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앵두나무 집 아이 (하)

슬픈 이별

by 홍반의 서재

슬픈 이별


그 사건 이후로 나는 그 아이와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때 처음 안 사실이지만 그 아이는 나보다 한두 살 어린 게 아니라 한 살이나 많은 언니였다는 그야말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단지 가정이 그렇다 보니 부모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또래들보다도 자라지를 못하고 한참 왜소했던 것이었다.


나 역시 작고 왜소했지만 그 아이보다는 발육상태가 훨씬 좋은 상태였다.


나는 그 당시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아먹고 자라고 있었으니까...!


익히 그 앵두나무 집 아이를 잘 알고 있었던 할머니는 아이가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고 거의 날마다 굶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던 그 아이가 매일매일 나의 성화에 못 이겨 할머니 집으로 놀러 오게 됐다.


나랑 한참을 재밌게 놀아주다가도 밥 먹을 시간이라도 될라치면 급하게 일어나 자신의 집으로 가려고 다 뜯어져 발가락이 삐져나오는 신발을 신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최대한 그 아이가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에둘러 말씀하셨다.


"우리 귀한 손주 친구니까 당연히 너는 내 손주와 같아. 그러니까 사양하지 말고 와서 놀다가 때 되면 같이 밥 먹자, 알았지...?"라며 그 아이와 손가락 도장을 꾹 찍고는 날마다 집으로 그 아이를 불러들이셨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아이는 더 이상은 할머니를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더 우리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는 것만 같아 시샘이 나기도 했다.


할머니는 영양실조로 바짝 메마른 그 아이를 위해 아무리 바빠도 생선을 굽고 시래기 무침, 시금치나물, 콩나물 무침, 두부를 굽고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끓이셨다. 그러고는 생선 가시를 발라 내 밥그릇과 그 아이의 밥그릇 위에 손수 올려주셨다.


혹여 급하게 먹다가 가시라도 목에 걸릴까 봐 일일이 손으로 가시를 발라 그 아이가 먹기 편하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아이는 할머니의 마음에 감정이 복받치는지 코끝이 빨개져서는 금세 닭똥 같은 눈물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하얀 쌀밥 위로 똑똑 떨어졌다.


그러면 할머니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아니 이렇게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쯧쯧. 울지 말고 꼭꼭 씹어 먹어라. 아가...!”


그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맑게 웃으며 “네에!”라는 대답과 함께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꾀죄죄한 제 옷소매로 흘러내린 눈물을 급하게 훔치고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그 먹은 그릇들을 들고는 손수 빨간 고무 통에 담아 정성껏 설거지를 하곤 했다. 역시나 그 아이는 천성이 나쁘지 않고 고운 아이였다.


그렇게 나는 그 아이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자매처럼 즐겁게 놀기도 하고 때로는 툭탁거렸다.


그러다 싸우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그 아이에게 살짝 삐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대청마루에 벌러덩 드러누워 눈을 꼭 감고 귀를 쫑긋 세우고는 내심 내게 말을 걸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럼 그 아이 쪽에서 먼저 내게 손을 내밀며 "미안해,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사과를 해 주었다. 그러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 아이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즐겁게 재잘재잘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한 번은 놀다가 그 아이에게 우스갯소리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근데... 있잖아... 나 사실은 저게 보여."

"뭐가 보이는데...?

"그게... 너는 저기 서 있는 남자애가 보여?"라고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 아이는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훽 머리를 돌리고는 한참 동안을 넋 놓고 보고 있다가 이내 내게 머리를 돌린 채로 "뭐가 있는데...? 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때서야 나는 이 아이가 나와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내가 놀이터에서 봤던 그 기묘한 장면들은 단지 아이가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있던 내게 그 아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만약에 내가 죽으면 너는 나를 볼 수 있는 거야?"


나는 그 아이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내게 내심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와아! 그럼 나는 죽어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겠다. 네가 나를 볼 수 있으니까... 그렇지?"






가을비가 음산하게 겨울을 재촉하듯 주룩주룩 내리던 날...!

할머니의 간곡한 권유로 우리 집에서 나랑 같이 이틀을 내리 잔 그 아이는 "아빠가 걱정하니까 오늘은 집에서 자고 내일 또 놀러 올게요, 할머니."라는 말만을 남긴 채 돌아갔다.


아이가 돌아간 그 앵두나무 집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와장창창 유리 깨지는 소리와 고성방가가 끊이질 않았다.


오죽했으면 동네 주민들이 시끄러워서 더 이상은 못살겠다는 민원을 다 넣었을까...?


