마루 아래로 날갯짓을 푸드덕거리며 내려가 평소와 다름없이 여기저기를 유유히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대청마루에 누워서 아픈 강아지 마냥 낑낑거리는 나를 할머니는 품에 꼭 안으며 집안이 떠나갈 듯이 악을 쓰듯 외쳤다.
“어디서 감히 네 놈이 우리 손주에게 간을 보는 거냐! 어서 썩 꺼지지 못해.”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등등하게 나를 데려가려고 맴돌고 있던 그 형체는 한순간 연기처럼 휘익 사라졌다. 잠시 후 할머니는 앞마당에서 유유히 참견을 하며 돌아다니는 수탉에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가 이 아이를 살렸구나! 아주 장하다. 우리 수탉.”
그 말을 묘하게 알아들었다는 듯이 그놈은 고개를 홱 돌려 할머니 품에 안겨 귀를 만지며 어리광을 부리고 있던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이내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이 다시 홱 고개를 돌리고는 유유히 지붕 아래로 고고하게 날렵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안하무인인 줄로만 알았던 그 수탉은 실은 집안의 잡귀를 보면 “꼬끼오~”소리를 내며 쫓아낼 수 있는 나름의 영험함을 가진 동물이었던 것이다. 그날만큼은 검은 형체로부터 절체절명의 순간 나를 구해준(?) 빌런 수탉이 졸지에 영웅 수탉으로 등극하는 날이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수탉과 친해졌다는 혼자만의 단단한 착각에 빠졌다. 아침이 밝아오기가 무섭게 마당으로 나가서는 할머니 대신 작은 고사리 손에 한 움큼 좁쌀을 집어 모이통에 넣어주며 친밀감을 대놓고 표시했지만 웬 걸...? 그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쾌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나의 내민 손을 여지없이 콕콕콕 무서운 부리로 마구 쪼아댔다.
갑자기 기습공격을 당한 나는 쪼여서 아픈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찔끔 흘러나오는 눈물을 그놈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대청마루 위로 올라가 앉았다. 최대한 아프지 않은 시늉을 하며 옷소매로 쓰윽 눈물을 훔치고는 괘씸한 그놈을 쏘아볼 뿐이었다. 여전히 그놈은 싹수가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나를 대놓고 쪼아대며 괴롭히는 불한당 같은 얄미운 놈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나를 그 무서운 형체로부터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 마당의 빌런 수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