그러나 그 당시에는 동네 주민들이 아무리 신고를 해도 읍내 순경 아저씨들은 집안에서 지지고 볶는 일은 가정사라며 전혀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때 조금이라도 그 집안에 개입이라는 것을 해서 그 포악한 아저씨를 아이에게서 분리라는 것을 해줬더라면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꽃도 제대로 펴보지 못한 그 봉오리는 그렇게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밤에 슬프게 시들어 버렸다. 나는 그날 이후로 한동안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밤마다 실오라기 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한 피투성이의 몸으로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날 제 미친 아비의 모진 매를 작디작은 온몸으로 맞으며 생명이 꺼져가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잠을 자려고 누워있으면 스르륵 다가와 옆에 앉아서는 몇 시간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공허한 눈빛으로 내 옆에 앉아 누워있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북받쳐 이불을 머리끝까지 폭 뒤집어쓰고는 소리도 내지 않고 울다 지쳐 잠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수탉의 새벽을 알리는 "꼬끼오~~"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잘 떠지지도 않는 퉁퉁 부은 두 눈을 힘겹게 치켜뜨고 이불을 빼꼼히 내리면 그 아이는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할머니 역시 그 아이가 밤마다 찾아왔다가 새벽이 되면 사라지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뭔가 이승에 대한 강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 주위를 정처 없이 맴도는 그 아이를 위해, 할머니는 꼭두새벽부터 간신히 잠이 든 나를 흔들어 깨워서는, 손을 꼭 붙잡고 동네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무령사를 찾았다.


그 아이를 저승으로 보내주기 위한 천도재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할머니와 나는 무당으로부터 뜻밖의 소리를 전해 들었다.


“혹시 자네 죽은 이 아이한테 뭔가 소중한 걸 준 적 없어?”


무당의 예사롭지 않은 말투에서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게 아이가 하도 옷도 꾀죄죄하기에 손녀딸 원피스를 만들면서 그 아이 것도 하나 만들어서 입혔는데... 그거 말고는 그 아이에게 딱히 해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선녀님.”


할머니의 말을 듣던 무당은 잠시 부채를 쫘악 펴고 방울을 들고 신명 나게 흔들더니 “이 아이가 그 옷에 대한 미련이 생긴 모양이야. 웬만하면 그 옷과 똑같은 걸로 천도재 하는 날 가져다줄 수 있겠어?”


무당의 말에 할머니는 죽은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가슴이 먹먹했는지 눈가에 눈물이 그득해서는 잠시 말씀을 잊지 못하셨다.


나 역시 그런 할머니의 옆에 앉아서 훌쩍거리고 앉아 있었다. 그런 나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무당 아줌마가 아주 안쓰럽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어린것이 참 많이도 힘들겠구나,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잔뜩 보고 있으니... 그래도 조금만 참아, 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 다는 아니어도 네 영안도 곧 닫힐 테니까...!”


나는 그 아줌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그 앵두나무 집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엉엉 소리 내서 울기만 했다.


그렇게 무령사를 다녀온 다음 날부터 할머니는 그 아이를 위해 하늘하늘한 분홍색 원피스와 더불어 예쁜 한복 한 벌을 더 만드셨다.


어린 나이에 꽃도 펴보지도 못하고 슬프게 생을 마감했지만, 천도재를 하는 날이라도 예쁜 옷을 만들어서 입혀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이 컸던 탓일까...?


사실 할머니는 폭력에 시달리는 그 가여운 아이를 자신의 수양딸로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입양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막 실행으로 옮기기도 전에 그 아이는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만을 남긴 채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천도재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그다음 날부터 그 아이는 더 이상 나의 곁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대청마루 위에는 새빨갛고 탐스러운 앵두 알 대여섯 개가 마치 고마움의 표시라도 하려는 듯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방 안에서 재봉틀을 돌리는데 여념이 없는 할머니를 급하게 불렀다.


나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란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는 나와서 대청마루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왜...? 수탉이 올라와서 괴롭혔어?"

"할머니 그게 아니고..."


나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그대로 손가락을 쭉 뻗어 마루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앵두알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할머니는 놀라셨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한참을 아무런 말씀도 없이 그저 바라만 보셨다.


눈가에는 금세 이슬이 맺혔다.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다 앵두를 빨리 먹어 보고 싶은 마음에 침을 한 번 꼴깍 삼키며 물었다.


"할머니."

"으응? 왜에?"

"나 저거 먹어도 돼?"


그러자 할머니는 이내 활짝 웃으며 내게 말씀하셨다.


"누가 앵두나무 집 아이 아니랄까 봐... 고것 참 먹음직스럽게도 여물었다."


나는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대청마루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그 탐스러운 앵두 하나를 입안에 넣고는 이 사이로 톡 터뜨렸다. 그러자 달콤한 과즙이 퐁 터지며 달달한 앵두 향이 입안 가득 번졌다.


마치 그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맛있지? 그동안 나랑 같이 놀아준 선물이야...! 히히."

"할머니도 하나 드셔 보세요! 예쁘게 만들어 주신 옷도 정말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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